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마지막 여정 마테오라.

안녕 내 사랑 그리스

변덕쟁이

2018년 12월 18일, 19일

그리스 마지막 여정,마테오라를 어떻게 가야 할지를 두고 나는 많은 변덕을 부렸다.


마테오라는 산 꼭대기 절벽에 만들어진 수도원과 교회로 유명한 곳이니 겨울에 자동차로 가는 게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차로 다녀오자고 했다. 그런데 불로거들의 이야기를 보니 가는 길 풍경이 욕심이 나기도 하고 생각보다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 광민에게 차로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광민도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산길에서 갑작스레 만난 눈보라에 낭떠러지 같은 길이라도 만날까 봐 조마조마 해졌다.(사실 여행 후 처음으로 맞이한 눈이어서 우린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며 사진도 찍었더랬다.)그래서 다시 기차를 타고 가는 게 좋겠다고 변덕을 부렸다. 눈이 내리면 평소에 안전했던 길도 모두 위험한 길로 갑자기 바뀌던 스위스 길들이 떠올랐다. 광민은 황당해했지만 기차역에서 잠을 자며 아침 날씨에 따라서 결정하기로 했다. 우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마테오라에 가기 위해 우리가 들른 마을의 주차장 뒤엔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친절하게 나오셔서 시계탑에 들어가도 좋다고 했다. 글씨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힘들었던 마을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사진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항전의 역사와 많이 닮아서 사진만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시계탑까지 오르는 계단은 비교적 무섭지 않아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 좀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딱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커다란 시계 앞에 서 있으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다른 세상으로 빨려갈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마을을 구경하고 기차역으로 가서 시간도 알아봤다. 그리고 기차역에 넓은 주차공간이 있어서 우리가 차를 두고 마테오라에 다녀오기도 편할 것 같아 차를 가져왔다. 이제 그리스 마지막 여행지를 남겨놓은 밤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밤 사이 내 발바닥과 뒤꿈치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발바닥은 땅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유튜브를 찾아보다 알맞은 스트레칭 법을 따라 하니 많이 좋아졌다.


아침 일찍 날씨가 좋아서 우린 결국 차를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넓은 직선 도로였고 전혀 위험하지가 않았다. 이른 아침 무사히 칼람바카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바로 눈 앞에 마테오라의 커다란 절벽이 그림처럼 서 있다. 원래는 마테오라에 택시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내 발 뒤꿈치에 갑작스럽게 생긴 통증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여행은 인생이 그랬듯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산 길에 어제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경우 위험할 수 있어서 날이 따뜻해질 때까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이어지던 꾸물거리던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고 따뜻한 햇살 속에서 신비로운 거대한 절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아톰은 스위스 여행길에 연습했던 덕분에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를 잘 누비고 다녔다. 마테오라가 공중도시를 의미한다는 것이 실감 났다. 4백 년 투르크에 항전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을까? 속세와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었을까? 그리스 정교의 공동체가 발전하여 수도원을 이루는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예전에 이십여 개가 있었다는 절벽 위 수도원 중 지금 남은 곳은 여섯 개인데 세 군데씩 돌아가며 문을 열었다.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워서 다른 곳은 중간에 포기, 그래서 우리가 간 곳은 스테판 수도원이었다.


절벽 위 수도원들은 절의 암자들처럼 작고 소박한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작은 공간인 것은 맞지만 한 틈도 놓치지 않고 화려한 채색이 가득 차 있다. 붉은색과 청색이 농도를 달리하며 황금빛과 어울려 황홀한 고귀함이 느껴졌다. 성당의 돔과 기둥을 연결하는 부분은 고운 단청이 떠오르고, 엄지와 중지 혹은 엄지와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원을 만든 예수와 성인들의 모습은 부처를 연상시켰다. 예수의 얼굴도 그동안 보아왔던 인자함이 아니라 철없는 학생들 앞에서 군기 잡는 선생님처럼 보인다. 상상해보지 못했던 매우 낯설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무조건 적인 믿음만이 아닌 스스로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잘못을 저지르면 혼날 것 같은..

한마디로 “너 똑바로 잘 살아!”이런 느낌


좀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으나 광민이 나를 부른다. 단체 관광 중이던 한국인 한 분이 광민에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한다. 중앙대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연락하자고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 그날 건강하고 쾌활하셨던 그 교수님은 우리가 한국에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안녕 내 사랑 그리스 (알렉산드라 폴리스에서)

2018년 12월 20일 목요일 5시 56분


4시 조금 지나 도착한 이곳은 알렉산드라 폴리스다.

저녁노을이 막 시작될 무렵 , 오른쪽 창밖으로 끝도 없는 새 떼들이 불꽃놀이처럼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내며 날아가고 있었다. 들판 어느 한 곳에 한꺼번에 내려앉기라도 한다면 농사를 몽땅 망쳐버릴 수 있을 것처럼 엄청난 무리들이다. 저 새들은 각자 생활하다 어느 날 시간을 맞춰 함께 길을 떠나는 걸까? 혹시 아직 가고 싶지 않은데 친구들 따라가느라 억지로 날아가는 새도 있으려나?


어느 나라나 어느 도시나 떠날 때는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리스는 아쉬움을 넘어 슬프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신비로운 유적지들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다. 그들이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그들의 친절하고 다정한 미소를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생각해보면 러시아도 사람들이 친절하고 배려가 깊었다,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선입견이 많았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정교와 동방 정교로 종교의 색채가 비슷한 나라끼리 삶의 태도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를 떠나기 바로 전 날인 오늘도 그리스 사람은 우리 부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열쇠가게 아저씨 이야기

우리의 캠핑카 아톰의 집 문 열쇠는 한 개 밖에 없었고 그것도 약간 휘어져서 자칫 파손이라도 되면 무척 곤란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열쇠를 확보해 보려고 수소문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유럽에서 수입한 제품이라 유럽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지 틈틈이 찾아보았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스를 떠나기 직전 작은 열쇠가게를 만났을 때도 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은 열쇠가게지만 가게의 예쁜 장식이 인상적이라 난 가게 구경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맘씨 좋은 사장은 아주 바쁘게 일하고 손님도 제법 많았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열쇠가게. 그런데 사장이 여행자인 우리를 위해 작업 중에 시간을 내준다. 그리고 꽤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열쇠를 복사해 준다. 희망을 걸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광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열쇠가게로 가본다. 그런데 열쇠 가게 주인이 차가 근처에 있냐고 묻더니 따라 나온다. 한 겨울 추운 날씨에 반소매 차림으로. 춥지 않냐고 했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뚱뚱해서 괜찮다고. 비까지 후드득 떨어지는데 열쇠가게 주인이 열쇠를 집어넣고 낑낑. 헛고생할 사장이 오히려 안쓰러웠는데 잠시 후 거짓말처럼 문이 열린다. 일단 열리고 나서 몇 번을 다시 시도해 본 뒤 우리에게 요령을 말해 주었는데 원래 열쇠보다 더 부드럽게 잘 열린다. 우리에게 아톰이 온 지 거의 1 년이 다 되어서 손에 넣은 보조 열쇠, 그것도 단돈 2유로. 너무 기뻐서 환호성이 터졌다. 서로 기뻐하며 기념사진까지 찰칵.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따뜻한 추억을 안겨 준 내 사랑 그리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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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라를 가기 위해 들렀던 작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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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시 마테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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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열쇠가게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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