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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Feb 02. 2020

1917

위대한 영화

<1917>에 대해 논하기 위해선 영화의 형식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롱테이크. 영화 전체가 단 두 개의 컷으로 되어있다. 


특정 장면에 극적 효과를 주기 위해 롱테이크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단 한 번만 끊긴다. 온몸의 감각을 집중하여 영화를 본다면 커트와 커트 사이의 이음새를 몇 군데 발견할 순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영화는 딱 두 개의 커트밖에 없다. 



롱테이크는 경제적이지 않다. 실수가 날 경우 처음부터 다시 촬영해야 한다. 정해진 기간과 예산 내에서 촬영을 마쳐야 하는 영화의 경우 롱테이크란 형식은 정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고집할 필요는 없다. 짧은 시간 안에 제작을 마쳐야만 하는 TV 드라마에 컷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조차 이제는 많은 커트로 나누어진 영화를 선호한다. 커트가 짧을 수록 역동적으로 느껴지고 커트가 길어지면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1917>을 단 두 개의 커트로 만들어 냈다. 하지만 한 커트안에 담겨있는 다양한 영상들을 보며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다. 


영화 <러시아 방주>(2002) 중 


<1917> 이 전에도 영화 전체를 하나, 흑은 두 개의 커트로 구성한 영화들은 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버드맨>은 영화의 클라이맥스까지 단 한 커트로 되어있고, <러시아 방주>란 영화는 영화 전체가 원 커트이다. 모두 대단한 영화들이지만 롱테이크라는 형식만으로 비교할 때 <1917>은 <버드맨>과 <러시아 방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을 해 냈다. 



<러시아 방주>는 거의 모든 장면이 실내 촬영이고, 실내와 실외를 오가는 <버드맨>의 경우에도 중요한 사건들은 주로 실내에서 벌어진다. 연극 무대와 분장실은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이다. 롱테이크라는 형식이 매우 어렵겠지만 촬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의 설치는 가능해 보인다. 반면 <1917>은 실외에서 시작하여 주인공들은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직선으로 걷기 시작한다. 조명을 달 수 있는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철조망을 넘고, 시체 웅덩이를 건너 적진에 도착할 때까지 같은 장소는 단 한 번도 반복되지 않는다.


영화 <버드맨>(2014) 중


<1917>을 관람하고 난 후에야 롱테이크란 형식이 <버드맨>에 어울렸는지 고민하게 된다. 롱테이크의 중요한 효과 중 하나는 영화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을 일치시켜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버드맨>이란 영화는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3일이라는 시간이 들어있다. 관객이 느끼는 시간과 영화 속 시간이 다르다. 롱테이크라는 형식을 고집하기 위해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시간을 흐르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1917>은 영화의 내용상 시간의 촉박함이 중요하다. 1,600명의 아군을 살리기 위한 지령을 들고 시간 내 아군 기지에 도착해야만 한다. 쉬지 않고 걸어서 도착한 어느 시골집 마당에 전투기가 추락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트럭을 타고 내릴 때도 카메라는 마치 유령처럼 주인공을 따라다닌다. 과연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어떤 모습일까? 씬(Scene) 번호는 적혀 있을까?



영화 속에서 유일한 커트가 발생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기절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기절에서 깨어난 이후 카메라는 걷는 것을 멈추고 달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2층 창문을 통과한 카메라가 앞으로 전진하고 주인공이 강에 빠지고 폭포에서 떨어져도 카메라의 감시는 계속된다. 영화를 보고 있건만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분명 블루 스크린이 가득 차 있는 대형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영화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애니메이션이다.’


이것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마지막 추측이었다. 하지만 또 틀렸다. 검색창에서 “1917 making”, 혹은 “1917 behind scenes”으로 검색했을 때 스튜디오가 나와있는 영상이나 사진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대규모 물량이 투입된 1960년대의 전쟁영화 촬영 장면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유령이고, 이 영화는 한 편의 마술쇼이자 서커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q4t3f6LmDA


기술적인 면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1917>은 영화로서 재미있다. 같은 형식의 영화인 <버드맨>과 <러시아 방주>는 소수의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영화인 반면 <1917>은 다수의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이다. 당시 아군 병사들을 구하기 위한 두 주인공들의 사투는 흥미진진하고, 전쟁이라는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총격전과 대규모 전투씬 같은 액션이 적절하게 포함되어 있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이다. 



올해 골든 글러브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 감독의 <아이리시맨> 대신 <1917>을 선택했다.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골든 글러브의 결정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적인 아카데미까지도 올해 <아이리시맨> 대신 <1917>을 선택할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1917>이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우리의 <기생충>이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라는 것이 안타깝다.


*Hago.kr에 새로운 글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https://www.hago.kr/journal/view.php?sno=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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