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언제나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북클럽에 참여하면 뭐가 좋을까? 모든 커뮤니티, 소모임, 클럽, 동호회, 클래스가 그렇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이 각 모임의 성격에 맞게 모인다. 러닝 동호회에 나가면 러닝 하는 법이 주 관심사다. 와인 동호회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마시고 또 배울 수 있다. 독서모임은 어떨까? 독서모임은 책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데 이게 독서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다. 러닝은 코스가 매번 바뀌어도 러닝일 뿐이고, 와인이 아무리 다양해도 와인일 뿐이다. 그러나 북클럽은 책이 바뀌면 주제가 완전히 바뀌고 그날의 대화 성격도 완전히 바뀐다. 그리고 특성상 일상의 언어보다 지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언변이 조심스러워지고 경청하게 한다. 독서 모임엔 세상 모든 모임의 주제를 다룰 수 있다. 그래서 독서 모임은 모임 중에 으뜸이다.
북클럽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최근 내 관심사가 부와 가난에 관한 것이어서 그쪽 관련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는데 특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 중에 진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에는 과한 욕망을 표하지 않는다. 대부분 현상 유지를 선호하면서 이따금 물질에 욕심을 내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는 법을 배운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부자 되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힐링 북클럽 탓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진행되는 부와 사업, 재테크에 관한 북클럽에 참여해보면 돈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모든 독서와 주제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독서가도 있지만 독서도 러닝처럼 와인처럼 일부분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것과 가난해지지 않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태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워딩을 가난에서 탈출하겠다로 바꾸었다. 그러나 목표 금액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왜 워딩을 바꾸었을까? 그 이유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속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속물 근성이 보여 지는 것 같다. 돈에 미친 사람 같고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남에게 말하기 그렇고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가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난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입 밖으로 구태여 꺼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가난함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부자 되기에 대한 대화를 일상적으로 나누기가 힘든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쓴 짧은 문단에도 불쾌감을 느끼거나 왠지 기분나쁘고 책을 덮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은퇴 자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경제적으로 가난하지 않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은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능력이 돈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당금이라고 한다.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누구도 인정할 수 있게 잘 만든 워딩이다. 그리고 진정한 은퇴 자금의 규모는 바로 이 돈이 주는 배당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지금 당장 먹고살만하다고 안주해선 안되고 꾸준히 저축을 늘려 가야 한다. 저축이 멈추었거나 저축이 없다면 적신호다. 심지어 당신이 40세가 넘었다면 그것은 고장 난 신호등 상태와 같다. 제법 늦었다. 그래서 포기할 건가?
당신은 돈이 주는 이 배당금을 받고 있는가?
가난 탈출의 핵심은 시간과 선택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금전적 자유다. 물질이 차지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페라리와 에르메스 백을 가지고 있다면 그 금액만큼 자산가치가 줄어든다. 우리는 페라리를 보면서 저런 차를 끌고 다니려면 얼마나 돈이 많아야 될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부를 오해하는 것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지금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심적으로 가난할 뿐 절대적 가난과는 상관없다. 그러나 적절히 현실과 타협해가며 살아간다고 해서 그게 가난하지 않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여전히 당신은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내 친구가 10개월 할부로 샤넬백을 샀고 나는 그만큼의 돈을 저축하면 10개월 뒤에 친구에겐 할부 끝난 샤넬백이 생기고 나에겐 샤넬백을 살 수 있는 현금이 생긴다. 이자는 덤이다. 그 친구는 신주단저처럼 모신 샤넬백을 인스타 업로드용으로 주로 사용하며 모처럼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결혼식장에나 한두 번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좋아요를 조금 더 받게 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의 샤넬백 자금은 몇 십 년간 복리가 쌓여 손녀에게 샤넬백을 사주고도 남을 정도의 저축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친구가 포르셰를 월리스료 200만 원으로 사용하고 있고 당신은 50만 원 수준의 국산차를 감당할 정도는 되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떨까? 그 친구가 월 리스료 200만 원을 감당할 만큼 현금 흐름이 있어서 부러워할 텐가? 나는 당신이 매달 50만 원을 저축한다면 그것을 훨씬 부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매달 50만 원을 S&P 500 인덱스 펀드에 정액 적립식 투자를 했다면 더 부러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포르셰만 기억하지 그 친구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친구는 앞으로 “포르셰 타는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의 포르셰 색상은 알아도 그 사람의 눈동자가 무슨 색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에서 탈출해서 돈이 주는 최고의 배당금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받는 것이다. 언제까지 생존을 위해 일할 것인가?
나는 부자는 모른다. 가난은 제법 안다. 가난을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죽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당신이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절대적 가난과 상대적 가난 모두에서 벗어난 상태라면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부자라고 생각해도 되는가? 쉽게 스스로 부자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안심하지 마라. 누가 봐도 부자가 되지 않았다면 가난은 당신을 계속 끌어당길 것이다.
