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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Dec 14. 2023

08. 천재작가, 집필 보조금의 비밀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두근두근. 오늘은 집필 보조금을 받는 날이다.


천재작가는 2주에 한 번씩 264,390원을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8년 동안 쉬지 않고 받고 있다. 한 달이면 527,780원, 일 년이면 6,345,360원이다. 받은 총액을 합치면 5천만 원이 넘는 큰 금액이다. 연체도 없고, 세금도 안 뗀다. 어쩌다 보니 유명세를 얻었다. 비어있는 2주는 사기업 2곳에서 또 다른 지원을 받는다. 심지어 금액은 더 크다. 각각 250,000원과 50,000원, 총 300,000원이 격주마다 통장으로 입금된다. 한 달이면 600,000원, 일 년이면 7,200,000원이다. 이 역시 3년이 지났으니, 총액으로 따지면 2천만 원이 넘는다.


“집필 보조금 1억 원이 코앞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따라야 할 절차가 있다. 상급종합병원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한 뒤, 외래주사실에 방문해서 접수를 한다. 이름이 호명되면 커튼이 쳐진 좁은 공간에 들어가 옷의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린 뒤, 긴 의자에 앉는다. 혜택이 가득해서인지 간호사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유독 설렘으로 다가온다.


“환자분, 성함과 생년월일 확인하겠습니다.”


커튼이 열리면 호칭이 바뀐다. ‘작가님’이 아니고 ‘환자분’이다. 저 사실 작가예요라고 귓속말로 알려주고 싶지만 속으로만 삼킨다. 엄밀히 따지면 환자분이라는 호칭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보조금 지급에 관계있는 문제는 아니니 쿨하게 넘긴다.


“환자분, 주삿바늘 들어갈 때 따끔할 수 있습니다.”


주사의 통증이 기쁨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삼일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진통제를 삼키며 이 날만을 기다린다. 주삿바늘만 보면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 100번도 더 맞을 수 있다. 내게 ‘따끔’은 일반적인 고통의 감각아니다. 행복의 시작을 알리는 축복의 신호탄이다. 묵비권을 행사하며 간호사에게 ‘따끔’에 대한 동의를 표한다. 곧이어 차가운 알코올 솜이 피부를 적시고,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살에 꽂힌다. 20초 정도 서서히 약물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투약이 끝나면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낀다. 아니, 정말로 다시 태어난다. 옵션으로 플라시보 효과가 더해진 덕분이다. 커튼을 열고 나오면 새로운 2주가 눈앞에 펼쳐진다. 오해하지 마라. 이 약은 마약이 아니다. 의사가 직접 처방해 준 치료용 주사제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픔과 슬픔을 각자의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


천재작가가 ‘강직성 척추염’과 동행을 한 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2주마다 ‘자가 면역 치료제’ 주사를 맞으며 일상을 유지한다. 비타민처럼 진통제를 수시로 복용하며 하루를 버틴다. 자매품으로 전신에 올라오는 두드러기도 있다. 볼펜심만 한 작은 점이 두세 시간 만에 주먹만큼 커진다. 온몸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넓은 부위를 감싸며 하루 종일 간지럽힌다. 기분 좋은 간지럼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만원 지하철에서 술 냄새나는 변태 아저씨와 내 살이 맞닿은 느낌이다. 피할 수도 없다. 긁으면 긁을수록 고통만 더 커진다. 작은 점 여러 개가 일상을 금세 지옥으로 바꾼다.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하루 12알 알약을 일 년 넘게 복용해도 효과가 없다. 고통이 길게 이어지던 차에 우연히 희망을 발견한다. ‘졸레어’라는 주사제를 접하면서 다시 천국 문이 열린다. 대한민국 의료기술 만세를 외친다. 지금은 복용 약 없이 격주마다 주사 치료를 받으며 두드러기를 관리한다. 긁지 않는 삶. 이것만으로도 이승이 곧 천국이다.


“나이 마흔을 넘기니 주변에 아프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눈치챘는가? 집필 보조금은 바로 병원 치료비다. 강직성 척추염은 국가에서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하여 치료비의 90퍼센트를 부담해 준다. 월급에서 또박또박 떼어가서 얄밉게만 느껴지던 건강보험료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두드러기 주사는 아직까지 급여 적용이 안 되어 치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한다. 실비 보험이 없었다면 삶이 더 끔찍했을 듯싶다. 귀가 얇은 어머니가 보험설계사를 만난 인연으로 큰 고비를 넘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덧 9년 차 중증 환자인 천재작가는 건강 보험과 의료 실비, 제약 회사 지원금을 받으며 살아간다. 한 달 주사비만 백만 원이 넘는다. 그런데 행복하단다. 매주 대학병원 외래주사실에서 주삿바늘을 살에 찌르고, 진통제로 배를 채우면서도 행복한 이유가 무엇일까? ‘4초 광고’ 후에 알려주겠다.


“천. 재. 작. 가.”


바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 힘들 때 조용히 손을 잡아줄 사람. 언제든 내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사람. 늘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아내와 딸이 있다. 아프지만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운 나날이다.


국가와 기업에서 받은 은혜는 글을 써서 보답한다.


자고로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 세상에 온기를 전하기 위해 자음과 모음에 문장부호를 더해 그림을 그린다. 독자들 머릿속에 행복한 그림을 가득 그려 넣는다. 한 꼭지, 한 꼭지 원고가 쌓이다 보니 어느덧 투고할 분량이 나온다. 평범하지 않은 일상은 결국 거름이 되어 출간계약으로 이어진다.




“모든 삶이 곧 글이다.”


어떤 사연이 당신 손에 펜을 쥐어 주었는지 궁금하다. 앱과 웹, 텔레비전과 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완성한 귀한 원고임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지 않는가? 나도 바란다. 그런데 무명작가에게 출간이라는 현실은 생각보다 혹하다. 펜으로 하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원고 투고는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다. 모든 의욕을 잃고 살이 쭉쭉 빠진다. 이메일이 도착하면 환하게 웃다가, 열고나면 우울해지는 일상이 반복된다. 위장 장애는 기본이고, 원형 탈모는 옵션이다. 인간의 의지로 견디 힘든 시간이 길게 이어진다. 원고 투고 전, 이를 ‘꽉’ 깨물고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에필로그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


천재작가는 원고를 투고하면서 아내에게 전할 특별한 선물을 하나 기획한다.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기고, 에필로그로 사랑을 고백하는 멋진 꿈을 꾸며 도전을 이어간다. 감동을 받고 ‘주르륵’ 눈물을 흘릴 아내를 생각하니 지속 힘이 생긴다. 원고 작성보다 긴 시간을 버텨내고, 결국 해낸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달콤한 사랑 고백을 넣는다.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귀를 향해 돌진한다.


본격적인 원고 투고가 시작을 알린다.”


천재작가의 오만방자 원고 투고 과정을 공연장 맨 앞줄에서 생생하게 목격하고 싶지 않은가? 어서 빨리 엄지로 ‘구독’을 눌러라. 무명작가의 가감 없는 후기를 읽고 도전을 계속해라. 포기만 하지 않으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신에게 “왜 저만 이렇게 불행해야 합니까?” 하고 원망의 소리를 내뱉고 싶을 때, 그때가 바로 기회다. 조용히 펜을 들어라.


“당신의 삶이 곧 글이 될 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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