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프롤로그

by 갸리

누구도 저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시인의 울부짖음을 알기 전엔.

제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싶었던,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감춰두었던 진짜 속내.

시인은 마치 저의 대변인 같았습니다.

제가 하지 못하던 말.

창피해서 내뱉을 수 없었던 말.

그 한 구절에 가라앉기만 했던 속이 뻥 뚫립니다.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자꾸만 떠오르는, 누군가의 마음에 쌓인 울분을 씻어주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
들려다오 세계가 끝날 때까지....
나는 결혼식을 몇 주 전에 마쳤으니 어찌 이렇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천상의 하나님은 미소로 들을게다.
불란서의 아르튀르 랭보 시인은 영국의 런던에서 짤막한 신문광고를 냈다.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가지 않겠는가.
어떤 선장이 이것을 보고, 쾌히 상선에 실어 남쪽 나라로 실어주었다.
그러니 거인처럼 부르짖는다.
집은 보물이다.
전 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

- 천 상 병 -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살아온 지도 벌써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저와 아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 우리 가족이 들어왔습니다. 과거에는 그 안에서 살던 세입자였다면 지금은 주인장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직접 고쳐야 하고 무너지지 않게 항상 각별히 신경을 써야만 하죠. 보호만 받다가 처지가 바뀌니 더 많은 부담과 노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런 것이 부모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세상의 어느 부모나 똑같지 않을까요? 자신이 보호받아야 할 아들이나 딸의 신분이었을 때는 양손에 아무런 도구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제 부모가 되니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한 손에는 연장통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한 손에는 목장갑을 끼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조금 더 튼튼한 울타리를 짓기 위해서. 그리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특별한 기억이라곤 없습니다. 물론 집이 부자도 아니었고요.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야구나 축구를 잘하거나 못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중심에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겉돌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은 삶. 결혼하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가 인생의 전부 인양. ('내 집 마련'). 그러나 그 길의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 16년 동안 일곱 번의 이사를 하며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세월이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직장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평균 이하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뉴스에서 발표하는 통계 조사를 보더라도 결코 평균 이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런 처지에 있다고 남 탓을 하는 지질함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삶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그런데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내 집 마련'의 막연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집 없는 서러움을 알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사람들이 집을 샀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초조함은 밀려들고 허망함은 커져만 갑니다. 늘어나는 새치와 더불어서.


'과연 내 집을 가져야만 행복의 여정은 끝나는 것인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차례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 물음에 정확한 결론을 내릴 날은 언제가 될지.


이 글에는 어리석고 겁 많은 중년 남자가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친구가 많지 않습니다. 그 적은 친구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게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지금은 허울 좋은 아파트에 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어떤 곳에서 살게 될지 모릅니다. 특별한 능력도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 현재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서점에서 성공담이 담긴 책장을 펼치곤 합니다. 그 속에서 답답한 속을 풀어줄 어떤 해답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갑갑한 마음과 초조한 마음만 얻어서 서점을 나서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쫓아다닌 건 아닌지. 자신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길가 부동산에 붙어 있는 투룸 전세가 얼마인지, 지나가다 로또 판매점이 보이면 발길을 뗄 수 없어 갈등하는 마음, 매일 아침 담배 냄새 풀풀 풍기는 아저씨의 찌든 냄새를 맡아야 하는 버스 안, 2년 주기로 돌아오는 집주인과의 대면. 세상엔 아마도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성공담을 쫓아가기 버거운 사람들에게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남보다 많이 잘살거나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행복이 존재한다고. 궁색한 삶이라도 소소한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다면...


끝으로,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바로 행복의 길이 아닐까요. 희미한 그림자조차 보이지도 않는 내 집 마련을 위해서 마음 졸이지 말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시한 즐거움을 찾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봅니다. 겁쟁이 아빠라는 꼬리표가 붙을지언정.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