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아이의 죽음

체념

by 갸리

얼마 전 내가 사는 아파트 7층에서 떨어져 삶을 마감한 16살 청년이 떠오른다.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간 아파트 1층 현관 입구 앞에 사내 남자아이가 누워있다. 그 주위로 119 대원 세 명. '갑자기 심장이 정지해서 쓰러졌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딱딱한 타일 바닥에 누워 이미 정신이 나간 듯, 그래도 숨은 붙어 있었다. 가까이 가 자세히 보니 무어라 중얼중얼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사람의 숨이 끊어지기 바로 전의 웅얼거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았으면 좋겠다.' '살았으면 좋겠다.'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급히 출동한 119 대원 세 명이 어린 청년의 생을 끊기지 않게 하려고 조치를 하고 있고, 옆에 있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빨리 가족을 찾으라고 말한다. 119 대원 중 한 명이 "위에서 떨어진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청년의 왼쪽 다리가 부러졌는지 압박 붕대를 감고 있다. 하얀 붕대 아래엔 이미 청년의 피가 흥건히 바닥 타일을 적셨다.


'제발, 살아라!'

'제발, 죽지 말아라!'


어떤 이유가 있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너무 어리니까. 안타까운 마음. 남의 자식이라 해도 정말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꽃잎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다는 것이 가슴이 너무 스리다. 결국, 병원 이송 중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 이기주가 쓴 [언어의 온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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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건 식량 부족도 체력 저하도 아닙니다. 조난자는 희망을 내려놓는 순간 무너집니다. 체념은 삶에 대한 의지까지 꺾습니다."

라는 오지 탐험가의 말처럼 고등학교 1학년 청년은 '체념'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이 그런 선택을 한 원인은 학교 공부가 있을 수 있고, 부모와의 관계, 친구들의 시달림 또는 왕따 문제로 추측해본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청년 자신도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어려운 상황을 누군가는 잘 이해해주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희망을 내려놓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희망이 사라진 환경에서 삶에 대한 의지까지 스스로 지웠을지 모른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어른들이 잡아주지 못한 것이.


그런데 참, 웃긴 것은 그런 슬픈 죽음에 이웃 어른들은 소문을 실어 나른다.

"걔 엄마가 계모래요."

"아빠한테 어제저녁 엄청 혼났대요."

"죽었을 거예요."


와이프의 카톡으로 전해지는 동네 엄마들의 단톡 방. 어린 청년의 슬픔을 서로 보듬고 아파하는 것이 아닌, 그냥 가십거리로 생각하는 듯한 매정한 문자들의 향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마도 죽었을 거야'라고 하는 문자들. 사람에 대한 죽음, 그것도 너무나도 어리고 젊은 아이의 죽음 앞에 쉽게 써재끼는 문자가 나는 이상하다. 아이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보다도 그 집의 상황이 궁금한 것이다. 자신들의 내면에선 안타까운 마음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소문만 퍼 나르는 듯한 무의미한 문자는 반갑지 않다.


어린 사내아이의 죽음을 보며 다시 한번 '체념'이라는 단어가 주는 처참한 결과에 놀랄 뿐이다.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것.'


정말 힘들고 살기 힘들 때 이 '체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나도 모르게 높은 빌딩 옆을 지날 때면 고개를 위로 들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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