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생각, 조용한 결심 속에서
여름밤의 산책길은 특별하다.
시원한 바람이
천천히 얼굴을 스치고,
풀벌레 소리가 잔잔히 배경처럼 깔린다.
고개를 들면
어둠 사이로 별빛이 드문드문 떠 있고,
그 풍경 속에
나도 조용히 섞여 걷는다.
가끔 마주 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누군가는 나처럼 혼자 걷고,
누군가는 누군가와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강아지와 함께 나온 사람도 보인다.
저마다의 걸음으로
서로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그런 풍경들 덕분에
마음이 괜히 편안해진다.
예전엔 이런 길을 참 자주 걸었다.
어디론가 향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곤 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
그게 내게 꼭 필요했던 여백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산책을 멈추고 지냈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다 보니
‘걷는다’는 감각조차 점점 낯설어졌다.
그러다 오늘,
문득 다시 걷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혼자 걷는 이 길 위에서
익숙한 여름밤의 공기와 함께
생각들이 하나씩 따라붙는다.
가끔씩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정말 나와 맞는지,
혹시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건 아닌지.
더 나은 방향이 있었던 건 아닌지.
확신보단 질문이 많았고,
그 질문들은 좀처럼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들의 눈치와 주변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려 애쓴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자주 길을 잃었고,
어느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그 생각들조차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꼭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
남들보다 늦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내 호흡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충분히 괜찮은 삶 아닐까.
며칠 전, 우연히 읽은
92세 노인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살면서 알게 된 건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좋은 인생이 아니라,
자주 웃는 사람이 좋은 인생이라는 것.
생각해 보면,
행복이라는 건
어디에 도착해서 얻는 게 아니라
발걸음 사이사이에 자연스레 쌓이는 감정이 아닐까
그렇게 잠시 걸었을 뿐인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제야 문득,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눈에 들어온다.
산책이라는 건
애초에 뚜렷한 목적지가 없는 거니까.
여름밤의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한 길을 따라 걷는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안다.
이젠 어디로 가는지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걷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을,
산책하듯,
내 속도대로,
웃으며 살아가고 싶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