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영혼의 집(이사벨 아옌대)

예인책방, 오늘 소개할 책은

by 권예인

예인책방, 오늘 소개할 책은 No.1


Ⅰ. 영혼의 집 줄거리


<영혼의 집>에서는 칠레의 한 가문 안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시대에 맞추어 잘 그려내고 있다. ‘에스테반 트루예바’를 중심으로 그의 아내, 딸, 손녀의 삶이 그려지며, 당시 일어났던 정치적 이념들과 사건들을 한 가문 안에서 엮어내고 있다. 보수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군사 쿠데타까지 정치적 시대의 흐름과 함께 여성들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에스테반 트루예바’는 몰락한 상류층이었으나 집념과 탐욕으로 다시 부와 상류층으로써의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에스테반’은 지주로써 많은 농노를 거느리며 살아간다. 클라라는 부유한 상류층 집안에서 자라난 여인으로 영적인 능력을 가진 여인으로 그려지는데, 에스테반과 클라라는 결혼 후 ‘블랑카’라는 딸과 하이메와 니콜라스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블랑카는 농노의 아들 페드로 테르세로과 어릴 때부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페드로는 ‘사회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로 그려지며 에스테반과 많은 갈등을 겪는다.

하이메는 의사로, 니콜라스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간다. 블랑카는 페드로의 아이를 갖게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알바’이며, 이 소설의 마지막을 복수와 갈등이 아닌 ‘용서와 이해’로 마무리 짓는 인물이 된다. 에스테반은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세상이 변화되어 사회주의의 물결 속에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에스테반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음모를 세워 ‘군사 세력’을 들여온다. 하지만 이 군사세력은 보수층의 지원을 받아 승승장구 했으며 결국 보수층을 배반하고 ‘군사정치’를 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속에서 군사정치의 주요 핵심인 에스테반의 사생아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복수를 꿈꾸며 자신의 어머니가 강간을 당하고 자신이 고통을 당했던 것 처럼, 에스테반의 손녀딸인 ‘알바’를 성적인 고문으로 끌고 간다.한창 고문을 당하던 ‘알바’는 외할아버지 ‘에스테반’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 돌아오게 되고 자신의 외할머니인 ‘클라라’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인 ‘블랑카’가 썼던 일기들을 살펴보며 자기 삶의 역사 또한 써 내려가기 시작하며 he story가 아니라 she story를 써나간다.



Ⅱ. 사고하기


남성은 경쟁과 정복? 여성은 사랑과 조화?


<영혼의 집>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느낀 것은 <영혼의 집>에 나오는 남성들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사상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습들이 드러나 있다.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야망 있는’이라는 형용사가 가장 알맞다. 반면 <영혼의 집>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을 보살피고, 안아주는 역할을 한다. 영적인 능력을 가진 ‘클라라’가 가장 대표적으로 그러하고 그 이후에 그려지는 ‘블랑카’나 ‘알바’의 모습 또한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것 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공감해주거나 그들을 안아주는 모습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알바’가 자신이 당했던 고문이나 수치들을 ‘용서와 이해’로 감싸 안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한 모습이 극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을 보면서 남성들은 자신의 신념으로 누군가, 혹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지만 여성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알고 조화를 이루는 따스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혹은 이전부터 이어져오는 사회 풍습 속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부장 적인 세대’를 살아온 바탕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또한 자기 스스로 부나 혹은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내재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여성들에게 여성성을 강요하는 세대를 살아온 바탕 안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능력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심적 안정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으로 안아주어야 하는 역할을 강요 받았던 것 같다.


<영혼의 집>의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질문은, ‘과연 남성들은 경쟁과 정복에 능하고, 여성들은 사랑과 조화에 능한가.’ 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로는 이전에 철학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에서 ‘산'을 ‘정복’하고자 하는 사고 자체가 남성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왔다.’라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하나의 예 일 뿐이고 많은 곳에서 ‘여성들은 온유하고, 남성들은 거칠다.’ 라는 사상이 세상에 많이 도처 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의 집>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남성과 여성을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과연 정말 그러할까? 그것은 생물학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혹은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기본적인 각 성의 성격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선천적으로 남성들이 경쟁과 정복을 찾고, 여성들이 사랑과 조화를 찾는다면 ‘과연 여성들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경쟁과 정복의 끝장 판 이라는 전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나의 결론은 여성들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도 또한 전쟁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성들끼리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잔인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들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피’를 최소화 시키면서도 ‘승리’하는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의 형태는 변화할 수 있겠지만 ‘전쟁’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나는 칸트가 말했던 ‘반사회적 사회성’이라는 말에 깊은 감회를 받은 적이 있다.

