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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Jun 22. 2017

정원의 탈을 쓴 원전

스물둘에 처음 본 원자력 발전소

해외 유학의 첫걸음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랭귀지 스쿨에 들어가야 한다. 내가 다니던 일본어 랭귀지 스쿨의 커리큘럼은 일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관련된 문화 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 문화를 알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교실을 벗어나 가끔씩 일본의 문화를 직접 보고 배우는 수업이 있었다. 소방, 지진 체험도 있었고, 일본의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를 꼽자면 원자력 발전소가 기억에 남는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에 없지만 아마도 뜨거운 햇살에 반소매를 입어 1993년 여름쯤이라 기억한다. 일본어 선생님이 원자력 발전소에 방문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내 나이 22살. 원자력에 관심이 있을 만한 세대는 아니었다. 그냥 뉴스에서나 들어본 단어일 뿐. 원자력 발전소에 간다고 하니 일본의 선진 기술을 뽐내려고 일부러 외국인을 데리고 가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우리 클래스 모든 사람의 반응도 별반 차이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주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었던 때였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원전 기술력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이니 국가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다른 일본어 랭귀지 스쿨에서도 고정 코스로 잡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하여튼 전세 버스로 몇 시간을 이동해 원자력 발전소로 갔던 것 같다. 꽤나 먼 거리였음은 틀림없다. 일단 도시를 벗어나 큰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산과 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온 기억이 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 그곳이 그 유명한 후쿠시마 원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발전소라 하면 높은 첨탑이 서 있고 복잡한 대형 기계 장치가 있어 영화에서 나오던 그런 모습일 것이라 상상했지만,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깨끗하게 정돈된 넓은 정원에 연못과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즐비한 꽃밭은 놀이공원에 온 착각을 일으켰다. 공원처럼 만들어진 발전소 길바닥 곳곳에 투명한 유리로 길게 이어진 유리 바닥 밑에는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비단잉어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이곳이 원전이라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본 특유의 정돈된 정원을 연상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우리 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놀랍다는 듯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클래스 80%가 한국 사람이니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역시 선진국은 뭐가 다르긴 달라’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잠시 뒤에 안내원이 나와서 원전에 관련해서 이런저런 설명이 이어졌다. 이야기의 요점은 그들의 원전이 훌륭하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안전에 관련해 왜 저렇게 강조하는지 몰랐다) 원전 공원의 길바닥 여러 부분을 파내고, 그곳에 물을 채워 투명 유리로 덮어, 안에서 헤엄치는 비단잉어의 물도 원전 냉각수를 정수해서 사용하는 아주 깨끗하고 안전하다 했다. 하물며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섞인 안내 멘트를 읊어댔다. 건물 외부 안내가 끝나고 내부로 들어가 원전 내부의 여러 복잡한 장비들의 설명도 이어졌다. 그저 새로운 광경이라 ‘와와’하는 감탄사만 나올 뿐이었다. 그저 안내원의 설명에 따라 원전은 안전하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혔다. 내 눈으로도 그렇게 보이기도 했으니.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원자력 발전소는 그들에게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러 기본 발상에서 벗어난 원전의 디자인과 환경친화적인 구성을 보면 수많은 사람의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고자 애쓴 흔적이 돋보인다.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한 시설이고, 사람들에게 크나큰 이익과 좋은 영향을 준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 어떤 시설보다도 선진적이고 단어 자체가 주는 혐오적인 시설을 탈피하려는 노력. 원전 강대국으로서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외 유학생의 견학 코스로 원전을 선택하면서까지 원전을 홍보하고 기술력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은 이미 한 발 앞선 기술 선진국이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원전 건설은 주민들이 반기는 시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반대의 목소리를 줄이고자 안전한 놀이 공간을 모토로 만들어, 조금 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면 주민과 더 들어가면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꾸미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노력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한 방으로 원전의 유효성에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아무리 깨끗하고 고효율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사람의 안전과는 맞바꿀 수는 없다. 20여 년 전 그들의 화려한 원전을 봤을 때는 아무런 지식이 없어 원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변해야 한다. 속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끌어안은 채, 겉은 화려하게 화장한 일본의 원전처럼 우리의 땅에서도 여전히 원전이 돌아가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발표한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내 마음 깊이 새겨지는 이유는 20여 년 전 일본의 원전을 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러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한 번 보지 못한 원전을 일본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과 후로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독버섯이 화려한 것처럼 안전한 시설로 포장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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