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방자 원고 투고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한 주 쉬어가려 했으나, 여기저기서 다음 편을 기대하며 발행 계획을 묻는다. 독자에 대한 기대를 저 버리는 것 또한 작가의 도리가 아니다. 고민 끝에 마지막 에피소드를 앞당겨 발행한다. 담백한 글을 읽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제목 : 그래, 육아
부제 : 파더스 하이(Father's high)
딸아이에게는 삼십여 년 세월을 뛰어넘어 친구처럼 지내는 여성이 한 명 있다. 둘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주로 일요일에 만난다. 아이와 온몸으로 소통을 하는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육아 경험은 없지만 알코올로 동심을 간직해서인지 유치원생과의 소통에서 이질감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엄마로 신분을 바꾼 친구들이 많다 보니 아이템 선정 능력도 탁월하다. 색칠 놀이를 시작으로 도블, 공기, 얼음 깨기 등을 다양하게 준비해 놓고 적시에 사용한다. 거실 한쪽에는 작은 조립식 편의점을 제작해서간식도 채워 둔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여성은 바로 딸아이의 고모다.하나뿐인 내여동생은 음주가무 중 ‘가무’는 잘 모르겠으나 ‘음주’는 키 크고 잘 생긴 남자만큼이나 좋아한다. 불금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는 늘 집을 비운다. 월급 대부분을 결혼 자금으로 모아도 부족한 판국에, 술집 사장님의 가계에만 기여를 한다. 하늘 높이 치솟는 집값을 보고 있으니오빠로서 마음이 늘 무겁다.
만 19세, 여동생은 음주가 합법이 된 시점부터 이따금씩 아침 6시에 귀가한다. 장남의 책임감으로 “외박하고 왔니?”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히면, “아니, 택시비 아까워서 술 마시다가 첫차 타고 왔는데?”라고 답하며 결백을 주장한다. 심지어 본인의 근검절약(?)을 자랑하며 부모님의 속을 썩인다. 잠은 집에서 자니 외박이 아니라고 강조하는데, ‘밖에 나가 잠’이라는 외박(外泊)의 한자 의미를 확인하니 반박하기가 어렵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동생은 MBTI도 ‘E’로 시작해서 생일 주간이 되면 케이크의 촛불을 7번은 꺼야 직성이 풀린다. 숙취와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오빠와는 다르게, 컨디션 한 병 마시지 않고 과음을 해도 다음날 컨디션이 좋으니 더 자주 마시는 듯하다. 대낮에 맥주 한 병을 잔에 부어 물처럼 마시는 걸 볼 때면, 남매 중 한 명은 부모님의 친 자식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내게 불리한 진술이지만 굳이 증언하자면, 6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엄마 배 속에 있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내가 주워온 자식이라는 의구심은 품고 싶지 않으니, 여동생이 산부인과에서 바뀌었을 것이라고 의심해 본다. 하지만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뒤, 속상해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의구심을 거둔다. 이러나저러나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지 이제는 여동생도 종종 숙취에 시달린다.
여섯 살 딸아이는 서울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을 키즈카페에 가는 것만큼이나 좋아한다. 하나뿐인 고모가 아빠 몰래 짜파게티도 끓여주고, 한 달치 섭취량이 넘는 설탕을 한 번에 때려 넣은 프렌치토스트도 만들어주니 매번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딸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본가에 가는 길이 늘 설렌다.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기 때문이다. 특히 부녀 둘이서 가는 날이면, 여동생이 전날 과음을 하지 않았을지 초조해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고모가 컨디션이 좋아야 조카와 더 잘 놀아준다.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며 설렘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결혼 10년 차, 오랜 추억이 쌓인 내 방은 창고로 이름을 바꾼 지 이미 오래다. 부득이 안방 침대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다 보면, 꿈속에서나마 여동생이 주인공인 결혼식에 다녀올 수 있다. 잠시나마 부모님의 꿈을 이뤄드리는 동시에 나 또한 짧은휴식을취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여동생의 숙취를 여러 번 경험한 이후, 본가에 가기 전날이면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촬영한다. 이제는 이 상황이 익숙해진 딸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레디’를 하면 자동으로 ‘액션’을 시작한다. “고모, 술 조금만 마시고 나랑 내일 놀자.” 연기자의 간절함이 담긴 영상을 카톡으로 전송하고 부녀의 평화로운 일요일을 기대하며 잠이 든다.
미혼 여동생이 조카와 잘 노는 비결을 궁금해하는 내게, “고모는 마음이 6살인데, 당신은 감정이 6살이니 6살 딸이랑 맨날 싸우지.” 하고 아내가 비밀을 알려준다. 일주일 후, 다시 본가에 가서 꿀보다 달콤한 수면을 포기하고 여동생을 지켜보니 다르긴 하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조카에게 “그래.”라는 말만 반복하며 따라 준다. 감정만 6살인 아빠는 눈치 없이 “그거 아니야. 이거는 이렇게 해야지.” 하고 지적해서 혼나는 상황에서도, 기독교 모태신앙인 여동생은 부처님이 보여주신 해탈의 경지를 선보이며 “그래.”를 반복한다. 그래 바로 저거다. 다행히 즉시 깨우침을 얻는다.
