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미안

독서모임 '북클럽 데미안' - 첫 번째 책

by 글쟁이 결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insta @bookclub_demian)

책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어떤 지인과 같이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난 일이었다.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후기를 쓰고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생각을 키워나가는 일. 오랫동안 책을 읽어왔지만, 또 막상 내 일방적인 감상을 남기는 것에서 마무리했을 뿐, 그런 단계까지는 도달해 본 기억이 없었던 것이었다.


모임을 구성하는 일에는 능한 나는 어떤 모임을 만들지에 대한 머릿속 구상이 끝났는데, 막상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그 지인에게 '독서모임의 첫 책이라면 어떤 책을 같이 읽으면 좋겠어요?'라고 묻자, 그가 답하는 것이었다.

"저는 무조건 데미안이죠."

"네? 왜 데미안인데요?"

"모르겠어요. 저는 데미안이면 좋을 거 같아요.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책이라서요. 저 혼자 읽을 때에도 해석들이 자주 바뀌는데, 다른 사람은 저와 다른 방식으로 체험했을 테니까 같이 이야기하기엔 이만한 책이 없지 않을까요?"

"오 너무 좋은데요? 데미안을 첫 번째 책으로 함께 읽고, 저희 독서모임의 이름은 '북클럽 데미안'을 가칭으로 해볼까요."


그렇게 시작된 독서모임이었다.


우리 독서모임의 모토는 '1달에 1권, 그리고 1편의 독후감"으로 정했다. '직장인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원들에게 최소한의 부담으로, '텍스트 힙'이 주는 최고 효용을 선물하고 싶었다'라고 하면 그도 맞는 말이지만, 당장 나부터가 한 달에 2권은 자신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독서모임의 방점은 '읽기'도 있지만, '쓰기'에 있다. 1편의 독후감을 얼마나 공들여 쓸지, 그리고 내 독자가 될 독서모임원과 공유하는 일이 내겐 중요하다.


독서모임의 시작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정말 두근두근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데미안을 읽고 나서의 독후감을 아래와 같이 적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번 1달 동안 데미안을 품고선 책 페이지를 뒤적거렸다.


1. 성장에 대한 회고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과 고뇌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탐독 과정에서, 동시에 내 유년기부터 30대에 접어든 나까지를 돌아보게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크로머는 누구였으며 나의 데미안은 누구였을까? 스스로 답해보는 시간이었다.


2. 내게 있어 크로머

’크로머‘는 이 책의 주인공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정도로 큰 위협을 주는 어린 악인이다. 내 기억이 왜곡돼 극화되었을 순 있지만, 내 소년기에도 ‘크로머’가 존재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부모님에게 온순하고 상냥한 자식이 확실히 아니었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회초리를 두려워했으면서도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일들에 흥미가 생겼고, 허락 없이 그 일들을 즐기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축구를 하며 만났던 친구들은 학교에서 호감형의 얼굴들을 한 유쾌하고, 긍정적인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학교의 축구부에 속해 있었고, 공부는 하기 싫어했지만 운동과 노는 건 잘하다 보니 내 친구들 모두 인기가 조금씩 있었다. 흠이 있다면, 이들이 다소 거칠었다는 면이고, 장난을 정말 좋아하는... 때로는 금기를 어기는 것도 좋아하는 녀석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조심스레 회상하는 것이지만, 우리들 모두가 크로머의 탈을 쓴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 중에 가장 우두머리 격이었던 그 녀석은 정말로 '크로머'로 거듭날 수 있을 만한 이였다. 그 녀석은 덩치도 크고 힘도 가장 셌지만 무엇보다도 집에 재력이 많아서 우리는 주말마다 그 친구 집에 모여 그 시절 정말 흔치 않던 60인치에 육박하는 벽걸이형 티비에서 콘솔 비디오 게임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는 동갑이지만 우리 사이를 모든 면에서 완벽히 장악한 상태였다.


내가 싱클레어와 같이 직접적으로 크로머에게 위협을 받은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싱클레어가 겪었던 충격적인 순간은 내게도 있었다.


학교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던 중, 우리는 '크로머'의 제안으로 자동차 전면부에 부착된 '엠블렘'을 떼내는 장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성인이 되어 차를 소유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장난이 과연 애들의 장난이라고 쉽게 용서할 수 있을지 선뜻 확신할 수 없을 정도의 꽤나 규모가 큰 '재물손괴'에 해당하는 범죄에 준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각자 제일 비싼 엠블럼을 수집해 오기로 하자 우리는 너나 할 거 없이 흩어져서 외제차나 그 당시 에쿠스 등 고급차종에만 있는 엠블럼을 무력을 이용해 뽑아 왔다. 맹세하건대, 우리에게 이것을 돼 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난이었고, '크로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도 이런 무모함을 부추기는데 한몫했다.


