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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귤 Apr 05. 2021

이제는 항균 필름이 반갑지 않다

의심하는 기획자


평일 점심시간에 식사를 일찍 끝내면, 욕심내서 대형 서점에 갈 수 있다.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타고 B1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느낌이 스쳤다. 작동을 멈춘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을 때의 그 이상하고 미묘하고 생소한 느낌. 두껍고 큰 항균 필름이 버튼 판을 전체적으로 덮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손가락이 닿는 엘리베이터 버튼. 그 위에 필름 한 장만 붙이면 항균력이 99%라니? 기특한 상품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자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도 항균 필름이 붙었는데, 버튼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붙은 데다 두께가 얇아 내가 느끼기엔 기존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의 촉감이 특히 이질적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 전체를 감싼 항균필름


두꺼운 필름을 사이에 두고 누르니까 영 시원찮네, 두께와 성능의 상관관계라도 있는 건가? 버튼에만 오려 붙이면 될 거 같은데. 단가 얼마일까. 국내 에세이 코너 앞에 설 때까지 항균 필름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항균 필름에 대처하고 있을까'에 다다라서야 끝이 났다.






변화라는 건 이럴 때 무섭다. 소외되는 사람은 어떻게든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버스 정류장에 붙은 <버스시간표 변경 안내문>의 필요성을 진짜 모를 때가 있었다. 카카오버스 어플을 보면 되는데 말이야.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리석은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인지 그 어플은 출근시간에 실시간 정보가 뜨지 않는 오류를 일으키며 바로 그 안내문을 읽게 했다.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붙인 거였다. 무언가를 기획하려면 내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구나.


뇌리에 박혔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을 정도로 자극을 준 경험은 따로 있다. 내 마지막 아르바이트 장소였던(지금까지는 말이다) 매장은 매주 목요일마다 물류를 받았다. 물류기사님들은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방문하셨는데, 그중 꽤 젊은 편에 속하는 한 기사님이 뉴페이스로 등장했다. 기사님은 내가 활짝 열어둔 문으로 들어와 재료 박스를 턱턱 내려놓곤 박스들과 물류 리스트 종이를 번갈아 봤다. 뭔가 맞지 않았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트럭에 있는 재료들을 뒤적뒤적하면서 뭘 찾는 눈치였다. 전화를 하는데 말하기를 주저하는 목소리에 귀가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기사님은 칠판 앞에 세워진 학생처럼 계속 우물쭈물하다가 확신 없는 말투로 난생처음 들어보는 영어단어를 핸드폰에 대고 두세 번 말하더니 옆에 있던 나에게 머쓱한 표정으로 이게 뭐냐고 물었다. 내 대답으로 해결이 됐는지 전화를 끊은 기사님은 재료 몇 개를 더 전해주고 떠났다. 냉장고 정리를 하면서 보니 붙어있는 스티커에는 이름이 영어로만 적혀있었다. 전성분 표시는 한글로 쓰여 있었지만 당황한 사람 눈에는 보일 리가 없는 야속한 크기였다.



새로 생긴 쇼핑몰에 첫 방문한 날에는 온 가족이 당했다. 직관성과 거리가 먼 꼬불꼬불 영문 폰트의 쇼핑몰 로고와 눈에 띄지 않는 현대적인 느낌의 주차장 안내판의 콜라보로 다 같이 주차장 입구를 못 찾고 뜻밖의 드라이브를 했었다. 모든 사용자를 고려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에피소드에 등장한 기획자들을 탓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결코 누군가를 꼬집을 만한 완벽한 통찰력을 가진 입장도 아니다. 남이 기획한 걸 잘만 쓰다가 우연하게 ‘아차’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내가 기획하고 돌아오는 피드백에 냉수를 끼얹힌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 있으니. 난 내 결과물이 누군가를 난처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지 않길 바란다. 열심히 키운 자식이 어디 가서 욕먹어도 괜찮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오늘도 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의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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