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썸머

턱 괴는 여자 21.

by 구일삼

나에겐 너무나 화려한 도시였던 서울 안에, 연애하지 않으면 모두에게서 타인이 되고 마는 시대가 펼쳐지는 외로움. 나의 20대는 그렇게 순탄치 않은 도입부로 시작됐다. 그런데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사실 따로 있다. 지하철. 나에겐 지하철이 얽힌 사연이 아주 많다.

19 동안 인생에 없던 갑자기 튀어나와서 ' 이제부터 일상에 필수다'하고 들이대는 어찌 피할 도리는 없었다. 긴장과 당황의 연속이었다.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약속 시간을 강제로 늦춘 적은 물론이고 서울로 출장 이모에게 나만 믿으라며 호기롭게 앞장섰다가 숙소로 돌아가지 못할 뻔한 적도 있고. 솔직히 아직도 구일-구로-가산 디지털 단지 구역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거길 지날 그냥 지도 어플만 믿고 걷는다. 아무튼 지하철은 나에게 아주 많이 이상한 공간인데, 어렵고 낯설다는 이유가 다는 아니다. 거기엔 끔찍한 기억과 따뜻한 기억이 같이 살기 때문이다.


1. 끔찍한 기억

여름이었고 날짜는 기억하기가 싫다. 그날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평에 펜션을 잡고 놀기로 날이었다. 전날 서울의 친구 집에서 자고 일어나 둘이 함께 가평역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어깨에 가방이 너무 무거웠는데 환승을 하고 갈아타는 열차마다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끝에서 번째 환승을 하고 나서는 자리가 곳이 있었다. 자리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앉자마자 무슨 일이 일어났게? 왼쪽에 앉은 중년 남자가 다리 사이를 보려고 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맞은편 창문에 새끼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비쳐서도 아니고, 제대로 보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도 아니다. 앞을 보던 시야에 들어찰 정도로 새끼가 대놓고 고개를 숙여서다. 나는 오른쪽에 앉았던 친구에게 빨리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어. 말을 하고 자리를 뜨기까지의 초간이 나는 지옥이었다. 동안 새끼는 번이고 치마 밑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새끼가 대놓고 그러는 동안 나는 자리를 뜨는 말고는 생각나는 없어서 죽고 싶었다.

칸의 모든 좌석은 차있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아무도 새끼가 다리 사이를 보려고 하는 몰랐던 같다. 너무 조용했거든.

나는 친구의 귀에 대고 여기서 벗어나자고 속삭이기만 했다. 새끼 귀에도 들리고 그들 귀에도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나는 목소리가 그렇게 작을 있는지 몰랐다. 다른 칸으로 가는 하나를 생각해내지 못해서 그냥 칸의 최대한 앞에 있는 동안, 어린 여자애 둘이 당황한 채로 있는 동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근데 있잖아. 그들이 귀에도 들리고 친구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으면 어떡하지. 치마 길이가 얼마나 짧은 지에 대해 속으로 이런저런 말들을 뱉고 있었으면 어떡하지. 나는 모르고 그들은 벌써 잊었는데 나는 여전히 설명하고 싶은 말들 말이야. 나는 그날 치마 밑으로 청반바지를 입었다고. 새끼가 아예 고개를 치마 안으로 들이밀었어도 나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그들이 저따위 치마를 입는다고 무어라 중얼거렸다면 나는 이제라도 치마를 들어 바지를 설명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 슬퍼진다. 내가 바지를 입지 않았어도 새끼는 고개를 숙이면 안 됐는데. 치마 아래에 바지가 없었어도 그들은 치마를 탓할 자격이 없었는데.

어느 밤마다는 그날 낮으로 돌아간다. 그때는 낮이었는데 밤이 괴로운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앉아있다가 있었는데 자려고 누웠을 때가 힘들어진 건지 너무 억울하다. 컴컴한 시간대 안에서 끈적한 검은색 덩어리가 온몸을 기어 다닌다. 머릿속을 상주하다가 덜컥 소리를 지르는 기억. 이걸 마주하는 밤마다 나는 자꾸만 다른 결말을 덧대려고 애를 쓴다.

나는 이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새끼의 고개를 잡고 돌리라고 고함을 치고, 그러면 각자인 조용하던 사람들이 치마가 아닌 새끼를 똑바로 보고 웅성거린다. 어떤 날엔 내려오는 새끼 목을 잡아 조르고 뭐하는 짓이냐 외치면, 다음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목소리가 그렇게 몰랐다고 덧붙일 만큼 목소리로 외치면, 그러면 그들이 새끼 목을 같이 조른다. 옆에선 친구가 새끼의 눈을 파내고 있다.

