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를 위한 길입니다.
#22
맛있게 먹고 숙소로 들어왔더니 대부분 자고 있다. 시간이 10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다들 오늘 하루 걷느라 고단했나 보다. 일본인 친구가 안 자고 있길래 잠시 얘길 나누기로 했다. 어려 보이는 이 친구는 개인 가이드와 포르투에서 걷기 시작했단다. 그녀는 동생이 죽고 폐쇄공포증과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일본 전역을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녀가 걷는 걸 알게 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산티아고를 가보는 게 어떠냐며 추천하셨다고. 그래서 인스타로 개인 가이드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가이드인 베네수엘라의 리오를 알게 됐고 dm을 보내서 일정을 조율하고 산티아고로 오게 됐다는. 어린 나이에 상처가 컸고 그 상처를 극복하려 무던히도 애쓰는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그도 그럴 게 외형적인 모습만 본다면 그런 일 한번 겪지 않았을 듯한 웃음기 많은 맑고 고운 모습이라.
그렇게 이야길 나누고, 이야길 나누는 중에 프랑스 할아버지(머리가 하얗게 쇄신)가 자기소개를 하길래 '봉주르'했더니 한국어로는 인사말이 뭐냐 물으신다. 당신 같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는 '안녕하세요'러고 해양고 한다고 가르쳐줬더니 너무 어렵단다. 그리고 한참 있다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나보다 네가 어린 걸 아냐?'라고 그래서 '어, 그러게요?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 했더니 빵 터진다. 내게 장난을 치려다가 되려 당신이 장난의 대상이 된 격! 이후에 스패니쉬 아주머니가 오셔서 잘 자란 인사를 하고 우리도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한 곳에서 자는 알베르게에서 나는 푹 자질 못한다는 걸 알았다. 잠이 들었다가도 깨버려 총 수면시간이 네 시간 안팎 밖에 되지 않는. 새벽 다섯 시경에야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 탓에 일곱 시 반이 훌쩍 넘어서 깼다. 여덟 시 반쯤 길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길에 힘차게 나 홀로 시동을 걸어본다. 바다와 자연에 둘러싸여 걷는 이 길은 지루할 틈 없이 즐겁다. 여전히 발은 아프지만 참을만하다. 화살표와 비석 등에 의지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스페인의 해안길에는 노란색 페인트로 순례자 길을 떡하니 표시해 뒀다. 누가 봐도 '이건 순례자들을 위한 길입니다'라는...
아침을 먹을만한 곳이 나오지 않아 세 시간을 내리 걸었다. 다행히 물통은 가득 채워왔다. 이젠 물도 사지 않고 수돗물을 담아서 먹는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수돗물을 마셔도 괜찮다, 맛이 수돗물 맛이 날 뿐. 수질의 좋고 나쁨을 떠나 물이 바뀌면 설사나 배앓이를 하는 경우가 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생수를 사서 먹는다. 2년 동안 유럽물을 브리타(정수기)를 통해 먹은 나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해본다.
저 멀리 간이 건물이 보인다. 순례자들을 위한 표시도 해놨다. 벌써 많은 순례자들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건물로 들어갔더니 아담하지만 테이블이 다섯 개나 있고 메뉴도 꽤 다양하다.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시간이 다 돼서 크로와상보다는 좀 더 헤비 한 걸 먹고 싶다. 여러 메뉴를 둘러보다 어제 내가 뿔뽀(문어)를 먹고 있을 때, 옆테이블에서 먹던 칼라마리(오징어 튀김)가 생각나서 칼라마리와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맥주를 한잔 들이켜고 있자니 주인장이 칼라마리를 가져다준다. 이런!!!! 이건 너무 맛있어 보이잖아!!!! 엄청 신선한 오징어를 바로 튀겨서 줬으니 말 다했다. 고무신을 튀겨도 맛있을 텐데 신선한 오징어라니!!!!! 아, 한입 베어무니 오동통한 살이 씹힌다. 어떤 부분을 먹느냐에 따라 소금이 조금 많이 뿌려진 곳도 있지만, 괜찮다! 레몬즙을 살짝 뿌려 신맛을 조금 첨가하고 같이 나온 빵을 함께 곁들이면 짠맛이 중화되며 잘 어우러진다. 이랄 때 금상첨화란 말을 쓰는 건가. 게눈 감추듯 먹기 기술을 시전 했다. 너무 만족스러운 식사다. 이런 간이식당만 있다면 좋겠다 싶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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