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꺼리리가 없는 게 아니라 걱정이 없는 것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이 삶가운데 적당히 필요하다" 정도가 진짜 내 마음이다. 여행으로 유명한 유튜버들이 있는데 과연 그들은 얼마나 여행을 좋아할까? 어떤 이들은 정말 여행에 미쳐서 여행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이제는 여행이 업이 되어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래도 그들 중에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나는 여행을 엄청 설레하고 한편으로 두려워한다. 겁이 많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겁을 집어 먹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덤터기 써서 안 그래도 없는 돈을 잃을까 하는 염려가 첫 번째고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막연한 공포가 두 번째다. 나는 전자에서 두려움을 많이 느꼈다. 이런 또 가난 타령인가.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적어도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는 여행 경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루 10만 원. 당시의 나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의 여행경비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보름 여행이면 150만 원이지만 한 달 생활비가 30만 원도 되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그리고 여행 3일 차 나폴리를 가기 위한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카드를 도난당해서 24일 치 여행경비인 240만 원을 인출당했다. 그때의 분함과 두려움 때문일까. 지금도 어디든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소매치기를 자주 인식한다.
그런데도 하나 웃긴 점은 마음가짐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취향은 다 고급스럽고 비싼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다이소에 가지 못하는 이유다. 이케아에 잘 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케아 쇠데르함 소파도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건 까사미아 캄포 소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더 비싼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이키의 조던이나 덩크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사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딱 한 제품이 너무 예뻐서 살려고 알아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마스 야드라는 빈티지 나이키였고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비싸서 좋은 게 아니다. 맘에 들고 보니 비싸더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 내에서 한정적으로 소비한다. 철저하게 계획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써버리거나 심할 경우엔 카드론이나 소액대출을 받아서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군에 입대할 때 학자금 대출 이자를 유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입대했다. 그리고 부모님 사정으로 3개월 정도 학자금 대출을 미납했던 적이 있다. 전역하고 보니 신용 8등급이 되어 있었다. 전역하고도 7년이 지나 카페 창업을 했을 때 겨우 사업자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던 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1등급이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돈 밀려 내는 걸 태생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는 한 번도 납기일을 어겨본 적이 없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항상 어느 정도의 여유 자금이 있길 바랐다. 최근 몇 년간은 잔고가 제법 쌓였고 1년 이상의 무직 자금과 차 한 대 구매할 여유까지도 있었다. 그랬더니 사람이 바뀌더라. 최저가보다는 조금 더 질 좋은 식재료를 구매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질이 좋다면 기꺼이 구매하기도 했다. 못 사는 것과 안 사는 것은 천지 차이더라. 10년 전엔 수중에 돈 몇 백 원이 아쉬워서 1100원짜리 두부 대신에 1000원짜리 두부를 사고 소주가 50원 더 저렴한 슈퍼로 멀리 찾아가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마트 놔두고 편의점에서 소주 사는 건 용납이 안된다.
여행을 하려면 시간도 돈도 필요하다. 진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간도 돈도 그리고 자신의 미래도 뒤로하고 여행길에 오른다. 이런 사람들을 여행 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원래 여행길은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오르는 길이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엔 여행가들도 돈을 벌면서 여행한다. 디지털 노매드라고 불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좀 더 스마트한 경우로는 어느 정도 자본을 모아둔 상태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경제적 자유를 얻어 둔 상태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여행 가도 있고, 지식 창업이나 쇼핑몰을 운영하는 분들도 있다. 그들은 마치 여행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
태생이 돈이 많은 이들은 진짜 여행가로 불릴 수 있을까? 그들의 여권엔 웬만한 여행 가들 보다 더 많은 국가의 도장이 찍혀있을 것이다. 이들은 해외로 유학가 몇 년이고 돈걱정 없이 유학생활을 보내고 오기도 하고 수시로 주변국을 드나들며 쇼핑을 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고급차를 소유하고 내키는 대로 돌아다닌다. 웬만한 여행자들보다 많은 이동거리지만 나는 그들이 여행 가라기보다는 한량처럼 보인다. 돈은 많고 할 건 없으니 돌아다니면서 쓰고 다니는 걸로 보인다. 내가 이상하게 보는 건가? 그들이 부럽다거나 부럽지 않다는 것은 논점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다수의 직장인들은 노동의 보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꽃은 누가 뭐래도 해외여행이다. 연봉이 높은 직장인들에게 없는 것은 시간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비가 극도로 비싸지는 명절에도 아랑곳 않고 해외 여행길에 오른다. 황금연휴가 이어지면 월차까지 활용해서 10일 까지도 시간을 마련할 수 있으니 이때 유럽처럼 먼 곳으로도 간다. 물론 진짜 여행이 너무 좋아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자와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진짜 돈 내는 짐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함께 떠나는 아이들에겐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자랑거리가 많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 경우에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자랑이 목적이 된다. 