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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May 17. 2018

죽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죽을 의욕이 가득가득

     


이 책의 원제는 死ぬ気まんまん(시누 키 만만)이다. 뭔 뜻이냐 하면, '죽을 의욕이 가득가득'하다는 정도가 되겠다. 한국어 제목인 '죽는 게 뭐라고'보다는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일본어 원제의 풀이가 더 이 할머니의 성격과 작가 사노 요코의 됨됨이와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마디로 죽음 앞에서 당찬 할머니라는 인상.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멘틀이 붕괴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에서 죽음을 선고받아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나타나는 다섯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그런데 이런 단계가 이 할머니에게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되레 힘차고 씩씩하게 겁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듯 너스레를 떤다.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모두가 사이좋게 기운차게 죽읍시다."라고.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마치 종교적 신념이 아주 강한 종교계 지도자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하물며 그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보통은 이렇다. 어느 날 의사가 앞으로 살 날이 6개월 정도라고 말한다면, 처음엔 '거짓말이야! 거짓말일 거야.' 부정한다. 그다음엔 '왜! 왜! 나한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한테 이러냐고' 분노가 치밀고 화를 참을 수 없겠지. 이 단계가 지나면 '충분히 나을 수 있어, 치료받으면 살 수 있어.' 일말의 희망을 품을지도. 그러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은 이어지고 '살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하루하루가 슬프고 우울해진다.' 마지막엔 이 땅에서 자신의 썩은 몸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죽음을 인정하며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더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고'. 이런 단계를 밟아나가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라면 이런 과정은 거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사노 요코가 죽음에 대하는 자세는 조금은 다르다. 의사 히라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그녀가 왜 그럴 수 있는지 약간은 들여다볼 수 있다.


히라이 : 사노 씨의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 아닐까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시니까요. 결국 인간학이죠. 여러 가지를 제대로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은 확실한 사생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멘털 케어가 힘들죠.   


그녀가 쓴 책 [문제가 있습니다]에서도 자신은 "나는 일생의 대부분을 활자를 읽으며 지냈다. 일한 시간보다 가사노동을 한 시간보다 글자를 보고 있었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라고 말한다. 70 평생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사람이다. 스님이 열심히 도를 닦으면 열반의 경지에 오른다고 그녀는 책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작가라는 직업이 그녀에게 많은 것을 상상하고 사색하는 힘을 주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의사 히라이 씨가 일본인은 죽음에 대한 문화가 없다고 말한 부분이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노 요코는 죽기 전까지 인간은 살아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글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을 앞두거나 그렇지 않거나 죽음에 준비하는 자세를 조금은 더 즐겁게 생각하자고. 


끝으로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이 책 한 권에 인간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녀의 언어가 말해준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먼 훗날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죽지 않는 인간이 나온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삶을 사는 인간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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