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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Nov 24. 2021

서치

텍스트가 말을 거는 영화

* 3년 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사이트가 사라져서 제 개인 공간에 다시 업로드 합니다.



누구라도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의 SNS 대화 내용을 본다면 국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입에서 나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 쓴 것 같은 문장이나 뇌를 거치지 않은 듯한 표현은 읽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정작 상대방은 그 표현들을 알아듣고 답신을 보낸다. 대학생이라고 해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내 친구는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작성할 때 이모티콘은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대학 리포트에 이모티콘을 쓰다니, 워드 프로세서도 없어서 손으로 리포트를 작성하던 세대들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걱정할 일일까? 대학교 리포트에 이모티콘을 쓰면 안된다는 법칙이라도 있던가? 과거의 학생들이 이모티콘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 아니라 이모티콘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교육으로서 글쓰기는 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글짓기는 수업 시간에 하는 것이고 일기는 늘 숙제였다. 개학 전 한꺼번에 몰아서 써야만 했던 방학 숙제로서의 일기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초등학생(혹은 국민학생)일 때 사랑의 매보다 무서운 형벌은 원고지 10장짜리 반성문이었다. 3장 채우기도 힘든데 10장이라니… 논술은 또 어떤가? 이처럼 글을 쓰는 일이란 고통이었기에 글쓰기는 결코 놀이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학창시절 놀이로써의 글쓰기는 여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친구와 주고받던 쪽지가 유일하다.


PC통신 하이텔 초기화면


90년대 초,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인 PC 통신이 생겼다. 2MB 크기의 사진 한 장을 다운로드 받기 위해서는 30분 이상 기다리던 시절이었으므로 온라인 게임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오리지 할 수 있는 한가지 기능은 몇 바이트짜리 글자를 써서 상대방에게 전송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채팅이란 놀이를 만들어 냈고, 채팅은 곧 범국민적인 놀이가 되었다. 채팅을 하기 위해 스스로 키보드 타이핑 하는 법을 자발적으로 습득했고, 자신의 감정을 더 쉽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이모티콘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내가 최초로 목격한 이모티콘은 콜론과 우괄호의 조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 



PC 통신이 등장한지 30년 가까지 지났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다양한 게임들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건만 여전히 사람들은 채팅을 한고,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SNS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했던 지금의 10대들은 역사상 그 어느 10대들보다 많은 텍스트를 읽고 쓰면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10대 뿐 만이 아니다. 글쓰기가 괴로웠던 어른들도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이모티콘이 없어도 글이 올라오는 속도, 상대방이 글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언제 읽었는지, 그리고 글의 뉘앙스를 보고서도 상대방의 감정을 판독해낼 수 있는 능력자들이 되어있다.



영화 <서치>는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딸의 행적을 추적하는 아버지 데이빗(존 조)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사라진 가족의 행방을 추적하는 스릴러 영화는 많지만 <서치>가 특별한 이유는 그 아버지가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 경찰도 아니고 특수부대 출신도 아니고 기억력이나 추리력이 뛰어난 탐정도 아니다. 그냥 IT 회사를 다니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고, 유일한 재능이라면 사라진 딸 마고의 야후 웹메일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 뿐이다. 그는 딸이 두고 간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SNS 사용 기록, 이메일, 동영상 들을 조회하며 딸이 사라진 장소와 그 이유를 필사적으로 따라다닌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를 연기한 존 조가 한국계 미국인라는 점이나 별 능력이 없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점은 영화의 관객과 영화의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든다.   



<서치>를 관람한다면 누구라도 컴퓨터의 화면 속의 텍스트가 마치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타이핑을 하는 속도와 타이핑한 텍스트를 지우는 장면들을 보는 순간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 굳이 화났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슬프다고 울 필요도 없다. 심지어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장면에서도 수많은 감정의 전달이 된다. 만일 이 영화가 1980년대에 개봉했다면 관객들은 텍스트를 통해 주인공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배우의 대사보다 많은 컴퓨터 화면의 텍스트가 등장하는 영화 <서치>를 보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유 역시 우리가 현재 많은 글을 읽고 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녀들의 SNS를 보며 국어 교육의 미래가 걱정하는 어른들도 10대 때 방황을 했을 것이고 글쓰기 실력은 형편 없었을 것이다. SNS가 없었기에 자신의 글쓰기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말보다 텍스트로 소통하는 시대이다. 감정의 전달까지도 텍스트를 통해 해 낸다. 만일 <서치>에 등장하는 소리없는 텍스트를 보며 주인공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은 소통이 부족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만일 자녀들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읽고 쓰고 있다면 가급적 자유롭게 놔두자. 몇몇 10대들에게 인성 교육이 필요할지 몰라도 글쓰기 교육만은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래 집단에 어울리기 위해 스스로 글을 쓰는 과정에 개입하지 말라. 그들이 스스로 익힌 단문은 중문이 되고 장문이 되고, 우수한 품질의 보고서가 될 것이다. 


영화 <서치>는 MZ세대들에게 말보다 글이 더 중요한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하다. 영화 <서치>의 감독인 아니쉬 차칸티(좌)는 1991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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