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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Oct 18. 2021

#발췌 <달과6펜스>/서머싯몸/송무옮김/민음사

발췌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 (8p)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물론 기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비평가가 진정한 가치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9p)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11p)


찰스 스트릭랜드는 살아 있을 때 이름 없는 화가였다. 그에게는 친구보다 적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그의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부족한 기억을 메우려고 마음대로 공상을 동원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아주 적었지만 낭만적인 성향을 가진 문사라면 거기에서 이미 충부한 이야깃거리를 발견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의 생애에는 기이하고 끔찍한 일들일 많았고, 그의 성격에는 어딘가 난폭한 점이 있었으며, 그의 운명에는 비통하게 여겨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으로부터 현명한 역사가라도 선뜻 공격하기 힘든 하나의 전설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11p)


내가 여기에서 얻는 가르침은 작가란 글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7p)


큼지막한 코에 눈이 탐욕스러웠던 커다란 몸집의 고집 센 여자들이 생각난다. 이들은 마치 갑옷처럼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목소리는 상냥하면서 눈빛이 영악했던 조그만 몸집의 생쥐 같은 독신녀들도 생각난다. 장갑을 낀 채 버터 바른 토스트를 먹는 이들의 고집스러움에 나는 얼마나 반했는지 모른다.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면 손가락을 의자에 쓱 문질러대곤 했는데 그 태연스러우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바라보았다. 의자가 더러워질 것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이 집 여주인 역시 친구들을 방문할 때 그 집 가구에 똑같은 짓으로 복수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21p)


예술가에게는 보통 사람들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친구들의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작품까지 풍자의 제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22p)


로즈 워터퍼드는 냉소주의자였다. 그녀는 인생을 소설 쓰는 기회 이상으로 보지 않았고 대중을 소설의 소재로 보았다. 대충 가운데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집에 초대하여 아낌 없이 대접했다. 그녀는 명사들에게 약한 그들 대중을 장난스러운 경멸감을 가지고 보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 앞에서는 저명한 여류 작가답게 점잖게 처신했다. (24p)


지금 생각해 보니 햄스테드의 품격 높은 언덕으로부터 저 밑바닥 체이니 워크의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유명 작가라면 사족을 못 쓰고 좇아다니는 이들 가운데에서 스트릭랜드 부인은 그래도 제일 순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시골에서 아주 조용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뮤디 대본 문고에서 내려보낸 책들은 낭만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런던의 낭만까지 함께 싣고 왔다. 진짜 독서광이었던 그녀는 (대개는 책보다 지은이를 더 좋아하고 그림보다는 화가를 더 좋아하는 그녀 또래의 소녀로서는 드문 경우였다)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낸 다음 거기에서 일상의 세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작가들을 알게 되자 여태까지 어두운 객석에서만 구경했던 휘황한 무대에 자신이 직접 올라서게 된 듯한 벅찬 감격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연극 구경을 하듯 작가들을 바라보았으며, 이제 그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굳게 닫힌 그들의 세계도 방문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이 정말 더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따. 작가들은 인생을 게임하듯 살았는데 그녀는 작가들에게는 그런 방식이 어울린다고 여겼지만, 자기는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작가들의 기팍한 도덕관도 기이한 옷차림이며 터무니없는 논리나 역설처럼 그저 재미있게 여겨졌을 뿐 그녀의 신조에는 눈곱만치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7p)


나는 좀 외로운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언뜻 엿보았던 그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은근히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다을 자기네끼리 주고받으며 몹시 재미있어 했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따분한 사람이라고는 하나 그건 아무래도 말재주만을 기준으로 따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환경에 적합한 머리를 갖추고 있었따. 그것이야말로 상당한 성공뿐만 아니라 행복까지도 보장해 주는 요건이 아닐까. 스트릭랜드 부인은 매력적인 여자인 데다 남편을 사랑했다. 나는 그들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골치 아픈 모험에 시달려본 적이 없고, 정직하고 점잖다. 또한 의젓하고 귀여운 두 아이들 덕분에 그들 종족과 계급의 정상적인 전통이 운명처럼 이어지리라는 것도 의심할 수 없었거니와, 그것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36p)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그것에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는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이게 마련인데 그들 역시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치 몸 안의 세포들 같았다. 필수적인 요소이면서 건강한 상태에서는 더 중요한 전체 유기체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스트릭랜드 가족은 중산층의 평균적인 가정이었다. (37p) 