역사철학을 공부 할 때에 칸트는 인간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의 ‘반사회적 성격’ 즉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며 또한 한편으로는 ‘사회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운명해 처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흔히 우리가 사회시간에 배우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이다. 인간은 언제나 반사회적 성격과 사회적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악은 사회를 후퇴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반사회적 사회성’이라는 칸트의 이론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여성만 존재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전쟁’과 ‘악’은 반드시 존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남성들이 경쟁이나 정복으로 그려지는 것은 사회적은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여성이 사랑과 조화로 그려지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녀가 둘 다 있는 사회에서 각자가 더욱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분담’ 하였기 때문에 남성은 좀 더 경쟁적이 되고, 여성은 좀 더 온유해야 함을 강요 받아 왔으며 각자 그러한 부분들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육체는 여성들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에 ‘전쟁’이나 다른 이들을 ‘보호’하는 것에 능하며,

반면 여성들은 ‘출산’이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남성은 젖이 나오지 않지만 여성은 젖이 나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쟁’이라는 부분에서는 남성에 비해 육체적인 결점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온유’나 ‘사랑’이 여성들의 역할로 지정된 것으로 여겨진다.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은 사회적인 것이며, 만약 ‘여성’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각각 잘하는 것들에 더욱 치중하여 각 역할이 나뉘어 질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키가 170이상 되는 여성들이 부족의 ‘안전과 전쟁’을 맡게 되고, 반면 상대적으로 체격이나 힘이 작은 여자들이 육아나 요리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영혼의 집>이 페미니즘 책이라는 점에서, 무언가를 언제나 변화시키고자 하고 정복하고자 야망을 품는 남자를 파괴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작가가 그러한 목적을 ‘여성들의 사랑과 조화’를 우월성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라면 그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사랑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우월한 것이고, 남성들이 정복이나 파괴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열등한 것이 아니라. 나는 둘 모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이루어져 나간다고 생각을 한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은 혼자서는 무언가를 할 수가 없고 언제나 ‘조화’를 이루어 가며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간다.


여성의 사랑과 조화라는 점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남성들의 성격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묘사해서는 되지 않는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뀌게 되더라도, 서로의 역할은 각각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기존에 있던 사회적인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든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함께 나아가야 하며, 서로의 역할에 대해 존중해 주어야 한다.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에서 아무리 필요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예를 들면 의학이 지금까지 발달되기 이전에는 ‘맹장’이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져서 장기 왕진을 가는 의사들은 맹장을 떼어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알려지기를 ‘맹장’만이 만들어내는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가 있다고 한다. 이러하듯, 우리의 사회는 아무리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찮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Ⅲ. 내 삶에 적용하기

‘나는 과연 번화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영혼의 집>에서 에스테반은 중점이 되고 있는 인물이며, 정치의 3가지 흐름에 모두 관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나는 에스테반을 보며 ‘나는 과연 변화에 적응 할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이생겨 난다.

에스테반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마을을 건축했으며 자기 나름 농작인들의 삶을 발전시켰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것이 사실이었다. 분명 에스테반은 현실의 시점이나 사회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들의 인권을 케어 하는 부분에서는 부족했을 수 있지만, 황무지 같았던 그 곳을 개발시키고,

그들에게 교육 등 안락한 삶을 제공해졌다는 점에서 에스테반은 충분히 자신이 그들에게 많은 것을 해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만큼 사회주의니 뭐니 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에스테반이 원하는 바와는 달리 이미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의 인권까지 신경 써야 하며 사회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다다라 있었다.

나는 에스테반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돈을 더 버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게으름뱅이에게 돈을 주라는 말인가’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그의 입장이 잘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흔히 내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쌍하다고 지갑에서 몇 천원씩 꺼내서 그들에게 돈을 쥐어줄 때 내 옆에서 이야기 하던 과거 남자친구의 그 이야기와 같았다. 내 과거 남자친구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저렇게 구걸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런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고 해서 돈을 주는 것은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언제나 이야기했고, 나의 생각은 ‘젊고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의 경우 그런 경향도 있는 것 같지만, 사회적 제도가 한번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 때문일 수 있지 않을까.’ 였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농노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에스테반의 입장과 자신이 평생 가지고 살아왔던 그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는 에스테반의 모습이 훗날 나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사실상 더욱이 요즘에는 정치적인 흐름뿐만이 아니라 많은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빠른 시대’이기 때문이다. 30살인 나는 벌써부터 아이돌 이름을 외우는 것이 힘들고, 사진을 보아도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또한 쏟아지는 새로운 기계나 기술들 속에서 무엇이 새로 나온 제품인지 잘 알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 아직 30의 초입에들어간 나 또한 벌써부터 이 시대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흐름과 경향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흔히들 말하는 소시민으로써 그저 내 삶에 만 관심이 있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급변한다는 이 시대 속에서 나는 아래 세대들과 얼마나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며, 얼마나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시대의 흐름이 빠른 요즘, 그 흐름을 캐치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에너지가 소비된다.

물론 사회 행정이나 정치적인 흐름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겠지만, 에스테반이 겪었던 보수주의 – 사회주의 의 변화만큼이나 큰 것이 아니라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 흐름과 변화를 캐치하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쏟을 필요가 있을까.

또한 그 흐름속에서 뒤처지지 않고 구식이 아닌 현재를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좀 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좀 더 변화에 관심을 기울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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