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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굥굥 Apr 25. 2023

20, 쿠바여행

언젠가의 너에게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쿠바는 들어가기 전부터 참 싫었다. 쿠바 여행은 마침표였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의 마무리.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캐나다였는데 떠나기 전 마지막 한 달 동안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매일을 파티하듯 보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캐나다는 떠나기 싫은 곳이 되었고, 그렇게 짧은 멕시코를 거쳐 쿠바로 향하는 날에는 또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병이 도졌는지 어지간히도 가기 싫었다. 어쩌면 인터넷이 안 되는 이유도 컸을지 모른다.

쿠바에 들어서면서부터 숙소도 어느 장소도 마음껏 해결되지 않는 기분이었고 하바나는 영 정이 가지 않았다. 인터넷은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았고, 숙소 벽에 기대어 인터넷을 하려 발악하다 우리는 그렇게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바닷가를 어슬렁 거리고, 일몰을 보려 갑작스레 달려가고, 럼 한 병을 옥상에서 병째 돌려마시고, 창밖에서 이름을 불러 친구를 만나고. 그렇게 쿠바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마지막 하루.

여전히 아무것도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일몰을 보기 위해 떠난 모로 요새. 드라마에 나온 곳이 모로 요새가 아닌 그 옆의 다른 요새였다더라, 만 알고 떠났는데 역시나 인터넷이 될 리가. 길을 헤매다 그냥 여기로 정하자. 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만난 지 고작 24시간 남짓의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노래를 틀고 듣다가,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은 것을 다르게 또 같은 것을 똑같게 생각하며 그곳에 있었겠지. 무슨 말을 해도 또는 하지 않아도 완벽했던, 하바나까지 너무도 좋아져 버린 쿠바의 마지막 밤. 그곳에 더 이상 너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기억에 도무지 걸음이 아쉽다. 나의 쿠바.

그 모든 우리를 희미하게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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