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1편 : 1부, 2부
끝난 지 10년도 넘은 드라마를 붙잡고 그것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구구절절 긴 글을 쓰는 것은 구차한 일일까? 그래도 우선 쓴다.
2009년에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내가 인생 처음으로 보게 된 드라마였다. 나는 열 살이었고, 그때만 해도 밤 10시에 잠드는 수면 패턴을 가지고 있는 어린애였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10시가 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밖에서 엄마와 아빠가 보는 티브이의 소리가 너무 잘 들렸던 것이다.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침대를 구르고 난리가 났는데 엄마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냥 나오라며 나를 불렀다. 내가 뒤척이던 소리가 밖에서도 다 들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가자마자 목격한 것이 폭포가 떨어지는 커다란 동굴 앞에서 어떤 사람이 악을 쓰다가 우는 장면이었다. 나중에야 이것이 주인공 ‘덕만’이 왕이 되길 선택하는 결정적인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이 드라마를 다시 봤다. 그저 어렸을 적의 추억 놀음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후로 누군가 나에게 ‘인생 드라마’를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꼭 웃는다. 열 살 때 방영한 드라마를 인생작이라 얘기하는 엉성한 어른이 되어 있다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 웃긴 일이 되는 게 슬프다. 이 드라마가, 기어코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캐릭터, ‘미실’의 테마곡 ‘아아아아~’로만 기억되는 것도 슬프다. 이 드라마는 영웅으로 태어난 여자와 영웅이 되기로 선택하는 여자, 그리고 끝끝내 영웅일 수 없었던 여자, 셋의 이야기다. 나는 덕만, 천명, 미실, 이 세 주인공들을 내가 본 모든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사랑한다.
이야기는 ‘미실'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한강을 포함해 영토를 비약적으로 넓혀 삼국통일의 길목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신라 최고의 정복 군주 ‘진흥왕’의 총애 아래 성장해 온 인물로 등장한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백제군에 둘러싸인 진흥을 구해내며 등장한 미실은 ‘너는 원화로서 화랑을 통솔하고 인재를 키워냈느니라’라며 진흥으로부터 직접 그의 공을 치하받는다. 특히 이 드라마의 포스터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대사,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라는 대사는 진흥이 미실에게만 주었던 가르침이기도 하다.
진흥은 호랑이와 싸워 이긴 자신의 어린 시절 무용담을 두고 이 가르침을 전한다. 호랑이가 자신의 팔을 물었는데, 자신은 오히려 팔을 더 깊숙이 넣어 ‘소엽도’라는 작은 칼로 호랑이의 숨통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왕이란 항상 호랑이에게 물린 팔과 같더라는” 회상을 남긴다. 어떨 땐 백제이기도, 어떨 땐 고구려이기도, 어떨 땐 신라의 귀족들이기도 한 그 호랑이들을 물리친 것은 용기와 담력, 명민한 판단력, 혹은 천운도 아닌 ‘사람’이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다. 내가 처음 호랑이와 맞설 땐 분명 혼자였다. 허나 그 일 후에는 나보다 더 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생겼어. 그다음에 그런 일이 생길 땐 백 명이 나와 함께 호랑이와 맞서주었다. 그다음 호랑이 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결국엔 용기 있는 자, 운이 따르는 자, 영민한 판단을 하는 자. 그 모두가 나와 함께 호랑이와 싸워주었다. 천하의 주인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군왕의 조건으로 곁에 둘 ‘사람’을 이야기한 진흥과 그것을 반짝이는 눈으로 듣고 있는 미실은 분명 진흥의 ‘사람’ 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몇 분 후, 드라마는 죽음을 앞둔 진흥의 유훈(유언)이 “새주 미실은 모든 정무에서 손을 떼고 나를 따라 불가에 귀의하도록 한다.”임을 확인시킨다. 미실이 진흥에게 자신을 ‘소첩’으로 호칭하는 대사로 미루어보아 그가 진흥에게 색공한 후궁임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미실은 신라의 발전에 원화로서의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후궁이기 때문에 진흥의 죽음에 따라 궁에서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또다시 몇 분 후, 진흥은 화랑 ‘설원’을 따로 불러 “짐이 살아있는 동안 미실은 신라의 소중한 보물이지만 짐이 없다면 미실은 신라에 간악한 독이 될 것”이라며 그를 죽이라는 밀지를 내린다. 왜일까? 왜 미실은 진흥의 사람일 때는 ‘신라의 소중한 보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간악한 독’이 되고 마는 것일까?
