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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Dec 28. 2023

10. 천재작가, 원고 투고와 회신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똑! 똑! 똑! 출판사의 문을 두드릴 시간이다.”


천재작가에게는 퇴고보다 무서운   하나 있다. 바로 투고다. 고통의 끝을 알 수 없어서 매번 두렵다. “이런 보석 같은 원고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어서 빨리 연락해야지!”라는 열광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이 차갑다. 따스함을 가장한 뾰족한 거절 메일에 가슴이 계속 찔린다. 자존감이 서서히 땅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버텨온 시간이 있으니 포기하기도 어렵다.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위로하며 견뎌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원고 작성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덜덜덜’ 거리며 정상으로 오르는 과정이라면, 투고는 내리막 코스다. 고속으로 내려가다가 한 바퀴 돌고, 좌우로 비틀고 난리도 아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릴 때 즈음 목적지에 도달해서 내린다. 시간을 투자해서 고통을 는 이 행위를 다음에 또 반복한다. 언제까지?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길 때까지.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원고를 완성하거든 심장을 꽉 부여잡아라.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나저나 어렵게 출간 계약에 성공하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4초 광고 후에 알려주겠다.

“천. 재. 작. 가.”

다시 또 시작이다. 롤러코스터에 스스로 올라탄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지금 그렇다. 그게 작가다. 피할 수 없으니 함께 즐기자. 천재작가의 가감 없는 후기를 읽고 미리미리 준비하길 바란다. 탑승한 열차가 어디서 돌고, 어디서 회전하는지 알면 고통은 그만큼 줄어든다. 준비 다 되었나? 안전벨트 단단히 매라. 열차 지금 출발한다.




천재작가답게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5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십만 부가 판매될 첫 책을 반년도 안 되어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긴 시간 새벽잠을 포기하고 쫓기듯이 글을 썼다. 천 번을 쓰고 지우며, 독자들이 환호할만한 이야기로 A4 100장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휴식이 필요하다.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다. 최종 점검마저귀찮다. 어차피 이후부터는 편집자의 영역이다. 출판사에 대충 원고를 투고하고, 오랜만에  발을 ‘쭉’ 뻗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천재작가는 편집자를 존중한다. 젠틀맨다.”


본시 전문가는 자율성을 중시한다. 목차 구성은 편집자에게 기꺼이 위임하고, 교정교열과 퇴고도 너그러이 양도 준다. 글의 콘셉트가 명확하고, 대상 독자의 폭이 넓으니 기획안은 과감히 생략한다. 단, 저자 소개는 작가의 자부심이다. 포기할 수 없다. 신중히 작성해서 포함시킨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 고민만 남는다. 제목 없이 투고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넉넉히 2분 정도 시간을 할애한다. 원고 콘셉트에 맞게 <어느 000사의 환자 겸임 이야기>라는 가제를 정한 뒤, 미리 정리해 둔 50개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낸다. 대형 출판사라도 홈페이지 접수만 받는 곳은 복잡하니 쿨하게 생략한다. 본업이  바쁘다. 연락처를 맞게 기입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발송 버튼을 누른다. 목차와 기획안도 없는 무명작가의 안하무인(眼下無人) 원고 투고가 서막을 알린다.


좋은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유선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는 000 출판사 대표 나00입니다.
010-XXXX-XXXX

그럼


원고 투고 3일 만에 반가운 메일이 도착한다.


예상대로 밝은 눈을 가진 출판사 대표가 관심을 보인다. 첫 에피소드부터 대박이라는 확신을 얻은 게 확실하. ‘곧’이라는 단어 선택에서 그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원고를 다 읽고 오후쯤 전화를 줄 것으로 예상해 본다. 대표 입장에서는 천재작가가 다른 출판사와 먼저 계약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비록 출판사의 역사는 짧지만 나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이니 만나주기로 한다. 작은 규모도 아쉽긴 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다.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속마음을 드러내않도록 애쓴. 약속을 최대한 미루면서 상황을 지켜본다. 받은 연락처로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저장하고 전화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낸다. 어느덧 기고만장함은 구름을 뚫고, 저 멀리 안드로메다를 향해 한참을 날아가는 중이다. 입이 ‘쩍’ 벌어진 채로 하루를 보냈더니 극심한 피로가 밀려온다. 그 많은 인세를 어디에 다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다 잠이 든다.




하루가 지났지만 눈 밝은 대표는 연락이 없다. 


스마트폰은 고요하고, 이메일은 광고로 가득하다. 불안한 마음에 십 년 넘게 진동을 유지하던 휴대폰 꺼내 벨소리로 전환해 놓는다. 이따금씩 걸려오는 모든 스팸 전화를 반갑게 인사하며 받는다. 금세 실망하고 끊기를 반복한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연락이 없으니 초조함이 극에 달한다. ‘곧’ 연락 준다던 출판사 대표는 감감무소식이다. 예로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다. 슬픈 예감이 적중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히 원고 투고 2주 차가 되니 출판사에서 하나둘씩 회신을 보내온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1. 보내주신 투고메일 잘 받아 보았습니다.
신중히 회의를 한 결과 송구스럽게도 저희가 아직 미숙하여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셨는데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2. 보내 주신 원고 <어느 000사의 환자 겸임 이야기>는 잘 살펴보았습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는 거리가 다소 멀어 출간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해드립니다.
모쪼록 눈 밝은 출판사와 인연이 닿으셔서 책으로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좋은 원고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부에서 함께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저희가 잘 만들어내고 또 잘 판매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논의해 보았지만, 장점이 많은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 원고에 적합한 또 다른 빼어난 출판사가 있어서, 성공적으로 발행되고 독자들에게 널리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있는데도, 00사를 기억해서 소중한 기획안과 원고를 보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추후 또 다른 기획으로 다시 말씀을 나누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날 보내십시오.