좀 부끄러운 노릇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고 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40p)


그때만 해도 나는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 그러니까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하고나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그런 기분을 애써 자제하는 것 같았다. (44p)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이 소문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고 약간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의 평판이 여자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몰랐기 때문이다. 세상 평판은 여성의 가장 내밀한 감정에도 위선의 그리자를 드리우는 법이다. (53p)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56p)


맥앤드루 대령이 그처럼 자신있게 말했던 방탕스러운 사치의 흔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스트릭랜드가 한쪽 의자 위에 놓여 있던 옷을 마룻바닥에 밀어 던져주어, 나는 그 의자에 앉았다. (59p)


조그만 방안에서 보니까 그는 전에 보았던 때보다 훨씬 커 보였다. 그는 낡아빠진 노퍽 재킷을 입고 있었고, 면도는 벌써 여러 날째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난번 보았을 때는 말끔한 차림이었지만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했지만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내가 미리 준비해 둔 말을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59p)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한참 동안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자가 돌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아주 젊었고 상대방은 내게 중년으로 보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딴 건 몰라도 몹시 놀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그림을 그려본 적은 있나요?」

「어렸을 적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소. 하지만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면 가난하게 산다고 하면서 장사일을 하게 만들었지. 일년 전부터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소. 한 일 년 야간반에 나가 그림을 배웠어요.」

「부인께 클럽에 나가 브리지를 한다고 하고 거길 나갔단 말인가요?」

「그렇소」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알리고 싶지 않았소」

「그림은 그릴 줄 아십니까?」

「아직은 안 돼요. 하지만 될 거요. 여기 온 것도 그 때문이지. 런던에서는 바라는 걸 얻을 수 없었소. 아마 여기서는 가능할 거요」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 팔 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

「어째서 그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대답이 없었다. 눈길은 지그시 오가는 인파를 향해 있었지만 나는 그가 인파를 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나는 그려야 해요」 

「승산 없는 도박을 하자는 것입니까?」

그러자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두 눈에 야릇한 빛을 띠고 있어 나는 어쩐지 불안했다.

「나이가 몇이오? 스물셋?」

그 질문은 엉뚱하게 느껴졌다. 내 나이쯤이면 모험을 할 수 있겠다고 하겠지만 그는 벌써 청년기를 넘기고 버젓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증권 중개업자이며, 아내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사람이다. 내게라면 자연스러운 선택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터무니없는 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디까지나 공평한 입장에 서고 싶었다.

「하기야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 훌륭한 화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가서 일을 그르쳤다고 후회하면 큰 낭패가 아닙니까?」

「난 그려야 해요」 

그는 되뇌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구」

「제가 왜 맹추입니까? 분명한 사실을 말하는 게 맹추란 말인가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ㅈ어말이지 그는 악마에게라도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악마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그를 갈가리 찢어 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천연덕스러웠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눈길을 받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낡은 노퍽 재킷 차림에 허름한 중절모를 쓰고 앉아 있느 그를 어떻게 볼까 궁금했다. 바지는 헐렁하고 손은 더러웠다. 수염을 깎지 않아 더부룩한 붉은 턱, 작은 눈, 커다랗고 공격적인 코, 이것들이 다 투박하고 상스럽기만 하다. 입은 큼지막하고 입술은 두텁고 육감적이었다. 정말이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67-69P)



