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 대손이며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홀의 오 대손이요 말기야의 육 대손이며
13. 또 그 형제의 족장 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 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가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묵상
본문은 성전 제의와 예배 진행을 위해 필요한 분야의 사역자들, 즉 제사장, 레위인,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했음을 알린다 인구 유입을 위해 아무나, 아무 곳에나 정착하게 한 것이 아니라, 성전 사역에 필요한 자들로 예루살렘을 규모 있게 채우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오늘 나는 21절 말씀, 느디님 사람들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느디님 사람들은 히위 족손의 자손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에 꾀를 내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이다. 그들은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 일로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집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수9:23) 대대로 성전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유다는 멸망했고, 성전은 무너졌다. 유다와 성전의 몰락은 느디딤 사람들에게는 성전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느디님 사람들은 여전히 성전을 위해 헌신한다(21절). 느디님 사람들은 편안함보다 생명을 선택한 것이다. '헌신의 목적이 쾌락과 부유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일 때 주님은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우리 이름을 불러주신다.'
삶에 적용 및 기도
나는 22년 6월, 소명을 받아 신대원에 입학하기를 결심했다.
하지만 회사원이었기에, 퇴사를 결심하는 것은 내게 어려웠다. 당시 외국계 제약사 회사원이었던 나는 대리직급으로 원천징수로 8천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었다. 인센티브가 많은 직종이었기에 실연봉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8천만 원'을 기억하는 이유는연말정산을 할 때면 '8천만 원이 넘어---'로 시작하는 알림 창에 '확인'을 눌러야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던 기억 때문이다. 아마도 연봉 별 세금구간이 8천만 원을 기준으로 더 높은 세금이 측정돼야 했기 때문에 뜬 알림 창이 었을 것이다. TOSS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연봉 상위% 데이터를 보고서야 또래 회사원 대비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워라밸이었는데, 가족들은 '그런 회사 없다.'라고 했고, 동기들은 연봉 대비 이런 워라밸이라면 개꿀이지 않냐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남자친구는 '너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완전 '땡보'라고 말하곤 했다. 다만, 회사 생활을 하며 하나의 지독하리 힘들었던 문제는, 우울과 무기력에 빠질 만큼 맞지 않는직무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당시 소명은 받았으나 여전히 내게 돈과 커리어는 중요했고 연봉 대비 워라밸이 좋다는 사람들의 평가를 듣다 보니, '내가 정말 이 회사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년 봄부터 작게나마 신대원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회사를 내려놓는 것을 갈등한 이유는 '그 회사' 때문 만은 아니었다. 신대원에 입학하다는 것은 즉 교역자(종교인)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다는 것이다. 소명자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듯,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대로 내 삶을 내어드리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퇴사하고 신대원에 입학한다면 나의 평생의 길을 '목사'로 결단하는 일이었기에 갈등이 컸다. 무엇보다 내게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번도 나 스스로 꿈꿔본 적이 없는 길이고, 내가 원한 길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고민했다. (막상 신대원에 입학하고 보니, 특별한 부르심의 경험 없이 교역자가 되기를 소망해서 입학하는 이들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르심'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정의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우와 같이 직접 기도 하며 반복하여 명확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개인은 목사라는 직업에 대한 특별히 소망함은 없었으며, 직장생활을 잘하다가 오는 사람은 드문 경우였다.) 신대원에 입학한다면, 내 남은 인생은 세상적인 것은 단 하나도 추구해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순종으로 각 영혼들을 사랑하며 기도와 말씀으로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매우 사랑하는 편인데, '나 자신의 인생' ,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평생 말씀대로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 평생이 망해버린 것과 같이 느껴졌다. 순종을 결단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든 마음의 갈등들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결단하여 신대원생이 되었다.
23년 봄, 신대원 입시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회사로부터 회사 전체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게는 모든 타이밍상 확실한 하나님의 인도로 느껴졌다. 희망퇴직이라 함은 내 발로 퇴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희망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희망퇴직을 자주 하는 회사가 아니었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확실히 느껴졌지만, 그래도 '희망퇴직'이라는 것 자체가 회사원이던 내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실제로 퇴직하는 일자가 오기까지 두 달간 큰 방황을 했다. 희망퇴직 후에 외자사와 국내사 직원들로부터 본인들의 회사에 추천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막상 희망퇴직을 하니 신대원 입학에 대한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갔다. 8년간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러면서 느꼈던 직무에 대한 갈등을 이제야 해소할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2의 인생'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신대원에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지배했고 그렇게 9월까지 더욱 깊은 방황을 했다.
그러다 10월에 있던 교회 수련회에서, 하나님은 내게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했으나 니느웨로 간 것처럼, 너 또한 그렇게 하리라.'는 말씀과 '목사로 세울 것이다.'라는 명확한 마음을 주셨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대원 입학을 결단했다. 사실 나는 23살 때 처음 소명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 지나친 열정으로 그런 음성을 들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신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는 두 번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더 이상 회피하고 시간을 지체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할 수도 없으며, 주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선하고 좋은 길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나는 24년 2월,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여 1학기를 잘 마무리하게 되었다. 1학기는 참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매우 은혜로왔으며 기뻤던 시간들이다. 현재 2학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인데, 나는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2년 차에 접어든 나는, 여전히 개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제도에 저항감이 컸으며 나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하지만 신대원 1학기를 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신 부분은 '가정의 소중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것이었고, '가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마음을 반복적으로 주셨다. 출산과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해 언제나 부정적이던 나는 나 스스로 임신을 위해 학교를 휴학하게 되었다.
