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갸리 Oct 22. 2018

잠수종과 나비 [ 장 도미니크 보비]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주인공이 가장 바라고 원했던 말이 바로 저 문장에 드러나 있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에센스이다. 한 평도 안 되는 독방 감옥에 갇힌 죄수가 죽어야만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육체에 갇힌 의식. 주인공은 롹트인신드롬( Locked-in syndrome)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40대 중반의 남자다. 장 도미니크 보비. 이 병은 주변에 대해 정상적으로 인식하지만, 전신 마비로 인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주인공은 20만 번이나 눈을 깜빡거리며 한 자 한 자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갔다. 한 번 상상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건강하던 사람이 쓰러져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며 입으로 음식물을 삼킬 수도 없게 됐다. 그런데 뇌는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어 주변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자기 뜻을 타인에게 알릴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파리가 콧등에 앉아 간지러움을 느껴도 쫓아낼 수 없다. 모기에게 얼굴이 뜯겨도 어쩔 도리가 없다. 도와달라고 누구를 부를 수도 없다. 이 사소한 괴롭힘조차도 물리칠 수 없는 깨어 있는 의식은 패배감으로 가득 찰 것 같다. 차라리 인지기능이 없는 식물인간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는 모든 주변 상황을 인지한다. 하물며 그런 상황에서 이런 책까지 써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지가 살아 있는 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악인들이 산에서 조난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체념'이라고 했다. 체념하는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신이 살아 있는 인간이며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의식은 몸에 갇혀 있지만 엄현히 살아 있는 존재라고. 누군가 바닷속 깊숙이 잠긴 잠수종의 자물쇠를 열어주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은 도미니크. 


내가 주인공의 처지라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죽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 찰 것 같다. 나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눈 깜빡임 뿐이라면, 괴롭고 괴로워 죽여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를 일. 그러나 주인공은 그 하나의 수단으로 책을 쓴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그런 주인공의 자세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장 루이 마르탱이 바로 장 도미니크 보비가 모델이지 않았을까. 교통사고로 롹트인신드롬에 걸리는 설정만 다를 뿐 이 책의 주인공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의사소통 수단이 눈 깜빢임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식물인간 취급하며 환자를 함부로 대하는 소설 속 설정은 조금은 과장됐지만 실제로 도미니크가 병원에서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길에 나선다.


잠수종(潜水鐘, 영어: diving bell 다이빙벨[*])은 바다 깊이 잠수하는 데 사용하는 단단한 챔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