월요일 저녁에는 유독 몸이 더 지치고 피곤하다. 이건 내 사정이다.동심가득한딸은 속세의 힘듦 따위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아빠의 퇴근을 반기며 칼싸움을 제안한다. “아빠 힘들어. 좀 쉬었다가 하자.”라고 말하려던 찰나, 부처님의 얼굴과 오버랩된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목소리의 톤을 한 옥타브 높여 “그래.”라고 답하며 광선검을 받아 든다. 세 평 남짓한 거실 공간에서 쉼 없이 칼을 부딪히며 동심으로 돌아가 “얍! 얍! 얍!”을 외친다. 족히 1시간은 지난 것 같지만 시계를 보니 겨우 10분이 지나 있다. ‘배터리가 다 됐나?’라는 의심을 품는 순간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절망이다. 아빠의 속 마음을 모른 채 신이 난 딸아이는 “아빠 잠깐만!” 하고는 방에 뛰어 들어가 활을 들고 나온다. 궁사가 된 심정으로 집중해서 활시위를 1시간 정도 당기고 나서 시계를 보니, 이번에도 정확히 10분이 지나 있다. 아마도 우리 집 거실 시계는 국방부 시계만큼이나 느린 것 같다. 원망할 새도 없이 총을 들고 1시간 같은 10분 동안 총싸움을 이어간다. 이제 막 30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온몸이 쑤신다. 운동할 시간이 없는 아빠를 위해 유산소 운동을 시켜주는 딸아이가 고맙고 사랑스러워야 하는데, 현실은 자꾸만 육체의 피로가 감사함을 이기려고 한다.
평소보다 격한 아빠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딸아이는 급기야 ‘마법 카드’를 꺼내든다. 축구 결승 전에서 사용되는 레드카드 보다 더 무서운 카드다. “강아지로 변신해라. 얍!”하는 순간 두 팔을 다리로 전환해서 네 다리로 앉아 “멍! 멍!” 하고 짖어야 한다. 고양이, 코끼리, 펭귄까지 변신을 마치고 나니 딸이 이번에는 “물로 변해라. 얍!” 하고 주문을 외운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당황한다. 냉정을 되찾고, 아이에게 “물로는 어떻게 변하는 거야?”라고 묻는다. 아이는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를 수 있느냐, 는 뉘앙스를 보이며 등을 바닥에 대고 몸을 뉜다. 드디어 휴식시간이 왔다. 10초간 변신하면 된다는 딸에게 정중하게 1분간 변신을 요청한다. “1분이 얼마큼이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10을 6번 세면 돼”라고 알려주니, 흔쾌히 “알겠어.” 하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월요일 저녁 9시, 거실 바닥 4cm 두께의 폭신한 매트에 몸을 눕히니 천국이 따로 없다.
부캐에 남편만 있을 때에는 퇴근 후 종종 달리기를 하며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했다. 30분 이상 달리기를 지속하면서 고통이 서서히 쾌감으로 변해가는 기분을 즐겼다. 부캐에 아빠가 추가되면서부터는 운동할 여유는 사치다. ‘스트레스 하이(Stress' high)’ 상태가 지속되면서 멘탈만 자주 집을 나간다. 예민한 상태에서 6살 딸과 놀다 보니 감정이 6살이 되어 어린 딸과 자주 다툰다. 그러던 중 여동생에게 배운 ‘그래, 육아(?)’를 실천하며, 아이와 30분간 열심히 놀다 보니 ‘파더스 하이(Father's high)’를 경험하게 된다. 30분 넘게 땀 흘리며 달리고 나서 얻을 수 있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보다 더한 쾌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10초 같은 1분이 금세 지나간다. 계속 ‘물’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이 다시 주문을 외운다. “다시 사람으로 변해라. 얍!”
다행히(?)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축구를 30분 정도 더 한 뒤, 아이를목욕시킨다. 하루 일과를 마감하는 기념으로 동화책을 세권 읽는다. 마음을 비우고 6살 동심으로 돌아가 칼을 들고 이리저리 흥겹게 뛰어다녔더니 종아리가 땅긴다. 잠자리에 누운 딸아이도 피곤했는지 정확히 2분 만에 잠이 든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순간, ‘파더스 하이(Father's high)’가 다시 온몸을 휘감는다.
육아란, ‘지옥에서 천사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던가? ‘파더스 하이(Father's high)’는 그 천사만이 선물해 줄 수 있는 기쁨이다.
The end.
# 작가의 말
이 정도 수준의 글을 40편 모아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겼다. 돌이켜보니 출간은 마라톤이나 다름없다. 아주긴 여정이다. 고통은 기본이고 포기는 옵션이다. 천재작가는 같은 꿈을 꾸는 예비작가들에게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주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한 무명작가의 시행착오가 이곳에 다 담겨있다.작은 도움이라도 얻길 바란다.모든 일이 다 그렇듯, 필력만큼 믿음도 중요하다.자극적이지 않은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은 이미 작가가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그러니 제발 자신감을 가득 채워 결승선까지 가보자.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시즌 2'의 저자는 당신이 될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성탄 보내고, 다음 주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