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걷다보니 이곳
이제 만나이 40이 되었다. 작년부터인가 유독 한가지에 대한 명료함이 생겼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제야 언어로 뱉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생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이러한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다. 더불어 시간과 기회가 마치 나에게 무한히, 혹은 아주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각자의 삶의 궤적이 있을 것이고 거기서 오는 희노애락이 있을텐데 구태어 나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다. 수만번 내 머릿속에서 멤돌았던 것이기에 나에게는 무척이나 지루한 주제이다. 하지만 이제 어떤 부분에서 나의 습관(혹은 선택)을 유지할건지, 아니면 바꿀 것인가를 단호하게 선택하고 살아나가야 되겠다는 다짐이 이 시간과 기회의 유한성을 몸소 느끼며 더욱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연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 1번은 몸의 변화이다. 신체의 많은 부분이 퇴화하고, 체력도 달린다. 건강 관리는 물론이거니와 정신과 감정 관리도 해나가더라도 그 누구도 가장 쌩쌩한 몸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으리라.
두번째는 적당히 남들 눈치 안봐도 특별히 내가 실수하는 것 잘못하는 것이 없고, 주변에서도 나에 대해 특별히 경계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뭐가 뭔지’ 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범위에 대해 40년간 체득되어 대부분의 것들이 익숙하여 별 문제가 안되고, 심지어 지겹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어떠한 선택이 사회적 이해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한마디로 도대체 왜? 진짜 특이하네 같은 말을 듣더라도)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나만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어느정도의 비난이나 조롱은 웃어넘길 정도로 담담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제 사십은 나의 유아시절의 배경 그리고 유전적 신체나 기질로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더이상 문제삼지 않아야 할 나이이다. 나에게 단점이나 장애물이라 생각했던 어떤 것들도 그대로 두어서는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내가 그것을 극복하던지, 긍적적으로 역이용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인정하고 안고 가야지 더이상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면 그건 이제 자신이 문제의 근원이다.
나도 지금 내가 여기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이 썩 내키진 않는다. 이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에 열심히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결국 지금의 내 평가는 아쉬움 70%, 자기위로 20% 그리고 안도감 혹은 뿌듯함 10% 정도인 것 같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늦기는 죽도록 싫다. 이제 철저히 나답게 살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냐고? 지금 나는 건강, 직업, 관계, 삶의 습관을 특정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계속 내 주변을 멤돌지만 나도 아직 명확히 캐치하지 못한 것. 아니 그걸 알면 내가 이따위 글을 쓰고 있겠냐고..
지금까지 열심히 매달려 왔지만 이제 더욱 확실히 움켜쥐고 껍질을 벗길 것이다. 그럼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