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 호수 걷다가 만난 달팽이 한 마리
뚱뚱한 사람이든 홀쭉한 사람이든
살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석촌 호수 둘레길.
구슬땀 흩날리며 아랫배 출렁이는 둔탁한 걸음의 아저씨.
곡선미 뽐내는, 착 달라붙는 레깅스 입은 늘씬한 아가씨의 상쾌한 걸음.
니은 자 모양으로 팔을 고정한 체 흔들며 파워 워킹하는 아줌마.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머리에 헤어밴드를 매고 뛰는 젊은 청년.
멋들어진 선글라스 뽐내며 걷는 아줌마 부대.
나뭇잎 비비는 산들바람 소리 상쾌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유모차 끄는 엄마.
부른 배 부여잡고 힘겹게 걷는 임산부의 조심조심하는 걸음.
한쪽 다리 불편한 아저씨의 지팡이 걸음.
수천 개의 신발은 석촌 호수 둘레길 바닥에 많은 발자국을 남긴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내 발밑의 달팽이 한 마리.
땅바닥에 붙은 배 밑 흡착판의 미묘한 떨림은 달팽이의 걸음.
오른발을 들어 땅바닥에 밟으려던 찰나.
땅바닥의 작고 동그란 껍질에 순간 놀라 스텝이 꼬이고
간신히 달팽이를 피해 엉거주춤 자세가 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길바닥을 가로지르는 달팽이에겐 살상 무기로 변한다.
자신이 걷는 곳이 생사가 달린 위험한 곳인 줄 모른 채.
땅바닥에 달라붙은 흡착판은 파도치듯 구불구불 움직인다.
이렇게 걷는 달팽이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발걸음에 납작 콩이 될 수도.
나의 무의식적인 발걸음은 달팽이의 생사가 달린 일.
무수한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살이.
나에겐 무의미한 행동 하나하나가 타인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오늘 만난 길바닥 달팽이는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