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길 위에 놓인 감사, 발리에서 배운 마음의 재물

발리 여행기 2편 - 왜 발리 사람들은 웃고 있었을까

by 글쟁이 결변


장대비가 우붓의 풀들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참 평온해졌다.



여행지에서 나는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 보려고 한다. 심지어는 음식보다 현지인들에 호기심이 더 생기는 편이다



굳이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1. 사실 음식만큼은 세계화가 되어 가고 있지만 사람만큼은 그곳의 특색이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2. (이건 발리 한정된 이야기지만) 현지 음식을 제대로 접하려면 허름한 포장마차나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식당을 방문해야 하는데, 발리에서는 악명 높은 발리 밸리(발리의 정화되지 않은 물로 만든 음식을 먹었을 때 소화기관 등을 악화시키는 병)가 있기 때문에 '찐' 현지 음식들에 도전하는 것은 포기했어야 했기 때문에 음식 보다는 사람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점.


3. 또 발리에서 큰 비가 올 때면 어쩔 수 없이 그늘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 심심하다는 점.


4. 마지막으로 사실 일상에서 아는 사람 외에 사람들과 사담을 나눌 기회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다. 잘 알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을 찾고 그들과 교류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에.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생뚱맞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여행지에서 나란 사람은 음식보단 사람에 더 큰 여운을 얻는다 ㅎㅎ 기회가 많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아이고 어른이고 또래 할 거 없이 말을 붙여 보는 편이다. 아주 짧은 대화 속에서도 큰 배움을 얻을 때가 있다. 혼자 여행할 때면 이런 기회는 더 많아져서 동행과 함께하는 여행보다 더 좋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이건 우붓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닌데, 발리 사람들이 영어를 참 잘한다.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가까운 호주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라고 추측해 본다)



그래서 발리의 로컬들과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느꼈냐면...



그들은 참 친절하고 잘 웃는다.



이건 단지 그들이 관광도시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베푸는 친절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헤맑은 미소의 비결이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 그 때 앞선 EP01에서 소개한 루왁 커피 체험소 Arista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인 94년생 Sak Eka와의 대화가 많은 힌트를 주었다(사실상 거의 인터뷰에 가까운 대화였다).


우리는 우붓의 빗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Q. 어디에 살아?


A. 산 위에 살아. 아침이면, 직장에서 대절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Q. 근무시간은 어떻게 돼?


A. 근무시간은 하루 거의 12시간이 넘어.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8시쯤 퇴근한다고 보면 돼.



Q. 길거리마다 꽃을 모아 놓는 것을 발견했는데, 어떤 의식을 하는 것 같아. 그게 뭐야?


A. 그건 차낭 사리 (Canang Sari)라는 것이야. 차낭 사리는 Bali의 힌두교에서 매일 드리는 가장 기본적인 제물이야.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인간·자연·신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 의례라고 보면 돼. 모르고 그걸 걷어차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의도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Canang: 손바닥에 올릴 수 있는 작은 바구니(주로 야자잎).

Sari: 정수, 본질.

→ “정성을 담은 작은 제물”이라는 뜻. 크기보다 의도와 반복성이 중요하다.

(출처: Chatgpt)


차낭사리의 기능은 아래와 같다.

감사와 균형: 신에게 감사, 자연·조상과의 조화.

정화: 하루의 부정적 기운을 누그러뜨림.

사회적 규범: 개인 신앙이면서 공동체의 리듬을 맞추는 장치








Q. 발리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웃음이 많은 것 같아. 왜 그래?


A. 차낭 사리 의식을 하는 것처럼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습관이 있어. 그리고 자연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도 있어서 코로나 때에 관광객이 급감했을 때에도 우리는 심각하게 좌절하지 않았어. 우린 매일 기도드렸고,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믿었지. 우리는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감사해왔어.


또 발리는 굉장히 가족 공동체적인데,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뒤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으니까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 편이야.


