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걍귤 Nov 12. 2020

엄마도 독립이 하고 싶다

더럽게 운 없던 엄마와의 여행기


나 집 나갈 거야.


퇴근해서 집에 막 들어와 엄마에게 말을 걸었는데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예-전부터 자급자족 농촌 라이프를 제2의 인생으로 꿈꾸고 있다. 그래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닥쳐봐야 아는 법. 한 대 꽝하고 얻어맞은 기분으로 일단은 저녁을 먹었다. 엄만 내 앞에 앉아 여유자금 마련을 위한 재취업 등에 대해 종알종알 얘기했다.


설거지-양치-세수를 하고 나면 엄마는 항상 거실에 있다. 엄마 옆에 따라 누워 매일 하던 대로 장난을 치려고 곁눈질로 훔쳐봤는데, 곧 엄마가 울 거라는 걸 눈치챘다. 난 엄마가 울 땐 안 운다. 엄마, 울어? 하니까 엄마는 엉엉 울었다.


야심차게 독립을 마음먹었으면서 엄마는 물렁하게도 앞날 대신 사람들을 걱정했다. 끼니를 잘 안 챙기는 내 동생을, 전화 상대로 둘째 며느리가 제일이라는 우리 할머니를, 엄마를 걱정할 이모와 외삼촌들을 걱정했다. (어딜 가나 밥 잘 먹는 나와 아빠는 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달래는 건 자신 없는 난 뻣뻣하게 오른팔을 뻗어 나름의 위로를 했다.


엄마. 다 큰 성인들이 엄마 없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도대체 시엄마는 왜 걱정해? 그렇게 하나하나 걱정하면 언제 독립을 해. 내가 행복하려면 나를 먼저 생각해야지.


내 말을 들으며 훌찌럭 우는 엄마를 보자니 뭔가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들 알아서 살게 되어있어, 안 볼 것도 아닌데 왜 우는 거야. 위로는 개뿔 안 될 말이 이어졌지만 엄마는 곧 침착해졌다. 그렇게 독립선언의 날은 서툴게 끝이 났다.


엄마는 지금까지 엄마 역할을 하느라 하고싶은 것들을 계속 미뤄두기만 했다. 이젠 그러지 않길 바라는 나는 계속해서 엄마 옆구리를 찔러왔다. 꽉 끼어있던 엄마는 내가 불어댄 바람을 타고 드디어 퐁 빠져나간 풍선처럼 이리저리 힘들어했다. 독립 프로젝트 첫 단계로 집 정리를 시작한 엄마는 이틀간 심하게 앓아누웠다가 회복했다. 그리고 잠시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난 여름이 다 지나도록 아껴뒀던 휴가를 냈다. 그렇게 우리의 휴가 아닌 휴가가 시작되었다.






운 좋게 갑작스런 휴무를 받은 아빠 차를 타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눈만 감으면 잠드는 나는 뒷좌석에 구겨져 엄마 아빠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잘도 잤다. 일어나 보니 도착이었다. 부스스한 상태로 트렁크를 열었는데, 내가 아무리 눈이 나빠도 그렇지 내 캐리어가 안 보였다. 전날 캐리어 2개에 짐을 쌌는데 트렁크 속 캐리어는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하필 작은 캐리어. 그땐 몰랐다. 그건 드럽게도 운 없는 휴가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벙찐 채로 친척 집에 들어갔는데 집 자체는 멀쩡했으나 가구며 물건들이 곰팡이로 엉망이었다. 몇 년간 비어있던 집이라 대대대청소를 해야 했다. 난 우리의 손이 닿을 곳만 설렁설렁 쓸고 닦았다. 하지만 역시나 엄마는 우렁각시마냥 집안 곳곳을 손봤고 그걸 옆에서 보고 있기가 썩 좋지 않았다. 쉬러 온 건데 왜 일을 사서 하는 거야? 엄마는 이런 거 속 시원하게 치우면 스트레스 풀리고 좋아, 나 정리수납 일 하면 진짜 잘할 거 같애. 내 속도 모르고 룰루랄라인 엄마를 뒤로하고 거실에 대자로 뻗어있다가 결국 다시 밀대를 들었다. 아빠는 집에 덩그러니 서있을 캐리어 속 짐을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다.


다다음날엔 반가운 손님이 왔다. 엄마를 보기 위해 5시간 거리를 날아온 이모. 근데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무렵 시댁에 일이 터졌다. 이모부는 핸드폰 너머로 빨리 오라고 이모를 쪼았다. 엄마는 미안해했고, 이모와 나는 화딱지가 났다.


설상가상. 그래도 하하호호 저녁을 먹는데 등이 팍 나갔다. 이쯤 되니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차단기를 열어 전등 스위치를 다시 올리니 전기 스위치가 대신 내려갔다. 몇 번을 띡똑거리다 하룻밤에 고칠 문제가 아닌 걸로 판정. 하필 금요일이라 당장 셋이 갈만한 숙소가 없었다. 급하게 동네 민박집을 찾았다. 나는 청결에는 무던한 편이 못 돼서 집에서 챙겨간 캥거루 쿠션과 담요를 사용해 잠을 잤다.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다음 날까지. 아빠가 보내준 택배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내가 해본 것 중 최악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선언 직후인 만큼 엄마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더 그랬다. 여행은 해야겠고 집에는 가고 싶어 삐걱거리는 나와는 달리, 정작 엄마는 '난 그냥 집에만 있으라는 건가 봐~' 하면서도 험난한 여행을 씩씩하게 즐겼다. 엄만 물렁한 과육 안에 세상 딱딱한 씨가 든 복숭아를 닮았다. (라고 메모장에 써두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엄마와의 하루 끝엔 꺼끌거리는 후회가 남는다. 서로 엄마 경력, 딸 경력은 똑같은데, 나만 아직 미숙하다. 카메라가 말썽일 땐 마음이 속상한 만큼 겉으로도 똑같이 속상해했고, 다급한 순간에는 급한 만큼 보챘고, 답답할 때는 사춘기 때처럼 짜증도 내버렸다. 그런데도 엄마는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내 왼손을 가져다가 토닥토닥했다.


엄마랑 다니느라 고생했어.


나도 며칠간의 여행을 되감아봤다. 대게 다리 해체에 초집중한 엄마 표정. 시장 간식 하나 사줄 때마다 딸이 돈 벌어서 좋다는 말. (퇴사 못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겠지) 재미없게 앉아만 있지 말라는 내 꼬임에 넘어와서 파도를 맞는 엄마의 맨발. 그리고 마지막 날은 여유로워서 다행이라고 둘이 헤헤거린 게 생각났다. 운은 드럽게 없었어도 행복은 사소했다.


집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엄마가 왼발을 내밀었다. 어쨌든 여행을 무사히 끝마쳤음을 자축하며 발로 파이팅을 했다. 살면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순간은 수도 없겠지만 그만큼의 행복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물렁해도 씩씩하게 나아갈 엄마의 앞날을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저는 미련한 게 아니라 멋진 건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