길게도 썼지만 하고 싶은 말은 사실 길지 않다. 생활비 때문에 일을 관둘 수 없다면 절대적으로 가난한 상태다. 당신이 차가 있던지 주택 담보 대출이 잔뜩 남아 있는 아파트 보유자던지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가진 것과 타인이 가진 것을 비교하게 되고, 한 번도 필요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물건이 가지고 싶은데 살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상태다. 1년에 몇 번 쓰지 않는 샤넬백과 출퇴근 때만 잠깐 사용하는 포르셰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에르메스 켈리백을 진짜 켈리처럼 사용한다면 사야 한다. 포르셰가 당신의 물질적 목표의 정점이고 리스료에 구애받지 않고도 은퇴가 가능하다면 사면 된다. 명품의 구매 목적이 질이 좋아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야지 명품 그 자체라는 이유로 소유하면 안 된다.
내 글이 당신의 가난을 인정하게 만들었다면 이 글은 성공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책 한 줄 읽지 않고 여전히 게임에 빠져있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건 병원에 가야 할 사안이지 싶다. 한동안 가난만 외쳤더니 가난해진 느낌이 든다. 그게 가난의 힘이다. 가난을 인정하는 것은 진심으로 딱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때부터는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서하기, 담배 끊기, 가능하면 술도 끊어라. 야식은 웬만하면 먹지 말고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씩 주 3회 이상 운동하고 정상체중을 유지해라. 만일 비만이라면 반드시 다이어트부터 해라. 만사 제쳐두고 다이어트부터 해라. 하루에 1시간 산책을 하라. 매일 경제 뉴스를 접해라. 스마트폰 앱으로 무료 뉴스레터만 받아도 충분하다. 정치 뉴스는 헤드라인만 읽어라. 절대 감정이입 하지마라. 좌우에 치우치지 말고 해당 정책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될지 냉정하게 판단해라. 저축해라. 매달 저축이 플러스가 되게 해라. 당장 주식계좌를 개설하고 청약통장에 가입해라. 한 달에 나가는 고정비용을 체크하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여라. 용돈은 쓰고 남은 돈이 아니다. 매달 정해놓고 일정 부분만 사용하는 고정비용이다. 담배 끊고 술 끊었다면 용돈이 차고 넘칠 것이다. 술 담배 안 한다고? 했던 것처럼 그 돈만큼 저축해보라. 당신이 누구라도 좋으니 비상금 통장에 최소 1천만 원은 가지고 있어라. 지금 하는 일을 분석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는지 찾아봐라. 없다면 그 직장에서 사장보다 빠삭해질 수 있도록 공부해라. 그 회사를 인수할 각오로 공부해 보라. 게임을 끊어라.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요금제도 데이터가 적은 걸로 바꿔라. 적어도 와이파이가 없는 환경에서는 스마트폰을 만질 수 없게 만들어 버려라. 데이터가 한정적인 요금제를 사용하면 된다. 집에 오면 스마트폰은 항상 책상 위에 둬라. 요리사가 될 것이 아니라면 요리하지 마라. 예술가가 되려고 하지 마라. 예술은 취미로 해라.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예술에 대해 논하고 싶다면 칸트의 <판단력 비판>부터 읽어 보라. 대충 이 정도만 실천하면 그 누구라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자가 있다면 조금 더 불리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만큼 사지 멀쩡하다는 사실조차도 “운빨” 좋게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지 멀쩡하게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당신은 지구상에서 제법 운 좋은 사람이다. 통계 자료를 줘도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어보라. 누군가는 그런 걸로도 영양보충을 못해 굶어 죽는다. 한스 고슬링의 <팩트풀니스>를 읽어 보라.
누구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고, 또 누구는 나보다 잘 난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둘 다 하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에서 상대적 우위와 현실 만족을 가지게 된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해서 그들과 같이 되려는 자극을 받을 수도 있지만 어지간한 멘탈로 가능할까? 그 멘탈을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데 쓰면 더 가성비 있지 않을까? 어느 한쪽만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안주하게 되어 자극을 받지 못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자.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나는 어제의 나보다 성장했는가에 초점을 두자. 잔고는 증가했는가? 책 한 줄 더 읽었는가? 체중은 적절 한가?
글을 쓰면서 내내 당신들 우리들 여러분이라는 말을 써서 좀 미안하다. 기분이 나빴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사실은 이 모든 이야기는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거칠게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라는 놈은 언제 그랬냐는듯 비교하고, 게으름 피우고, 술 마시고, 누워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가난이 가난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머뭇거리지 마라. 지금 당장 해라. 당장 나가서 1시간 동안 산책부터 시작해라.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