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승희에게, 힘들고 아름다운 삶
요즘 자주 듣고 있는 플리를 공유해요. 선곡이 꽤 매력적이더라고요?
https://youtu.be/qvpxkMFbXE8?si=jTHfl8Uno-XIIFGu
안녕 승희,
눈 깜짝할 새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벌써 6월 중순이 되었어요. 2025년도 벌써 절반이 지난 거죠? 즐거우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하는데, 여기서의 시간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도 매우 빠르게 흘러가요. 승희가 말한 대로 원래 그런 것도 없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한다고 하여 응당 그런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마음 밭의 상태와 또 경험에 따라 주변의 상황은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의 저를 보면 마음, 날씨, 그리고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생각과 에너지가 눈에 도드라지게 보이거든요.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제 기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런 생각의 흐름이 꽤나 흥미로워요. 지독하다고 명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내게 써준 편지를 읽는데 5월의 시간이 승희에게도 쉽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어요. 건강을 돌보는 일은 부지런히 하면 티가 나지 않지만 게을러지는 순간 관심을 받기 위해 잔뜩 성난 모습으로 우리에게 티를 내는 것 같아요. 해독주스라는 표현이 편하고 또 널리 쓰이게 되었지만 이토록 자극적인 단어를 쓰니, 이걸 먹는 우리는 뭔가 몸에 안 좋은 독소가 있어서 그걸 내보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항상 먹는 걸 제일 중시했어요.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삶으로 보여준 사람, 그게 우리 엄마예요. 매일 아침 찐 야채 스무디를 만들어주면서 단 한 번도 엄마는 해독 주스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이 없거든요. 그것은 그저 그녀가 우리 가족에게 주고 싶은 건강한 아침 식사 중 일부였고, 때로는 아무런 채소를 넣어서 스무디를 만든 뒤 제가 맛을 보고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맞히는 걸 즐겨 했어요. 그리고 최근 1-2주 사이에 다시 저도 엄마가 내게 심어준 건강하고 또 편안한 식습관으로 조금씩 돌아가려 하고 있어요. 그러니 승희, 우리 특정 채소를 꼭 특정 비율로 넣고 만든 해독 주스 말고 그냥 이런 채소도 넣고 저런 채소도 넣어보며 (저는 때로 배추도 넣고, 청경채도 넣고, 파프리카도 넣고 막 넣어봐요) 승희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물론 주로 들어가는 재료(저의 경우 사과,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비트)는 비슷하겠지만 말이에요. 단, 각 재료별로 몇 그램 들어가야 하는지? 재지 않아요..ㅎㅎ 그때그때 맛이 조금 다르지만 뭐 어때요. 그것마저 개성인걸.
그저 건강을 위해 이걸 하고 저걸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절주절 말이 길어져 버렸어요. 우린 어쩌면 꽤나 비슷한 엄마를 두고 비슷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요.
승희에게 귀여운 구석이 많은 줄은 짐작했지만,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치과를 다녀왔다니 여러 가지 마음이 들어 함박웃음과 함께 승희를 꽉 안아주고 싶어요. 남은 치료는 큰 고통 없이 잘 마무리했나요? 사랑니를 뽑는 경험은 저에게도 미간을 찡그리게 만드는 고통으로, 그리고 어이없는 웃음으로 기억되어요. 저는 4개를 다 뽑았는데 그중 아래 사랑니 2개가 모두 신경을 지나가서 한 번에 뽑을 수가 없었어요.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으로 하나를 뽑았는데, 그날 마취가 덜 풀린 상태에서 사촌 오빠 집에 가서 볶음밥을 우걱우걱 먹었고 (사랑니, 별거 아니네? 이 생각 했음) 그날 밤 미친 치통에 눈물 흘리며 밤잠을 설쳤어요. 다음날 환부가 고름 때문에 띵띵 부어서 치과에서 마취 없이 생으로 고름을 박박 긁어내야 했어요. 안 울고 싶은데 그냥 눈물이 나고 소리 내고 싶지 않은데 으악 소리 나는 경험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본능이 의지를 넘어서는 경험. 그 이후엔 남은 사랑니 3개를 동시에 뽑아버렸어요. 양쪽을 한 번에 뽑으면 음식을 못 먹으니 두 번에 나누어 하면 어떻겠냐는 간호사들의 권유가 있었으나, 고통을 여러 번 겪고 싶지 않아서 그냥 한방에 짧고 굵게 가는 걸 선택했거든요.