휴식? 어림도 없다. 아무리 휴양지라고 해도 그곳에서 진짜 휴식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까 언급했던 태생이 부자인 부류들은 휴양지에서 최고의 휴식을 누리리라. 휴양지에서 최고의 휴식을 가지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데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중엔 진짜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부류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해외에 나가보겠냐는 식이다. 수중에 있는 돈을 박박 끌어 모아서 여행을 떠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어떤 분은 1년간 현장에서 일하고 나면 한 달 정도 해외에서 쉬고 온다고 했다. 나쁘게 말하면 생각 없다지만 좋게 말하면 걱정 없는 사람들이다. 걱정 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걱정이 없는 거다. 많은 동기 부여가들이 강조하지만 걱정은 정말 쓸모가 없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고, 사람 뜻대로 되는 것도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걱정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있다. 추가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지.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망설임이 많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책도 많이 읽은 덕분에 걱정에 대한 부분은 진짜 많이 고쳤다. 특히 황제의 <명상록>은 걱정이 얼마나 무익한 일인지 여실히 알려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게 있는데 바로 돈 걱정이다. 동남아 해외여행에서 공원에서 한적하게 커피 한잔 마시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돈 걱정을 거의 안 하는 때가 바로 그때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느낌으로 산에 오를 때 그리고 백패킹을 할 때, 그리고 술을 마실 때도 그렇다. 요즘엔 러닝머신을 하며 쇼핑몰 창업 영상을 계속 보기 때문에 이젠 운동 중에는 힐링이 잘 안 된다. 술은... 돈 걱정 때문에 혹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술을 마시면 어느새 그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술 마시는 것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여행 가서 술 한잔 마시면 그때는 세상 고민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된다. 늘 항상 그런 상태로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일상은 여행 같지가 않다. 그래서 여행을 못 떠나니 술이라도 마시나 보다.
2020년 2월 방콕에 다녀오고 약 3년 만인 내일 오사카로 떠난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여동생과 그의 남편 이렇게 네 명이서 떠난다. 그들이 말하길 여행은 돈 쓰는 재미로 가는 거 아니냐, 우리는 가서 쇼핑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오사카 여행의 키워드는 해외여행, 쇼핑, 맛집이다. 일반적으로 모두가 생각하는 여행의 형태다. 스지와 도리의 차이, 쵸메와 초, 도도부현 같은 지역명칭, 신사이바시가 왜 신사이바시인가. 오사카성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같은 건축, 역사,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솔직히 나도 쇼핑할 돈이 없어서 저런 쪽으로 빠진 건지 아니면 진짜 좋아서 빠진 건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도 쇼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신사이바시 스지에 파르코라는 유명한 백화점이 있는데 그곳 4층에 adam et rope이라는 일본 브랜드가 있다. 이 정도다. 나도 쇼핑엔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한 벌에 70만 원씩 하는 봄 잠바를 보면 손이 떨린다. 7만 엔이 아니라 7만 원이면 얼마나 좋아... 70만 원짜리 봄 잠바를 사려면 대충 생각해도 월 700은 벌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마음 편히 말이다. 돈 잘 버는 친구 3명이 돈 못 쓰는 내게 여행 동선을 기대했다. 내가 여행을 많이 다녀 봤다는 이유라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여행 스케줄을 짤 시간이 없다. 그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기도 한다.
깨달았다.
내가 돈이 없는 건 그들만큼 일을 하지 않아서구나. 나도 12시간씩 일해야 한다. 뚱뚱한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성공이 찾아오지 않는다. 난 성공해서 더 많은 여행을 다니고 싶다. 돈 걱정 없이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싶다. 나도 할 일이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의 일이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감을 미룰 수 있고 일을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다 미래 가치를 위한 일일뿐 지금 당장 돈이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일하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나는 한량이 아닌데.
이 글은 가난의 이유와 배경에 대한 글이 전부다. 쓰면 쓸수록 내가 왜 가난한지 알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진짜 가난한 건 아니다. 비참할 정도 찢어지게 가난한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 가난이며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이고 사고 싶은 걸 망설이는 가난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을 망설이는 정도의 가난이다. 지난 8개월간 소득이 아주 많이 줄었다. 현금 흐름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때문에 빌린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역대급으로 고정비가 상승했고 20년을 눈앞에 둔 내 중고 자동차는 언제든 도로 한가운데서 멈출 것 같다. 생활을 버텨줄 대출은 1년을 아슬하게 버틸 정도인데 적어도 6개월 안에는 뚜렷한 성과를 보여야 한다. 절대적 가난이 다가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3년 정도 느껴보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부상했다. 바로 생활고다. 아파트 하나 생겼다고 생활비를 걱정하게 되었다. 배부른 소린가 싶지만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바로 절대적 가난 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어쨌든 이번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망설이면 안 된다. 내 주위에 돈 많이 벌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채워졌다는 건 좋은 신호다. 내가 그들에게 질투하지 않고 동경하고 따라가야 할 목표처럼 느껴지는 건 성장의 싹이 자랐다는 뜻이다. 이 기회에 자리 잡으면 이제는 진짜 가난이라는 지긋지긋한 녀석과 작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래한다. 내 마지막 가난의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