나도 하나를 수거하고, 다음 차의 엠블럼을 노리고 있었을 때였다. 동시에 사방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더니 5명이 넘는 경비원 분들이 우리를 둘러싸버리곤 몸을 꽉 잡아 싸매버렸다. 도망갈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운이 없게도 모두가 걸렸던 것이 아니었고 나와 '크로머'를 포함한 4명만 붙잡히고야 말았다. 우리는 그대로 인근 경비소에 구금되고, 곧 경찰서에 신고가 되어 경찰들까지 찾아오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공포는 절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나도 두려웠고, 내가 건강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망쳤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학교에서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경찰서에서는 어떤 처벌을 받는 것인지 별의별 걱정에 두려움이 솟구쳤다. 그 당시 우리는 '촉법소년'이었기에 처벌받을 수 없었지만,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그리고 여전히 민사상 책임은 남는 것이었다). 경비원들과 경찰분들은 이러한 '엠블럼 손괴' 사건이 다수 발생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판매 목적은 전혀 없었던 우리와 달리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를 팔아넘기며 수익을 챙기고 있었기에 이러한 범죄 행위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태도는 정말 진지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도대체 왜 이런 장난을 벌였으며, 중학교 선배들이 시켰는지, 대가는 얼마나 받았으며, 어떻게 팔아넘기려 했는지 추궁했고, 정말 정말 무서운 경험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3시간의 구금과 피해자들에 대한 연락이 모두 마쳐진 후에, '크로머'의 부모님이 엠블럼 파손 비용을 전부 배상하는 것으로 다소 싱겁게 해결이 되었다. 그러는 바람에 내게 피해를 입은 차주 분들을 만나뵙고 사과조차 못 드렸었는데, 정말이지 철없었던 제 행동에 죄송스럽고, 지금이라도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싶다.


사실 어찌보면 나의 ‘크로머' 때문에 시작된 장난을, '크로머'의 부모님이 책임졌으니 이 플롯은 다소 안정감적인 구조일 수 있겠다. 그러나 '크로머'는 자신의 재미를 위해 이렇게 친구들을 쉽게 끌어들였고 돈으로 사건들을 쉽게 무마해 버릴 힘을 갖고 있었으며, 때론 재미를 위해 어떤 친구들을 따돌리곤 했는데, 그때 내가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문제는 이렇게 돈으로 사건이 매번 무마되었던 것은 그를 더 겁을 모르는 괴물로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다른 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며 그를 멀리하게 된 이후로 '크로머'는 더욱 반성을 모르는 영악한 어린아이가 되었다고 들었다.


내가 법조인이 아니었더라도 가담자로서 주동자를 따라 했다는 핑계로 위 같은 실수에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 수 있다. 한 번의 장난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후회스러운 규범에 대한 적나라한 도전이었다. 다만, 나에겐 정말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범죄에 준하는 이 일탈이 내게 준 큰 충격 덕분에 나는 '크로머'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가는 내 삶이 망가질 수 있겠다는 깊은 자각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님은 언제든지 이런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심적 여유(우리 부모님들은 내게 직접 처벌받으라고 하실 분들이었다)를 가진 분들은 아니었기에 내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강렬한 경험을 어린 시절에 해본 이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내겐 분명히 '크로머'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고, 그에 대한 선망과 공포, 두려움과, 경멸의 복합적인 감정은 내가 중, 고등학교 아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쉽게 잊히지 않았었다.


3. 나의 데미안

크로머와 달리 데미안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 싱클레어의 ‘나의 구원자이자 나의 이상향이자, 나의 지원군이자, 나의 멘토이자 친구’이다. 그렇다면 크로머와 어울리며 방황을 하던 철없던 나에게 데미안은 누구였을까.


사실 그만큼 내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 1명이 떠올려지지는 않는다. 그때 그때 내게 큰 영향력을 주는 멘토가 있었고, 그들은 연상일 때도 있었지만 동갑이거나 연하인 경우도 있었다. 사실 그 사건 후에도 제법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나는 부모님이 싫어하는 행동들도 재밌다는 걸 아는 소년이었을 뿐, 부모님이 내게 실망하는 것보다 내게 칭찬을 하실 때 더 큰 쾌감을 느끼는 소년이었다.