나는 젊었고 그는 양심이 무딘 사람이었기 때문에 둘 다 식욕은 좋았다. (70p)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말주변이 좋지 않아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이 마음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어주지 못하는 듯, 그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따라서 판에 박힌 상투어, 속어, 모호하고 어정쩡한 몸짓을 통해 그의 의도를 짐작해야 했다. 그런데 대단한 표현은 못했지만 그의 개성에는 사람을 따분하지 않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71p)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어떤 창조의 본능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창조 본능은 그 동안 삶의 여러 정황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찌만 마치 암이 생체 조직 속에서 자라듯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서 마침내 존재 모두를 정복하여 급기야는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까지 몰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새끼가 부화하면 다른 새의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마침내는 그들을 보호해 준 둥지마저 부수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창조 본능이 하필이면 이 우둔한 증권 중개인을 사로잡아 파멸시키고, 그를 의지해 사는 사람들마저 불행에 빠뜨린 다는 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기야 권력 있고 부유한 인간들의 혼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다 마침내 그들을 성령으로 굴복시켜 사로잡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안락과 여인의 사랑을 버리고 수도원의 고통스러운 금욕적 삶을 선택하게 만드는 신의 뜻보다야 더 기묘할 건 없다.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따.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그 전환이 광신자에게처럼 단숨에, 사도들에게처럼 광포하게 왔다고나 할까. (75p)


여자가 인습을 넘어서려다가 성난 도덕심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게 되면 기겁을 하고 재빨리 체통이라는 방패를 찾는다. 나는 남들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허세이다. 그것은 남들이 자신의 조그만 잘못들을 비난할 때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들은 아무도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76p)


나는, 양심이란 인간 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를 높은 자리에 앉히고, 급기야는 왕이 매로 어깨를 때릴 때마다 아양을 떠는 신하처럼 자신의 민감한 양심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양심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온갖 독설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사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그런 사람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77p)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85p)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보니 스트릭랜드 부인은 인격자였다. 괴로움이 적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란 남의 넋두리에 금방 싫증을 내고 남의 재난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한다는 걸, 영리한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를 가나 - 친구들은 그녀의 불행을 측은하게 생각하여 그녀를 자꾸 초대하려고 했는데 -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의연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눈에 거슬리는 법이 없었고, 쾌활하게 처신하면서도 뻔뻔하게 굴지 않았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 남의 괴로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어하는 듯했다. 남편 이야기를 하게 될 때에는 늘 연민을 보이며 말했다. (87p)


스트릭랜드 부인의 배타적인 상류 의식에 나는 얼마간 흥이 가시고 말았다.

「바깥분 소식은 혼 들으셨나요?」

「아뇨. 한 마디도 듣지 못했어요. 죽었는지도 모르죠」

「제가 파리에 가면 만날지도 모르겠군요. 소식 들으면 알려드릴까요?」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이 형편이 정말 어렵다면 저도 좀 도울 생각이 있어요. 제가 얼마간 선생님께 돈을 보내드리면 그이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전해 주셔도 되겠죠」

「참 너그러우시군요」

하지만 나는 그 제의가 친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따.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양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90p)


그는 감정에 약한 사람이라 너무 쉽게 마음이 움직이는 바람에 어쩐지 좀 어수룩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의 친절을 받아들이긴 하면서도 고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따. 그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일이 어린애에게서 돈을 빼앗는 것처럼 쉬웠다. 너무 어리석어 경멸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기야 손재주를 뽐내는 소매치기라면, 보석이 잔뜩 든 핸드백을 마차에 그대로 두고 내리는 얼빠진 여자를 본다면 너무 한심해서 분통이 터질 만도 하리라. (93p)


영리하다든가 재미있는 여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진지한 태도에는 어딘지 흥미를 끄는 점이 있었다. 말없는 태도에 어떤 신비로움마저 없지 않았다. (97p)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그럼 저는 왜 당신이 그림이 늘 아름답게 느껴지죠? 처음 본 순간부터 감탄한걸요」

스트로브의 입술이 약간 떨렸다.

「그만 들어가 자요, 여보. 나는 이분과 산보나 좀 하고 돌아오겠소 (102p)


나는 스트릭랜드 자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역시 효과가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말솜씨가 빈약해서 그동안 지낸 일을 그냥 두루뭉수리로 말해 주는 정도라, 빠진 곳은 내 상상력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로서는 잔뜩 호기심이 당기는 인물인데 그 사정을 조금밖에 알 수 없어 정말 감질이 났다. 마치 훼손된 원고를 읽어나가는 기분이었다. (107p)


그의 행색이 너무 남루하여 급기야는 관광객들이 겁을 집어먹게 되었고, 그런 다음부터는 그를 신용할 만큼 대담한 사람들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영국인 의사들을 상대로 특허 약품을 선전하는 광고 문안의 번역을 하기도 했다. 파업 때에는 페인트칠도 해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림 그리기를 한 번도 중단한 일이 없었다. (109p)


