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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Apr 05. 2023

더 페이버릿

욕망의 끝

* 2019년 3월에 작성했던 글 입니다.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는 17세말부터 18세기초 영국 왕실 배경의 영화이다. 영화 같은 삶을 살던 주인공들은 놀랍게도 모두 실존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립한다. 



말버로 공작 부인으로 알려진 사라(레이첼 바이즈)의 욕망은 권력이다. 사라는 여왕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정치적 동료였고, 여왕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여왕과의 친분관계는 이미 그녀에게 많은 권력을 부여했음에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여왕 조차도 꼭두각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사라를 가장 위협하는 사람은 남성 권력자들이 아닌 그녀의 사촌 여동생인 에바게일이다.



에바게일(엠마 스톤)의 욕망은 권력이 보장해주는 부와 쾌락이다. 몰락한 귀족의 딸이었던 에바게일은 귀족이었던 과거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현실을 직시한다. 다시 귀족이 되기 위한 그녀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여왕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면 매를 맞을 수 있는 위험 정도는 기꺼이 감수한다. 귀족이 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던 그녀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사라 뿐이다.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이 사라와 에베게일 중 누구를 선택하는지, 누가 가장 좋아하는(the favorite) 사람이 되는지 알아가는 것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이다. 남성들의 지배하던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여성들의 대결은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만큼 흥미롭다. 세 명의 여주인공들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지만 동시에 너무도 괴팍하기에 어느 한 사람만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다.



세 명의 주인공들 중 가장 괴팍한 사람은 단연 앤 여왕이다. 국가 최고의 권력자인 앤 여왕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시대나 어느 국가나 왕을 뛰어넘을 수 있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죽기 전까지 임기가 끝나지 않는 중세 유럽의 여왕이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그런 여왕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왕의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쉽게 권력을 얻는 방법은 현재의 권력자와 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유명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허세를 부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 이러한 권력의 작동 원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앤 여왕은 사라와 에바게일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이 둘을 이간질한다. 여왕도 자신만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왕이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위로와 친밀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앤 여왕에게선 고정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여왕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 여왕의 우아함 대신 인생의 굴곡만이 보인다. 어쩌면 여왕이 악역일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 시작하던 찰라, 여왕에게는 17명의 자녀가 있었고 그들이 모두 요절했다는 사연을 듣게 된다. 앤 여왕이 17명의 자녀를 (기록에 의하면 19명) 잃었다는 것은 놀랍게도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 어떤 비극보다도 비극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관객들은 여왕을 동정하게 된다.


불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앤 여왕은 평생 병마에 시달렸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은 아이를 잃었다는 정신적인 고통과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17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잃은 심정이 어땠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조금이나마 여왕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괴팍한 행동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앤 여왕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아픔을 알아봐 달라는 시그널이다.


앤 여왕 초상화 - 출처 위키피디아


영화 속에선 괴팍했지만 영국 역사가 평가하는 앤 여왕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스페인,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통합 군주이기도 하였다. 앤 여왕 때 차지한 지브롤터는 스페인에 위치한 영국령으로서 아직까지도 주민의 대다수가 스페인으로 편입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했던 앤 여왕이 삶을 지탱해가며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여왕이라는 지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침에 눈을 뜨며 밤에 눈을 감기 전까지 국가의 모든 중대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그녀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잠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친다는 것은 그녀에게 사치였다. 국가의 존망을 가를 수 있는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했기에 슬픔을 잊어야만 했다. 아마도 그녀가 평생 병마에 시달렸던 이유는 아플 수 없던 정신 대신 신체가 아팠던 것이다. 그런 여왕에게 친구이자 정치적 동료였던 사라는 필사적으로 기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라는 여왕의 욕망에 무심했다. 여왕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솔직한 것이라고 믿었기에 여왕을 동정하지도 않고 않았다. 그 때 나타난 사람이 에바게일이다. 여왕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여왕을 위로해주는 에바게일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에서 세 주인공들의 욕망은 묘한 균형을 이루어 낸다. 만일 사라가 지금의 권력에 만족하고, 에바게일은 지금의 편의에 만족하고, 앤 여왕도 지금의 위로에 만족했다면 이 균형은 오랫동안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사람을 현재 상태에 만족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던 바가 충족되는 순간 그 다음을 원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본성이고 유사 이래로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했던 적이 없다. 현재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그녀들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균형이 무너졌고 결국 아무도 행복해지지 못했다. 

‘욕망’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부정적이다. 왠지 이룰 수 없는 소망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이유는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또 다른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 믿는 우리는 300년 전 그녀들처럼 오늘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욕망한다. 


욕심을 버리는 자, 그 즉시 행복해 질 것이다. 이것은 이 영화가 이 시대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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