Q. 그럼 종교의식도 많이 있겠네?


A. 응, 크고 작은 의식이 엄청 많아. 거의 매일 있다고 보면 돼. 일을 마치면 그걸 준비해야 해.



Q. 가족은 어떻게 돼?


A. 나는 94년생인데 아이가 3명이나 있어. 가족 공동체는 구성원이 많고 굉장히 커.



Sak Eka 와의 대화 일부




94년생 Sak Eka은 내 또래지만 나보다 많은 것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큰 근심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녀에게서 여유를 많이 배웠다. 나는 이미 많이 가졌음에도 왜 그렇게 조급해할까. 뭐가 그리 불안한 걸까.


로컬들과 대화를 통한 배움, 위에서 말한 내가 말한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이유이다.


Sak Eka와의 대화가 끝나고, 우린 짱구로 향하는 그랩 택시에 다시 올라 탔다.


나는 메모장을 켜고, 다녀와본 다른 동남아시아 인들과 발리의 인도네시아 인들을 지극히 주관적인 기억을 토대로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 만신(여러 신)을 모시는 힌두교 발리인들은 배타적이지 않고, 개방성이 높고 만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마치 곳곳에 신이 있다는 듯이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길거리에서도 꽃을 모아두곤 기도를 드리는 발리인들은 참 소박하고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 불교를 믿는 태국인들보다 이들에게 부과된 속박은 더 많은 듯 하지만, 태국인들보다 긍정적이며 책임감은 더 강한 것 같았고


- 이슬람교의 말레이시아인들보다는 보다 개방적이고 느긋한 듯싶었다. 독실한 이슬람인들은 감정표현이 정말 제한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추측해 본 발리 인들의 종교적 특성에 대해 확실히 알고자, 한국에 돌아와서 <인도네시아 발리인들의 종교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종교적 특성 차이>에 대해서 Chatgpt에 물었다. 발리의 사람들이 다른 동남아권 사람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색 결과, 발리는 다른 인도네시아와 다르게 동남아에서 드문 힌두 다수 지역으로, 종교가 생활 전반과 미시적으로 결합된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 있었다.





내 분석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듯했다. 카톨릭의 필리핀인들이 또 하나의 비교군이 될 수 있었는데 빠졌긴 했다. 내가 만난 필리핀 인들은 대체로 카톨릭 특성상 가족지향적인 점은 공통적이지만, 동시에 스페인의 영향 탓인지 서구 문물에 더 선망하는 시선이 있고, 더 호방하고 잦은 파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일차원적 비교로 수많은 동남아 인들을 일반화할 순 없단 걸 알고 있다.

내가 발리에서 가진 좋은 인상 덕에 발리인들이 좋게만 포장되고 있을 수도.

같은 힌두교인들이 많은 인도인들은 세계에서 제일 악평을 듣는 민족 중 하나이지 않는가 하하.

아마 발리인들도 오래 들여다보면, 단점들이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주어진 정보만으로 하나의 결론을 집요하게 도출해 내려는 법조인 병이 도졌나보다. 그래도 이런 저런 생각에 이동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행 중에 만난 발리인들의 밝은 미소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환영받는 기분을 잔뜩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또한 발리인들 뿐 아니라 차낭 사리는 힌두교 의식이지만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길 위에서 하는 감사, 차낭 사리를 내려놓는 것처럼 자연 속에서 감사해야 할 일은 사방에 있다.

이렇게 알게 되어 또 감사할 일이다.


세상에 신의 성격과 모양도 천차만별이고, 다양한데 발리인들은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들이 서로 다른 인간 군상들에 대해서 포용력이 높은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2. 만사에 감사하는 것.


당연히 좋은 말들이지만, 이것을 직접 실천하는 이들을 직접 마주할 때 그 중요성을 실감한다.


오늘 내가 이토록 배부른 여행을 즐기게 된 건 오로지 내 실력 때문이 아니다. 여러 가지 운이 내게 찾아온 덕분이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어떤 신을 의지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바구니를 내려놓지 않아도 마음의 차낭 사리(재물)을 곳곳에 내려놓는 것으로써 오늘도 행운이 찾아올 거라 기도해 볼 셈이다.





이렇게 우붓에서의 여행이 끝나가고, 나는 짱구로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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