그럼에도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내게 큰 용기를 준 1분이 계셨으니 그건 내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모두 2번의 담임 선생님을 맡으셨던 은사님이셨다. 국어 선생님이셨던 내 은사님은 다른 많은 선생님들과 달리 격식 있는 옷차림을 선호하지 않고 통이 넓은 바지와 체크셔츠를 레이어드 하실 줄 아는 감성 있는 분이셨다. 길게 흰 턱수염을 기르셨고, 평범하지 않은 둥그런 테가 작은 금색 안경을 끼셨으며, 말수는 많지 않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었으며 그분의 표현으로는 분수에 맞지 않는 '오디오' 수집 취미가 있으신 분이셨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남자 중학교였지만 그는 묘하게 감성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두발단속에 머리를 강제로 잘리곤 하던 우리를 안타까워할 줄 아는 분이셨다.


내 은사님은 특히 담임반 제자들에게 1년에 하루 '캠핑'을 하는 걸로 유명하셨는데, 반 아이들 전원이 학교에 남아서 텐트를 치고, 학교 안에서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캠핑은 강당에서 자체 체육대회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한 것도 정말 낭만이 넘쳤지만 다 같이 모여 본 영화인 '죽은 시인의 사회'가 주는 인상은 정말 강렬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주체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내 뇌에 날아와 처박혔다. 내 은사님은 실제로 우리의 작은 실수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셨으며, 더 주체적이고 더 자신 있게 더 야망 있게 행동하기를 주문하셨고 나는 그 주문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 중 하나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 줄거리 중 일부 발췌-

"그러나 잠시 후 토드 앤더슨은 책상으로 올라가 월트 휘트먼의 시의 한 구절이자 평소 제자들이 존 키팅을 부르는 별명 오 캡틴 마이 캡틴(O Captain! My Captain!)을 외치고,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일부 학생들이 교장의 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떠나는 존 키팅을 향한 마지막 인사로써, 토드처럼 책상에 올라간다. 이 공존의 풍경은 다수 혹은 타인의 강요에 의한 관성적인 선택이 아닌 자유의지의 의미를 학생들이 깨달았음을 암시하는 미장센으로 볼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중

나는 은사님을 정말이나 좋아했고, 그에게 더 인정받기 위해 그가 이끄는 담임 반에 회장이 되었고(3학년이 되어서도 1학기에 회장을 맡았다), 은사님은 내게 날개를 달아 훨훨 날게 해 주셨다. 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말로 믿어 준다는 생각이 나를 자신 있는 소년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에게 받은 깊은 신망을 보답하고 싶은 열망에 더 멋있는 인간이 되고자 했다.


중2병이 찾아오고 있던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는 부모가 아님에도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주는 타인을 만나는 행운을 맛본 것이었다. 그 행운 덕에 나는 자존감 강하고, 자신 있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데 큰 동력을 얻었다. 지금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만들어온 많은 선택들은 외부의 시선과 같은 잡음들에 수도 없이 흔들렸지만, 언제였 건 그 선택의 주체는 나였다고, 그렇기에 내 삶에 나는 전적으로 책임질 자신이 있고, 그 무게를 견디는 덕에 벅찬 삶의 애정을 느끼고 있다고."


4. 데미안이 어른이 된 나에게 주는 편지

데미안은 읽기 힘들어서 두 번이나 완독을 실패한 책이었다. 정말 어른이 되고 난 지금에 읽어도 수많은 비유적 표현에 정신이 산만하고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심리야말로 늘 정신없고, 성장과정이 그렇고, 생애가 그렇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 하나로 통일할 수 없는 생각들, 이분법으로 나누기좋아하지만 두 개로 나눠서는 편협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측면에서 데미안은 기막히게 잘 쓰인 책이 아니겠는가.


선과 악은 양극단에 있지 않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 돼있음을 자주 느낀다. 범죄자들을 그 범죄만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으며, 유재석 님과 같은 위인에게도 어떻게 본받을 면만 있겠는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면서, 제법 사람들의 행동 기제를 잘 파악한다고 믿고 있지만 이건 여전히 큰 오만이다. 심지어 나 역시도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선택들에 너무나 취약함늘 너무 잘 알고 있다. 오전에 이것만큼은 절대 하지 않기로 한 다짐한 행동을 5분 후에 하고 있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다만, 내 몸을 조종하는 나로서도 나를 완벽히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되는 대로 두는 무기력한 비관론에 빠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알을 깨어내 타인이 아니라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데미안이 말하는 '자유의지'라고 나는 믿는다. 다음 고민은 이렇다. “그 '자유의지'를 갖고 내가 추구해야 하는 삶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선 '단순한 호르몬(hormone)적 충동'이나 ‘동물적 쾌락’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정의(justice)'에 근접해지고자 몸과 정신을 맑게 하는 것, 그리하여 비로소 내 주변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다.


데미안이 준 '아브락사스'(선과 악을 넘어서는 초월과 통합의 신)를 내 맘대로 이렇게 정의하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