그런데 어떤 날엔 녹화라도 놓은 것처럼 감은 안으로 그날 시야가 뚜렷하다. 나는 절대로 일정 위로 시선을 올리거나 돌리지 않는다. 지하철 바닥과 언저리의 수많은 신발들을 쳐다보고만 있다. 그래서 나는 새끼 얼굴을 모른다.


그리고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 멀쩡한 밤들을 망쳐놓는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 . 허벅다리를 고깃덩이처럼 느끼게 만든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 바지를 입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를 하게 만드는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 어깨에 가방을 다리 위로 옮겼으면 달랐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 눈과 가증스러운 목이 모두 으깨진 채로 죽었으면 좋겠다.


2. 따뜻한 기억

같은 겨울이었다. 그날은 재수를 무사히 완주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날이었다. 학교 시험이 얼마 남았든 말든 나는 1 동안 미뤄두었던 얘기들을 생각에 신이 상태였다. 와가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는데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어떤 여자분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가 비어있었고 그렇게 사람은 내 옆으로 앉았다. 나는 휴대폰을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아이 쪽을 보려 쭈뼛댔다. 그런데 아이가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었고 아이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용감무쌍한 걸까. 어쩜 그렇게 사랑을 주는 망설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아이를 따라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여자분이 아이 쪽을 채로 말했다.

"언니한테 '안녕' 했어?"

이제는 웃음이 소리를 가진 터져 나왔다. 아이는 별다른 대답 없이 분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분과 사이에 직접 오가는 대화는 없어도 함께 있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잠시였지만, 옆자리가 맞았는데도.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빠빠이~'하며 끝인사를 하는 거다. 그분은 '언니 아직 가는데, 빠빠이야' 하면서 웃었는데, 그때 이번 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정말로 내가 내릴 역이었다.

", 이번에 진짜 내려요."

분과 내가 동시에 아이를 쳐다보며 놀라 웃던 찰나에 문이 열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손인사를 했고, 아이는 손을 끝까지 흔들어주었다. 나는 일어나면서는 드디어 그분의 얼굴을 보고도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눈이 정말 닮아있었다고, 한참 뒤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그러나 겨울의 어느 날이 여름을 지워주진 않았다. 여름이 되살아나는 밤마다, 나는 선한 눈동자들을 마주하는 날이 없어도 좋으니 이런 밤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혹시 여름 그날을 겪어놓고도 겨울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닌 내가 이상해 보일까? 새낄 죽이고 싶다는 과격한 마음이 정도의 일이 있던 공간을 피하지 않은 내가. 정도로 마음 다친 일이면 꽁꽁 숨어있어야 하는 맞는데 지하철을 탔다고 하니 상처가 혹시 거짓말 같을까.

근데 내가 피하면, 그게 억울한 일인 거잖아. 잘못한 새낀데 내가 생활 반경을 좁히는 불편을 감수해야 해? 새끼가 죽었음 싶은 거지 내가 죽고 싶은 아니다. 순간 잠깐을 죽고 싶었던 거지, 나는 거다. 잠깐이라도 죽고 싶게 만든 새끼가 제발 죽었으면 좋겠고, 나는 반드시 거다. 나는 영원히 거다. 활자로, 구름으로, 땅으로, 불꽃으로. 영원히 거다.


하지만 내가 영원히 살아도 내게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지워지지 않는 어느 여름을 나는 내내 기억할 수밖에 없겠지. 안으로 발을 들일 때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어떤 기억을 심어놓고 갈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어버리고 말겠지. 가끔은 숨을 참고 심장을 조여 단단히 결심한 채로 들어서야 하겠지. 그러다 밖으로 나오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삭막함이 외려 감사해지는 현실이 무척 미워지겠지.

나는 앞으로 지하세계에 번이나 발을 들이며 살게 될까. 그중 번을 ,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안녕을 바라게 되는 마음일 있을지. 그건 정말 모르겠다.


위에

괴로움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두었다. 괴로움의 이유가 바뀐 아니고.

이래서다. 내가 '여자라서' 겪는 쓰레기 같은 일들은 내가 스무 살이 됐다고, 서울에 왔다고 사라진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다채로워졌지. 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