4. 보내주신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소중한 제안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회를 얻어 정말 영광입니다.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작업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답변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좋은 기회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00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류00 선생님, 안녕하세요?
00 인문교양출판부입니다.
 
먼저 소중한 원고를 저희에게 보여주셔서, 그리고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전에 투고해 주신 기획의 검토 의견이 정리되어 메일 드립니다.

보내주신 에세이 원고는 편집부에서 흥미롭게 읽고 논의해 보았습니다만, 저희의 출간 방향 및 향후 일정 등을 고려했을 때 출간은 어렵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렇게 짧은 말로 아쉬운 의견 전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저희는 출간에 함께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의료진의 자리에서 환자의 자리로 옮겨가게 되었을 때의 마음을 상세히 담아주셔서 많은 분들께 위로를 주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원고가 잘 맞는 출판사, 눈 밝은 편집자의 손에서
좋은 책으로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그리고 가정에 평안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
~~~


수십 개도 더 적을 수 있으나 이쯤에서 참는다.


출판사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메일이 받은 메일함을 가득 메운다. 기대감이 실망감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 준다. 급기야 삼시 세끼, 식사 대신 아쉬움으로 배를 채운다. 이 고통은 끝을 알 수 없어서 더 괴롭다. 치료약은 출간 밖에 없는데 도무지 처방이 안 난다. 하루하루 기다림에 지쳐가던 중, 다행히 기다리던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다. ‘곧’ 연락 준다던 눈 밝은 출판사 대표다. 주먹을 불끈 쥐고, 올레! 하며 소리친다. 버킷리스트 첫 줄에 두 줄을 박박 그을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귀를 향해 주욱 올라간다.




“나00 세 글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쿵! 쾅! 쿵! 쾅!’ 기존에 가진 최고 기록을 하려는 듯 전력을 다해 빠르게 움직인다.”


주로 24시간 이내의 의미로 사용하는 곧을 적고 3주 만에 연락한 걸 보니 고민이 깊었던 듯싶다.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이다. 무명작가와 책을 내는 게 출판사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낯선 이와 통화를 꺼리는 극 ‘I’ 성향이지만, 이상형을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미팅 약속을 잡는다. 작가는 언제나 갑이다. 1주일 후 근무하는 직장에서 퇴근 후에 만나자고 하니, 알겠다고 한다. 천재작가의 자부심이 숱한 거절로 인해 겸손함에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는 시점이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지만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다. 작은 출판사도 괜찮다. 책만 만들어지면 판매는 자동이다. 흔쾌히 계약을 결심하고, 현관문을 연다. 오늘따라 유독 아내의 두 눈동자가 사랑스럽게 빛난다. 가장이란 직책에 ‘외벌이’가 추가되면서 깊이 잠들어 있던 ‘허세’가 다시 깨어난다. 양 어깨가 2cm 정도 위로 높게 올라가더니, 급기야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뱉는다.


자기야, 갖고 싶은 거 있어? 말 만 해. 오빠가 다 사줄게!”


귀가와 동시에 그동안 고생한 배우자에게 희망찬 미래를 암시한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오늘 저녁은 외식이야!”를 크게 외친다. 하늘에 붕 뜬 채로 ‘룰루랄라’ 하며 약속일을 기다린다. ~,  가지 단점은 있다. “저 작가 됐어요”라고 여기저기 떠드느라 목이 나갈 지경이다. 흑흑.


눈 밝은 나00 대표와의 만남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이어진다. 작가답게 아쉬움은 무한 퇴고로 달래며 기다리길 바란다.




# 작가의 말


에버랜드 ‘T익스프레스’에는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안전’이라는 믿음이 공포감을 이기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라는 확신을 갖고 줄을 선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으로 롤러코스터는 탑승객에게 스릴과 짜릿함을 선물해 준다. 서두에서 원고 작성과 투고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출간을 준비하는 작가에게 안전벨트는 무엇일까? 바로 ‘좋은 원고’다. 백번을 읽어도 재미있고, 독자의 머릿속을 바쁘게 만들며, 다수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원고라면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벨트에 뜯어진 곳은 없는지,  금이 간 곳은 없는지 확실히 확인한 후에 열차에 탑승하길 바란다.


“당신의 원고는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한지 묻고 싶다.”


작가의 생각을 먹고 자란 튼튼한 원고는, 길고 긴 여정 속에서 출간이라는 목적지까지 주인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열차에서 환하게 웃으며 하차할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도전할 용기를 얻길 바란다. 좋은 원고와 함께라면 즐겁고 안전한 탑승이 당신을 기다린다. 내가 경험했고, 이제는 당신 차례다.


안전벨트 단단히 매라.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시즌 2행 열차가 이제 곧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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