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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Sep 24. 2024

척박해도 하나님의 비전으로 보자(느11:22-36)

2024/9/24(화), 생명의 삶 PLUS QT

말씀 본문 (느헤미야11:22-36, 개역개정)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시바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주었기 때문이며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디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에거주하며

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못에 거주하며

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과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의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본문 해설

본문은 예루살렘에 유다 자손(25-30절)과 베냐민 자손(31-36절)이 어디에 분포되어 살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곳에 나열된 유다와 베냐민 도시들을 통해 느헤미야 당시 유다 공동체가 거주했던 지역의 범주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지명들은 또한 선조들이 개척하고 정복하고 일궈 놓았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선조들의 역사는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역사적 전통 위에 귀환 공동체가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보고할 때, 갈렙이 한 고백을 보고 갈렙에게 약속을 주셨다.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신1:36)고 약속하신 것이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14:12)라고 요청해 그 땅을 정복해 기럇 아르바를 기업으로 얻었다. 성경은 그 땅의 이름을 '헤브론'이라고 부른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이처음으로 소유한 땅이다. 사라를 매장하기 위해 구입한 땅으로, 죽음을 위한 땅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야곱과 에서가 만나 화해했다. 즉, 헤브론은 어그러진 것들을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를 지니 땅이다. 포로기 이후 유다 백성은 거주지로 생활하기 편리한 곳을 찾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갈렙의 후손인 유다 자손은 조상들의 기업인 기럇 아르바에 거주한다. 그곳에서 새롭게 회복된 헤브론의 비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의 자리는 편안함과 부유함만을 꿈꾸는 자리여서는 안된다. 힘들고 척박해도 그곳에 담긴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절망은 엄청난 눈덩이와 같아서 우리를 파묻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신앙을 회복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비전을 찾게된다. 무너진 것을 재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보잘것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면 된다.


삶에 적용 및 기도


1. 오늘 본문에서 각 자손들이 거주했던 지역이 소개된다. 그리고 그 곳은 선조들의 역사이자 하나님의 역사 이기도 하다고 하신다. 올해 나는 신대원에 입학하며 '가정'에 대해 많이 묵상하게 되었다. 평생 '불교 공동체의 리더십'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에 대한 고민은, 전도사가 되면서 더욱 커지게 되었다. 부모님 전도의 첫번째 책임자는 바로 가족들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도 전도하지 못하면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말인가.' 라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더불어 기도 하며, 하나님은 내게 '베드로가 반석인 것처럼, 나 또한 가정에서 신앙의 반석이 되어야 한다.'라는 마음과 '가정예배를 세워야 한다.'는 마음을 반복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서 있는 곳도 우리 가문의 역사이다. 어릴적 나와 언니의 기억 속에는 절에서 보낸 추억이 참 많다. 어린 나이 때 부터 부모님을 따라 가장 유명한 스님(법정스님 이었던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께 가서 기도받고, 용돈을 받기도 했다. 해당 스님은 사람이 호흡할 때 입자가 보인다는 소문이 돌았던 분이라 내 기억에 더욱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학교의 방학 시즌 때 했던 템플스테이, 철야기도(불교 용어로는 잘 모른다.)에 따라가 새벽 내내 불자들과 함께 탑을 돌며 부모님을 따라 기도했던 기억, 등등 우리 가족의 추억은 절 안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 하기도 한다. 

나는 선조들의 역사 위에 서 있다. 감사히도 하나님은 언니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언니를 회심시키셨고 그 후로 4년쯤 뒤 나 또한 구원해 주셨다. 형부와 내 남편은 신실한 크리스챤이기도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번 달 추석에는 처음으로 가문예배를 드렸다. 올해 내내 '가문예배'에 대한 마음이 기도중에 들었던 터라, 순종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가문예배 드리자."라는 내 말에 주일 예배는 한사코 거절했던 부모님이 함께 참석 해 주셨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전도사가 된 딸의 예배 인도를 시작으로, 큰사위의 대표기도, 첫 손녀의 플룻 찬양, 둘째 손자의 성경 설명(귀여운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성경은 어떻게 읽는 건지 친절히 설명과 안내 해 줬다.) , 모두 돌아가며 말씀은혜 나눔, 큰딸의 마지막 대표기도로  예배는 끝마쳐 졌다. 아직, 신앙은 없으시지만 부모님이 참석하신 첫 가문 예배라니! 언니와 나는 큰 감격에 빠졌다. 그리고 집중해서 부모님을 놓고 기도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선조들의 역사 위에 서 있고, 이제는 하나님이 주권자로 우리 선조들의 죄를 씻어주시고 주님의 영혼으로 돌이키겠노라고 선포하셨다. 기도하며 깨닫는 것은 내 열정이 아니라, 우리 가문을 돌이키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먼저였고 그것의 수순으로 언니와 나의 회심과 크리스챤인 두 사위를 우리 가정에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아갈 것이다. 우리 가문의 주인인 하나님께 제대로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릴 수 있도록, 우리 가문의 역사가 하나님이 주인이신 역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로 순종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문은 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미래의 후손들은 '내 선조들의 역사 = 하나님의 역사'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역사 위에 태어날 것이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문을 돌이키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2. 헤브론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내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재' 와 '하나님 계획 안에서 바라보는 현재'는 다를 수 있다. 어제 밤에도 남편과 나의 답답함에 나누곤 했다. 나는 성장욕구가 많고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다. 경제력이든 체력이든 그것은 '나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를 책임질 수 없으니까 내가 능력이 있어아해.'라는 내 뿌리깊은 신념은 쉽게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내것을 모두 내어드리지 못하는 두 마음으로 갈라지곤한다. 올해 2월, 신대원 입학 후 결혼 후 1년이 넘은 터라 차차 아이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마음으로 난임병원을 찾았다. (처음부터 정확한 병원에 가야 어떤 상황에든 대처가 가능하다 생각했기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이라는 강남ㅊ 에 간 것이다.) 그리고, 자연임신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확률이 낮아서,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게됐다. 신대원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동안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지만, 모든 일정이 내 몸 컨디션에 달려있었고 (난포가 얼마나  컸는지, 난소는 어떤지 등등을 수시로 체크하며 그 상태에 따라 시술이 진행된다.) 병원에 오라고 하는 날짜에 가지 못하면, 나는 한 달을 더 기다려야 다음 시험관시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은데 2학기에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내심 어려울수 있겠다 생각은 했었는데 그래도 욕심같아선 어떻게든 학기를 계속 진행하고 싶었다. 

