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착각이 만든 공백
“혼자가 더 좋아요.”
소개팅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동료의 말에 자동 메시지 전송처럼 무심코 튀어나온 말.
소셜 미디어의 알림이 매일 최고치를 경신해도,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있어도, 바로 옆에 누군가 함께 있어도 왠지 벽에 가로막혀 고립된 듯한 느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조용히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요즘 좀 예민한가?’
‘내가 너무 지나친 걸 기대한 걸까?’
하지만 사실 그 외로움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외로움은 우리가 나약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뇌가 보내는 일종의 구조 신호다.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정서적 단절은 곧 위험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혼자는 위험해. 사람들과 함께 해야 더 안전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요즘처럼 피상적이고 느슨한 관계가 만연하고 소속감이 약해질 때면 뇌는 이를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우리에게 감정으로 생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자주 무시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고 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정작 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편의를 제공했으니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길 강요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우리는 감정을 스스로 감내해야 개인의 문제로 축소며 침묵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자의 외로움은 더 깊어졌고 우리는 함께하지만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들며, 결국 스스로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사회는 우리에게 안전과 질서를 주는 대신 감정의 자유를 억압했고, 그 억압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고, 고립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 외로움이 어떤 곳보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우린 어릴 때부터 감정을 참는 법만 배웠다. 화가 나도 참고, 슬퍼도 억누르고, 기뻐도 조용하게, 행복해도 티 나지 않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미성숙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감정보다 견딤을 미덕으로 삼아왔고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숨기고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을 '성숙한 어른'으로 칭송하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진심에 귀 기울이는 법과 나를 표현하는 법 모두를 잃어버렸다.
"괜찮아?"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괜찮아?"라는 말은 얼핏 따뜻해 보이지만 알맹이는 빠진 무관심의 가면이기도 하다. 감정을 꺼내려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이라는 신호처럼 작동하며, 암묵적으로 괜찮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괜찮아."
눈치껏 신호를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괜찮다는 말뿐인 것이다. 감정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데 할 수 있는 말은 "괜찮아"뿐인 현실. 마음속을 떠다니는 수많은 감정들이 언제나 단 세 글자로 귀결되어야 하는 세상 속에서 나의 외로움을 더 커져만 간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진짜 제대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상대에게 닿지 못한 채로, 오직 나만의 것으로 간직한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서로가 독심술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채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줘'라는 환상 속에 빠진 것이다.
매일 같이 쌓여가는 관계의 교류 속에서 기대했던 정신적 교감이 깨지면 '그래, 역시 둘이서 괴로운 것보다 혼자가 낫겠어.'라며 공백을 더 키우는 대신 너무나도 쉽게 진정한 연결의 가능성을 포기해 버린다.
아니, 괜찮지 않아.
하지만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고 ‘내가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구나’ 하고 써 내려가다 보면, 그 감정은 막연한 고립이 아니라 어느 순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바뀐다. 그것은 나를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며, 내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고 느끼는 시작이다. 바꿔 말해, 나의 외로움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민낯을 공유해야만 우리는 조금씩 서로와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또 그 어느 때 보다도 외롭게 살아간다. 안정적이고 편리한 삶을 대가로 사회가 우리의 본능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로움은 나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와 진짜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반응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외로움은 어딘가 낙오의 증거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니까. 이따금씩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천천히 하지만 아주 깊이 바라봐 주면 된다.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려는 그 공백의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서로와 다시 연결될 수 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물음표에 빨리 답하기 보단 조용히 곁에 머물러주는 것으로, 수식어로 장식한 많은 말보다 진심이 담긴 한마디를 찾아서. 그렇게 내 마음의 공백 속에서 사유하다 보면 우리가 다시 서로에게 닿는 길의 중간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대학교 때 전공 토론 수업의 일환으로 2년 동안 매주 다양한 책들을 찍먹 했었다. 인문, 철학은 물론 심리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작품들까지.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도 그때 처음 접했었다. 졸업 후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다시 보았는데 내 안의 울림이 또 달라서 공유하고 싶었다. 가볍게 생각을 전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전공병이 발동하여 어딘가 모르게 글이 묘하게 학술 논문처럼 되어 버렸다.
문명이 요구하는 인내와 억제의 목록이 내 안의 충동과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알고 싶거나 현대 사회에서 나를 알아가는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욕망을 억누른 대가로 얻은 문명,
우린 정말 이 거래에 만족하고 있을까?
불편하지만, 눈을 떼기 힘든 문명 진단서.
저명한 책에 감히 나의 한 줄 평을 전하자면
지금 행복하지 않은 건
내 탓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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