사실 그 과정이 마음적으로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도 학교 생활에 집중해서 잘 해내고 싶은데, 교회에서는 임신한 여성과 사역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은 아닌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마음의 불편함은 존재한다. 또한, 학교 시스템 상 신대원생은 1학년 2학기 때부터 교회 사역을 해야지만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학교에 문의하기를 '임신한 상태이면, 교회 사역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할 때, 내가 들어야 했던 답변은 "임신한다고 교회 사역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이거나, 몇 번 씩이고 남자 상담직원과 실갱이를 해서 나오는 결론은 '내가 임신을 하든 출산을 하든 그것은 너 사정이고, 신대원에 왔으면 우리 규정대로 하는 거지 뭔 말이 많아.'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몇 번씩이고 경험해야 했다. 그러면서 '교회야 말로 가장 보수적이고 오히려 차별적인 곳은 아닌지?' 또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런 문의상담을 몇 번이나 하고, 사실은 여성으로서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마음의 상처도 적잖게 받다 보니 이 학교는 임신과 출산을 하며 학업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의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무식함과 무자비한 말들로 인해 울며 전화를 끊고 기도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내 인생의 때가 가정을 바로 세울 때, 아이를 가질 때라는 비전과 마음을 받아왔기에 2학기를 휴학하고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 감사한 것은 내가 휴학을 한 후, 여학우들로부터 안부 연락과 중보기도하겠다는 연락을 한 달이 넘도록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의 마음에 감사하다.
막상 휴학을 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조급했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30대의 중후반을 출산과 육아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가?라는 마음에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고, 억울한 마음에 하나님께 따져 묻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제가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저는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이러고 있어야 해요? 제가 뭘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신대원에 왔는데, 왜 제가 이렇게 있어야 하냐고요. 남편은 자기 일도 계속 잘하는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라는 기도 말이다. 나의 불평 섞인 질문들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받은 삯'을 응답으로 주셨다. 창세기 3:16-17 말씀.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그리고, 나의 억울함 토로에 '생명이 소중한 걸 알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따끔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살리신 것처럼, 생명이 그렇게 귀하다는 마음, 그리고 날 위해 네가 좀 내 편이 되어달라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아이를 이미 준비하셨고, 그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귀한 한 생명의 존재라는 마음 등.. ' 여전히 내 마음의 답답함은 완전히 풀리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기도를 하며 하나님 안에서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휴학 후 한 달이 지났는데, 조급한 마음이 많아지다 보니, 내 마음속 불안이 올라와 옛 자아의 모습이 올라오곤 했다. 임신, 출산, 초반양육까지 하면 적어도 3년 이상일 텐데 이 3년 동안 내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내가 벌었던 월급의 절반이라도 어떻게 회복하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국어교원 자격증도 신청하고, 이 3년 동안 전문직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보고, 유튜브도 시작해 보고, 불안에서 기인한 여러 행태들이 드러나는 한 달을 보냈다. 물론, 성경도 읽고 신앙 서적도 열심히 읽어 놓으려고 통독 강의도 신청하고 여러 장치는 해 놓았지만, '내가 3년 뒤에도 무능력한 경력단절녀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불안이 올라오면서 성경 읽기, 기도, 큐티는 뒷전이 되고 하루 종일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조회수에 일희일비하는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폐해지곤 했다.
그러다, 남편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 (참 고마운 사람이다.) 다시 '성경 읽기, 큐티, 기도'를 최우선 과제로 놓게 되었다. '돈을 벌 수 있어야 내가 나를 책임지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우상을 붙잡고 나는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돌이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이상 그 이후의 삶도 내어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구한다. 퇴사와 신대원 입학의 순종이 문제가 아니라, 평생 동안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우상들을 제거하며 주님 앞에 씨름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나의 영적 전쟁은 진행 중이며, 주님께 매일 나아감으로 승리할 것이다. 오늘 느디님 사람들의 헌신을 보고, '헌신의 목적이 쾌락의 부유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일 때 주님은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감동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내가 퇴사하며, 내 남은 제2의 인생에 하고 싶은 것도 내려놓고, 주님께 순종하겠다며 신대원 입학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주님께 헌신을 결단한 이유가 내 삶의 쾌락이나, 내 삶이 부유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영원한 생명'을 위함 일 때 나는 바로 설 수 있고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했던 결단들을 헛되이 하지 말자.
주님께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며 보내는 이 시간들이, 개인적으로 답답하더라도 주님 앞에 계획된 시간임을 믿으니 이 시간 동안 더욱 예비목회자로 깨끗해지고, 말씀을 바로 알게 되고, 신학적으로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기를 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처럼 살아가는 매일을 살게 되길, 그렇게 훈련되어 '영원한 생명'을 우리 부모님과 가족들 주변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께 구한다.
- 2024/09/23 (월), 생명의삶PLUS QUIET TIME, 느헤미야 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