그러다 시험관 시술 과정 중 '난자 채취'를 하게 되었고, 수면 마취에서 눈을 뜨자마자 '휴학을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 가득 채워졌다. 금요일에 난자 채취를 했던 터라, 주말까지 고민을 하다 눈물을 머금고 월요일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열정이 넘쳤던 터라 2학기에 수업할 책들도 이미 모두 구매를 상탠 끝내였고, 그 책들을 예습하고자 조금씩 읽기 시작하던 때였다. 

열정이 많은 만큼 상심이 컸다. 임신을 하려고 하면 '나'라는 사람이 준비하던 커리어나 일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휴학을 하고 한 달이 되었는데, 아이와 가정에 대한 소망보다 내 커리어와 삶에 대한 기대가 컸던 사람이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회사도 원하는 만큼 다녔고, 몇 수 씩 한다는 신대원에 몇개월 공부하고 입학했고, 1학기도 열정적으로 공부를 잘 했고, 아이를 가지고 싶을 때 누구는 돈벌어야 해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는데 나는 이렇게 편히 쉬면서 아이준비를 할 수 있으니 표면적인 내용들을 놓고 보면 객관적으로 감사한 시간들이기도 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내 답답함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올라왔다 조금 나아졌다를 반복한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드는걸까?' 를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내 인생의 '고난, 위기'라 함은 청소년기 때 지나치게 사춘기를 경험하며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는 어둠과 무기력 속에서 방황했던 과거가 하나이고, 

이후에는 대학교 편입을 준비하며 겪었던 스트레스, 그리고 취업준비를 하며 겪었던 깊은 스트레스 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부분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내가 원하는 목표와 내 실력 차이'에 있었고, 내가 실력을 높이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했던 방법은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는 방식이었고, 내 자신을 몰아붙여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내 왔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인내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것이다.

병원 스케쥴 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바를 마음껏 할 수 없고 대기를 하고 있는 대기조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원하던 학업을 내려 놓고 휴학까지 했는데, 내 몸 상태에 따라 '이식일'이 미뤄지곤 해서 한 달 기다리고, 두 달 기다리고, 내가 생각한 스케쥴 대로 도무지 움직여 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휴학을 할 때 스스로 용감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지 않던 내가 가정과 아이를 위해 휴학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기있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용기있는 결정'을 했으니 평소의 나처럼 시험관 시술의 과정도 집중해서 일사천리로 해버리고 싶은데, 내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내가 삶을 살아온 방식과 무언가 성취해온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요구한다. 그 속에서오는 '참을 수 없음.' '답답함, 분노'가 불일듯이 올라와 마음을 힘들게 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 큐티를 하며 신앙의 자리는 편안함과 부유함의 자리가 아니라, 힘들고 척박해도 그 곳에 새긴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감동이 된다. 이 시간들 또한 하나님의 큰 계획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 방식을 내려 놓지 못하고 나의 방식대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큰 비전으로 보았을 때, 지금의 시간이 나에게 약이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언가 성취하는 것이 내 스스로를 몰아붙여서 이루는 방식이 아니라, 평안히 하나님이 내게 주신 휴식을 누릴 때 오히려 더 잘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시간들 또한 강제휴식으로 느껴지지만, 내게는 가장 필요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내 남편은 내게 '모터가 달린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마음 편하게 쉬지를 못하는 성향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해야 한다.' 는 것이 DNA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다. 


하나님,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이 휴식의 시간을,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게 해 주세요. 제 마음은 척박하나 제 삶의 모든 부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채우시지  않으신 것이 없으시니 감사합니다. 마귀의 속삭임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며 기쁘게 매일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 시간들 동안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혹 하지 않아야 한다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을 허락 해 주세요. 가정과 아이에 대해 말씀 하신 분 하나님이시니, 가정과 아이를 위해 헌신되는 시간들 제가 잘 감당하게 하시고 그 과정가운데 저를 홀로두지 마시며 언제나 응답하여 주셔서 주님 원하시는 바를 알아 제가 기쁨으로 순종하고 그 열매들을 함께 맛보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제 이기심으로 제 마음만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고 선포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제게 비전을 허락하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세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9/24 (화), 생명의삶PLUS QUIET TIME, 느헤미야 1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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