미실은 오랜 세월 황후의 자리를 노리며 권력을 취해온 인물이다. 진흥의 그릇 안에 들어 있는 지금의 미실은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 ‘아직’ 황후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황후가 되기 위해 앞으로 많은 회차를 할애해 그 집착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흥이 미실의 ‘탐욕’을 꿰뚫어 본 그대로 미실은 진흥의 유훈을 조작하며 태손 ‘백정(훗날 진평왕)’이 아닌 진흥의 둘째 아들인 동륜태자를 황위에 앉힌다. 그 대가로 황후의 자리를 요구할 생각이다.
재밌는 것은 진흥이 미실의 암살을 부탁했던 ‘설원’이라는 인물이 이미 미실의 ‘사람’이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미실은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진흥이 가르치기 전부터 ‘사람’을 먹어치워 온 것이다. 숨을 거둔 진흥을 앞에 두고 “이제 미실의 시대이옵니다”라는 말을 뱉는 미실은 과연 진흥의 말대로 악독해 보인다. 그렇게 황후가 되기 위한 세월을 보내온 미실 앞에, 이제 단 한 단계만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진지왕이 미실과 미실과의 자식을 외면하며 약속한 ‘황후’의 자리를 줄 수 없다고 하기까지 말이다.
황후에 대한 미실의 집착은 이렇게 시작된다. 더 이상은 필요가 없는 진지왕(동륜태자)과의 아기를 가차 없이 버리며, 미실은 ‘원화’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화랑들을 ‘낭장결의(화랑들이 죽기 전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남기기 위해 화장한 채의 모습으로, 대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것을 말한다)’로 이끌기까지 한다. 자신에게 더 이상은 필요가 없는 왕을 폐위시키기 위해서.
아이를 버리고, 왕을 갈아치우고, 백정 왕자(진평)를 왕위에 앉혀 이번엔 그 옆의 황후가 되기 위해, 미실은 다시 한번 신라를 뒤흔든다. 심지어 백정 왕자의 아이를 임신한 ‘마야 부인’을 사람을 보내 죽이기까지 시도한다. 물론 ‘마야 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들이 ‘덕만’과 ‘천명’, 두 쌍둥이 주인공들이므로, 드라마는 진흥의 사람이자 ‘(호)국선’이라는 칭호를 얻은 무술의 대가 ‘문노’가 마야를 돕게 하고, 나아가 진흥의 유품인 ‘소엽도’를 이용해 밧줄을 끊은 마야가 서라벌로 살아 돌아오게 하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미실에게 좌절을 준다.
그런데 곧 상황이 반전된다. 이 쌍둥이들이 미실에게 ‘명분’이 될지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황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예언 ‘어출쌍생 성골남진(왕이 쌍둥이를 낳으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이 그 명분이 되고 만다. 이에 미실은 쌍둥이를 탄생시킨 황실을 징벌하고 그 자리에 본인이 서겠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쌍생을 들키는 순간, 황실은 미실의 손에 끝장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서사를 통해 미실은 황후가 되겠다고 황실을 끝없이 괴롭히는 ‘악녀’로 의미화된다. 그래서 우리는 진흥이 죽으며 ‘문노’에게 남긴 예언-미실과 대적할 자가 있다면 북두의 일곱 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오리라-과 그 예언의 주인을 기다리며, ‘영웅’의 등장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2부의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 드라마는 쪼개지는 별과 우렁찬 울음소리를 통해 악녀에 대적할 ‘덕만’의 탄생을 암시한다. 미실이 황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쓸 최적(最適)의 카드,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과 함께 탄생하는 이가 되려 미실의 최대 적수(最敵)가 된다는 고리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하지만 미실을 다시 보자.