「난 과거를 생각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 (112p)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시간이 어디 있소? 연애도 하고 예술도 할 만큼 인생이 길진 않소」 (113p)


그런데 막상 병원에 도착해서, 보기만 해도 메스껍고 음산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 직원 저 직원을 따라 끝없는 계단을 올라간 다음, 장식 없는 기나긴 복도를 지나 간신히 담당 의사를 만나보니, 하는 말이 환자가 중태라 오늘은 아무도 면회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수염을 기른 자그만 사람이었는데 더없이 무뚝뚝 했다. 환자를 환자 이상으로 보지 않았고, 옆에서 조바심 치는 친지들은 방해가 되니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74p)



「정말 대단한, 정말 굉장한 그림이었네. 경외심마저 느껴질 정도였어. 하마터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를 뻔했네. 나는 그림을 좀 더 잘 보려고 몸을 옮겼네. 그때 뭔가 발에 걸려서 보니 내가 떨어뜨린 그림 주걱이었네. 소름이 쫙 끼치더군」

정말 나 역시 그를 사로잡았던 감정을 얼마간 느낄 수 있었다. 기묘한 감동이었다. 가자기 가치 관념이 다른 세계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다. 일상의 사물들에 대한 반응이 전혀 달느 나라에 온 외국인처럼 어리둥절하여 서 있었다. 스트로브는 그림에 대해 얘기해 주려고 애썼으나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는 그가 말하려는 것을 짐작해 볼 도리밖에 없었따. 스트릭랜드는 그때까지 자신을 얽매어왔던 굴레를 과감히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뭐랄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힘으로 넘치는 새로운 혼을 발견했던 것이다. 강렬하고 특이한 개성을 대담하고 단순하게 묘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살결은 열정에 가득한 어떤 관능, 불가해한 어떤 것을 품고 있는 관능으로 채색되어 있었는데, 그렇다고 채색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중량감, 그러니까 육체의 무게를 뚜렷하게 느끼게 해주는 그런 중량감에 그치는 것만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어떤 영적인 것이, 혼을 어지럽히는 전혀 새로운 어떤 영성이 깃들어 있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을 이끌어 가면서, 영원한 별들 만이 빛나는 어둡고 텅 빈 우주를 - 벌거벗은 영혼이 두려움에 떨면서 새로운 신비를 찾아 모험의 여정을 나선 그런 우주를 -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이 설명이 수사적으로 여겨진다면 그건 스트로브가 수사적이었기 때문이다(사람이 감정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게 소설을 쓰듯이 이야기한다지 않는가) . 스트로브는 여태까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어떤 느낌을 표현하려고 애썼지만 그것을 보통의 어휘로 표현해 낼 줄 몰랐다. 그는 마치 언어로는 기술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말로 설명해 보려고 애쓰는 신비주의자 같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표현했다. (191p)


「그래 스트릭랜드를 만나 뭐라고 했나?」

「나랑 같이 네덜란드에 가자고 했네」 (192p)


「우린 결국 둘 다 블란치를 사랑한 셈이 아닌가. 고향 집에 가면 그가 머물 만한 여유는 있을 테고.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사귀면 그 사람들을 사귀면 그 사람 영혼에도 큰 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 뭔가 자기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고」 (192p)


「이보게나,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아나?」

「집어 치워요」

  나는 어렴풋이 내 속마음이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깨닫고 나도 모르게 더 거칠게 말했다.

「당신하고는 알고 지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타락시킬까봐 두렵소?」   (195p)


스트릭랜드라는 인간은 내 쪽에서 아주 애를 써야 겨우 증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196p)