지금 이렇게 수다스러워지는 걸 보면 마음이 전보다 많이 괜찮아졌나 봐요. 지난 시간 동안 편지를 받고 기다릴 승희를 생각하며 답장을 빨리 쓰고 싶었으나 쓸 수가 없었거든요. 생각과 감정이 한데 뭉그러져 어떤 생각도 말도 뾰족하게 하기 어렵더라고요. 한없이 무기력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하루는 타이 옐로 커리 만들어 먹을 때 너무 맛있어 감격하기도 했고, 슬퍼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친구가 새삼 진지하게 추는 엉성한 몽골 전통 (어깨) 춤에 큰 소리로 웃을 때도 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승희는 "몽골 전통춤? 그게 뭐지?" 하면서 궁금해할 것 같아서 아래에 영상을 공유해요. 국민체조, 아 너무 옛날 사람이네요? (정정) 새 천년 체조처럼 단체로 이 춤을 추기도 하더라고요. 몽골 전통 춤이 실은 어깨춤이 아니지만 ㅎㅎ 어깨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동물들을 묘사한 동작들이 많다고 해요! 승희가 이 춤 동작들 속에서 어떤 동물의 형상을 발견하게 될지도 궁금해요.
https://youtu.be/JsBgte8t8BE?si=wXHqw_oMcu-so2bx
친구가 생겼다고 했죠? 저보다 7개월 정도 먼저 이곳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미국인 봉사자인데 참 따뜻하고 섬세한 친구예요. 어쩌다 엄마 얘기를 하게 되었고 지금 제가 겪는 감정적인 어려움과 또 몽골에서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곁에서 잘 챙겨주어요.
지난 주말 오후에 이런 대화가 오갔어요.
�: Hey, do you wanna come over to my place and watch something together this afternoon? (오늘 오후에 우리 집 와서 같이 뭐 볼래?)
���: You know what? I wanna be alone, but simultaneously, I don't wanna be alone. It's funny to ask, but can I go sit on your couch and spend some time alone? (있잖아, 나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나 그냥 너네 집 소파에 앉아서 나 할 거 해도 돼?)
�: That works. I appreciate your honesty, though. I can clean up my kitchen while you do your thing. (당연하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너 할 거 하는 동안 나는 주방 청소하면 돼.)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이 마음. 오르락내리락, 흔들리는 이 감정이 혹여라도 친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괜찮으니까 전혀 걱정하지 말고 그런 걸로 사과하지도 말래요. 아무 말 없이 자기 공간을 내어주었고, 그렇게 마음이 뒤숭숭하던 주말 오후,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어요.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래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우리가 몽골에서 만났는데, 그냥 hey, what's up? 하는 사이가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뭐 이런 친구가 있어요? 저는 참 복받은 사람,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이에요.
시간이 얼마가 흐르던 관계없이, 결국에 사람들은 해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지요. 그러니 물 공포증을 이겨낸 승희를, 용기 내어 치과 치료를 받고 온 승희를 기억할 거예요. 그리고 물류 센터에서 보여주었던 염려와 배려가 승희라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각 사람의 삶을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 승희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기뻐요. 김연아 선수와 스티비 원더의 일화를 공유해 주어서 고마워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저 또한 가까이서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몽골에서 장애인 인식조사 및 특수교육 기관 미팅을 통해서 깨달은 점이 있어요. 신체나 정신이 불편한 사람들을 장애로 인해 무조건적인 약자 또는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나와 조금 다른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시각을 바꿔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differently abled"라는 관점으로요!
몽골의 봄은 참으로 변덕스러워 패딩과 나시를 오갈 만큼 햇빛이 있을 때와 그늘에 있을 때의 온도차가 크지만, 해바라기인 저는 햇살이 좋고 바람이 덜 부는 날이 오면 무조건 (할로발리의 사롱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서 드러누워요. 요즘은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라는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고 있어요. 읽으며 승희와 저의 삶이 떠오르는 문장들을 꽤 자주 마주합니다.
더 힘들지만 더 아름답다는 말이 참 찬란하면서도 아파요. 싫은 감정은 분명 아닌데, 감내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픔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욕심쟁이 같은 마음이에요. 가운데에 축을 놓고 보았을 때 아름다움의 크기와 비례하는 만큼의 고통이 지점이 그려지네요. 지금의 내 삶이 그만큼 아프고 힘들다면 동시에 또 그만큼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는 오롯이 나의 시각과 태도에 달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는 승희가 인스타 스토리에 이런 글을 공유해 주었어요. 미처 답장할 여력이 없었지만 스크린샷으로 담아두었답니다.
기분과 감정은 어떻게 다를까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이던 내게 승희가 공유해 준 글은 잠시 멈추어 중심이 어딘지 더듬어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어요. 그래서 늦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지금의 마음이 많이 아플지라도, 이것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때로는 심히, 자주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찾아오는 것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거든요.
나약한 순간을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에도 편안함을 주어서 고마워요.
그래서 오늘도 날것의 감정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갑니다.
내게 편지를 쓰던 그 순간보다는 승희가 조금 더 건강하길 바라며
몽골에서, 그웬이
25.06.15 일요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