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눌러 앉고 싶은 감정의 서재
이 책을, 문득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나는 이병률의 책을 펼친다.
맨정신으로 읽기엔 다소 오글거릴 만큼 감수성이 과잉되지만,
그 과잉된 감성이 오히리 나에게는 필요할 때가 있다. 마음이 공허하고 삶이 답답할 때이다.
이 책은 페이지 번호조차 없다. 숫자가 주는 압박이 없으니, 한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을 필요도 없다.
그냥 다시 기억하고 싶을 때 조용히 꺼내 읽고, 천천히 음미하면 된다.
시인이 산문을 써도 이렇게 시적일 수 있는가 싶다. 문장이 길든 짧든 리듬이 있어 술술 넘어간다.
대신 머리에 선명하게 남는 내용은 많지 않다.
시인이자 여행가인 그가 여러 순간에 느꼈던 감정이 책장처럼 차곡차곡 꽂혀 있을 뿐이다.
남의 서재를 훔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의 서재에 꽂힌 책들이 너무 다채롭고 따뜻해서,
주말이면 그곳에 푹 눌러앉아 계속 둘러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작가 이병률은 겉보기엔 있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부러운 것들을 잔뜩 갖고 있다.
여행가, 사진사, 시인이자 작가. 40시간 단식을 해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삶.
지독하게 쓸쓸해 보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황홀한 표현으로 사람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특히 이별을 이야기할 때 그의 문장들이 진국이다.
어디까지가 그의 실제 경험인지, 언젠가 술 한 잔 나누며 묻고 싶을 만큼.
여행기라고 해서 여행지를 소개하고 먹은 음식을 나열해야 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 감정’이다.
여행의 주체는 결국 나이고, 새로운 공간은 어느새 내 일상과 뒤섞여 그곳에서의 상념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하게 실패와 이별들로 아파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순간을 글로도 말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까.
머리로만 기억하려 했던 나와, 가슴 속 감정들을 글로 형상화 시킨 저자의 차이였을까.
평소 마음의 파도를 틈틈히 기록해온 사람의 깊이를 내가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맞다. 쉬이 따라가고자 하려는 건 욕심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메모장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부터 시작해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감성이라곤 태어날 때부터 실종된 듯한 내 가슴도 괜히 쿵쿵 뛰며 펜을 움직인다.
그러다 한참 뒤에 예전에 쓴 글들을 들춰본다. 이윽고 답답함을 느끼고, 단추 몇 개라도 풀어주고 싶어진다.
아, 작가처럼 글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무엇으로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작은 인연이라도 손편지를 쓰고자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질이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이다.
언젠가는 손편지가 아니라 장편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보고 싶다.
나도 나만의 감정 서재를 만들고 싶다, 활자로 만들어진 300 페이지 남짓의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글.
이병률 시인처럼 내 마음의 소리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다른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위로받을 수 있을 터인데,,, 그래서 글 쓰는 일은 매력적이다. 계속 도전하게 된다.
그렇다면, 글감들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사물보다는 사람에 관심이 있는 내게 생각의 재료는 언제나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가끔 지긋지긋한 인간관계와 사람들의 말에 멀미가 나지만, 이병률의 책을 읽으며 사람을 냉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조만간 찾아갈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돌아볼 터이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고민이 더 나은 나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시 인간관계에 냉소에 빠질 순간도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이 책의 자유로운 감성이 나를 다시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