황좌를 갈아치울 정도로 위협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가 왜 쉽게 황후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사실 답은 잔인하리만치 간단하다. 진골 여성인 그에게, 신라는 애초에 허락된 무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실에게는 ‘여성’이라는 억압 구조와 ‘진골’이라는 억압 구조가 동시에 작동한다.
진흥이 직접 화랑으로 발탁해 인재로 키웠다는 3인방, 미실, 설원, 문노 중 지금 화랑이 아닌 인물은 하나다. 미실은 여성의 자리를 남겨두지 않은 화랑도를 타의로 떠나야 했고, 그가 궁에 남기 위해 그나마 찾을 수 있었던 자리는 왕에게 색공하는 후궁의 자리였다. 본인 자체가 뛰어난 화랑이었으며, 뛰어난 인재들을 길러낸 분명한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실은 신라의 절반도 가질 수가 없다.
진흥이 이 나라를 넘기려 한 이는 백정(진평)이었다. 미실을 암살하라는 밀지를 내리는 한편으로 작성된 유언은 백정(진평)을 후계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진흥이 백정을 후계로, 작고 약한 나라 신라를 구할 이로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죽음 직전의 할아버지를 보고 울기만 할 뿐인 어린애를 왜 다음을 이끌 자로 선택했나? 그가 ‘적통’이기 때문이다. 성골, 적통, 골품. 이 벽은 미실이 끝내 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단 한순간도 자기 것일 수 없는 자리를 끝없이 ‘탐’ 내온 것이 미실의 세월이다. 신라를 가지려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탐욕’이라 이름 지어지는 무력한 시대 앞에, 미실은 포기가 안 되는 마음으로 기꺼이 악을 자처한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가장 잘 나타낸, 가장 압권인 장면이 2부에 있다.
미실이 권력을 쥐는데 일조한 ‘사람’ 중 하나인 상천관 ‘서리’가 미실에게 묻는다.
“왜 그리 황후에 집착을 하십니까? 황후가 아니어도 모든 것을 다 가지신다는 데도요.”
미실이 서리에게 답한다.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황후가 아닌 것이 싫어서요.”
서리는 곧장 그의 답을 해석하는데,
“여인이십니다.”
라고 말한다.
황후가 되고 싶다는 꿈은 한 인간의 야망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왕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소망으로 읽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난 미실은 공허한 눈빛으로 픽 웃고 마는데, 왜냐하면 그는 신라 최고 권력자의 여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진골 여자에게 허락된 신라 최고의 권력이다.
그러니까 미실은 단지 황후가 되기 위해 오랜 세월을 싸워 온 것이 아니라 신라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미실은 가장 높은 자리를 원했다. 하지만 진골 여자로 태어난 그에게 주어진 무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의 야망이 황후뿐이었던 것이다. 아마 미실은 황후가 됐더라도 계속 답을 찾으려 애썼을지도 모른다. 뭘까. 왜 황후가 됐는데도 답답할까. 그런 생각들로 허무한 하루들을 보냈을 것이다. 미실이 애초에 갖고 싶었던 건 황후의 자리가 아니고,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그의 꿈이 정의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실은 썩어가는 외로움을 견딘 채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되며, 그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직접 대신국(신라)의 군주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덕만을 보고서야 알아차린다. 아, 내가 평생을 원했던 꿈이 이것이구나.
그러니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이 다가오고 있는 2부 끝자락에서, 단순히 영웅과 악녀의 대결 구도를 기대하는 것은 이 극의 재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이제, 악을 자처해야만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어떤 여자와 그의 지독한 방황을 끝내줄 어떤 쌍둥이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