류형정 작가를 잘 보내기 위해 가까운 분들이 모여 전시를 열었다. 생전에 그렸던 원화들이 전시되었고, 일기처럼 그렸던 습작들, 그리고 작업해서 출간했던 작업물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다 이전에도 구입했던 류형정 작가의 책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예민한 사람입니다만...>을 한 권 더 구입했다. 그리고 생전에 미처 구입하지 않았던 책도 한 권 골랐다. 카운터에서 책을 건네는데 운영하시는 분이 형정 작가님과 인연이 있으시냐 물으셨다. 대답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전시 막바지에 간 터라 이미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다 판매가 된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둘러보는 걸 눈치채 주셨는지 가득한 스크랩을 건네주셨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사진을 찍어가도 좋다고 하시고, 판매도 한다며 편히 자리를 내주셨다. 사진보단 눈에 가득 담고 싶어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감상했다.
류형정 작가와 만난 건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제주도에서 살던 시절이니까 2013년 즈음...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던 그때 내가 일하던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으로 왔다. 그날 특이하게 그림 작가님들이 많이 방문했는데, 내가 좋아하던 노석미 작가님도 방문하셨다. 나와 함께 환호하던 류형정 작가가 자신도 그림을 그린다며 소개했고, 그렇게 맺은 인연이 느슨하게 이어졌다. SNS로 본 그림들이 마음에 들어 전시가 열리면 슬쩍 방문하고 후기를 보냈다. 늘 만나지 못했고, 자신이 없을 때 온 것을 아쉬워했지만 활발하게 다양한 북페어들 출점하는 그를 잠깐씩 마주치곤 인사와 함께 전시의 감상을 나누었다. 책을 구입하기도 했고, 엽서와 스티커를 사기도 했다. 그러던 사이 나는 광장을 열었고, 가끔 여는 그림 전시 중에 형정 작가와도 열고 싶다고 하자 그도 흔쾌히 승낙했다. 전시 이야기를 꽤 이어가던 중, 갑작스레 지방에 카페를 운영하러 간다며 광장에 와서 인사를 나눴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늘 활발하게 작업을 하던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맞은 건 그 후로 1,2년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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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서늘한 슬픔을 무뚝뚝하게 그려 보이는 류형정 작가의 그림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걸을 테야, 하고 말해주는 그림들에서 나도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갈 힘을 얻었다. 이전 전시에서도 구입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림들도 다 그랬다. 하지만 형정 작가를 잘 보내기 위한 이번 전시에서는 늘 좋았던 서늘한 그림들 보다는 알록달록한 색의 그림들, 형정 작가 특유의 유머가 담긴 일기 같은 그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가 떠난 그곳에서 밝고 맑고 알록달록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몇 개의 파일첩으로 스크랩된 그림들은 두 배쯤 되던 게 절반만 남은 거라고 했지만 두 시간 가까이 들춰봐도 하나하나 애정을 쏟으며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 와중에 나를 사로잡은 두 그림을 광장에 걸어두기로 했다.
그림처럼 마음이 모난데 없이 동그래졌으면 좋겠다. 광장도, 나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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