습관이 오래되면 감각도 무뎌지게 마련이지만 그러기 전까지 작가는 자신의 작가적 본능이 인간성의 기이한 특성들에 너무 몰두하는 나머지 때로 도덕 의식까지 마비됨을 깨닫고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때가 있다. 악을 관조하면서 예술적 만족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약간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정직한 작가라면, 특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기보다 그 행위의 동기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다. 작가는 노리를 갖춘 철저한 악한을 창조해 놓고 그 악한에게 매혹당한다. 비록 그것이 법과 질서를 능멸하는 일이 될지라도 그렇다. 셰익스피어도 이아고를 고안해 냈을 때, 달빛과 상상의 실을 엮어 짜 데스데모나를 상상해 냈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는 악당을 만들어내면서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본능 - 문명 세계의 법도와 관습이 잠재 의식이라는 저 신비로운 구석으로 몰아넣은 - 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창조해 낸 인물에 살과 뼈를 부여함으로써 작가는 다른 식으로는 방출될 수 없는 자신의 본능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의 만족이란 하나의 해방감인 것이다. 작가는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 데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다.(197p)


그녀의 고요함은 해일이 휩쓸고 간 섬을 내리덮은 음울한 고요함 같았다. 그녀의 쾌활함은 절망에서 오는 쾌활함이었다. (200P)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좋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바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두려고 하는 거요. 」(203P)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204P)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바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처럼 사람의 자존심에 아픈 상처를 주는 것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기분이 상했다는 기색을 조금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206P)


「자, 가서 내 그림 구경이나 합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내가 왜? 그게 왜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에 비웃음을 담고 내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나는 언뜻 본 것이 있었다. 육체와 결부된 존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무엇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이 그것이었다. 나를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을 언뜻 보았던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내, 남루한 옷차림에 코는 커다랗고 눈은 번쩍이며 수염은 붉고 머리칼은 더부룩한 사내를 바라보았따. 이건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따. 나는 육체를 벗어난 하나의 혼과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206P)



그림을 보고 나니 그 사람이 불러일으켰던 놀라움이 더욱 커질 뿐이었따. 그의 실체로부터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 하기야 그것도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 그는 지금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힘이며, 어떤 방식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인지는 불투명했다. (211P)


더크 스트로브는 곤경에 처한 여자를 도와줌으로써 그녀를 얻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이제 자기에게 굴복하고 말자 더크 스트로브에 대해 어떤 승리감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218P)


그의 진짜 생활은 꿈과 잠시도 쉬지 않는 그림 작업, 이 두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219P)


어떻게 생각하면, 스트릭랜드가 보통 방식으로 성욕을 방출하기 싫어하기 했던 것은 예술적 창조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에 비해 그것이 야비하게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 스트릭랜드를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야비하고 관능적인 인간인 것처럼 그려놓고, 이제 와서 새삼스레 대단한 이상주의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나마저 이상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하니 어쩌랴. (221P)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새시켰다(자기 희생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스트릭랜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221P) 


「이 사람은 괜찮아. 틀림없어. 이 사람은 그림 그리는 일이 아주 끔찍했을걸」

   후에 나는 비엔나에서 피터 브뤼겔의 그림을 몇 점 보았는데, 그제야 스트릭랜드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 이 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또한 자기만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품은 인간이 있었다. (223P)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따.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259P)


「그 친구가 나를 잘못 본 거죠. 왜냐하면 나도 꿈을 가진다는 게 무너지를 아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내게도 꿈이 있어요. 나도 나름대로는 예술가죠」(274P)


그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둥근 구멍에 모난 못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별의별 구멍이 다 있어, 제 구멍을 찾지 못하는 못은 없었다. 여기서라고 해서 그가 더 점잖아졌다거나, 이기적인 성격과 무지막지한 성질이 더 줄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환경이 그에게 유리해졌을 뿐이다. (275P)


「그랬겠죠. 하지만 한 가지 요소가 더 없었더라면 우린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게 뭔데요?」

그는 얼마간 극적으로 말을 멈춘 다음, 팔을 앞으로 내뻗으며 말했다.

「신을 믿는 마음 - 그게 없었더라면 우리는 실패했을 거예요」 (280P)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따.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아랑버린 이의 작품이었따.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따.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그것은 아름답고 음란했다. (293P)



작품 해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레이터는 그가 문명과는 멀리 떨어진 원시의 섬에서 낙원의 비전을 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310P)


따라서 그는 이 해방의 자유 상태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그는 관능적인 사람이지만 자유롭게 열린 정신의 감각을 둔화시키는 육체의 관능은 싫어한다. 삶의 신비를 모색하는 자신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블란치의 성적 관능을 혐오한 것도 그 때문이다. (3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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