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한 겨울 노천탕에 개팔자
이탈리아에서도 제법 추운 계절에 노천탕에 갔었지만, 지금은 12월 중순. 게다가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라 노천탕을 즐길 수 있을지 미심쩍었다. 그리고 온천물이 짜서 온천을 하고 나서도 따로 샤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숙소로 바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민과 의견이 엇갈려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광민이 처음 의도했던 대로 온천에 오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결국 도착해서는 대만족. 풍광은 이탈리아보다 떨어질 수도 있지만 훨씬 알찼다. 제일 좋은 점은 물이 아주 알맞게 따끈하다는 점이다. 지혜로운 광민이 미리 페트병에 물을 채워와서 물속에 넣어 두었다가 따뜻하게 만들어 맑은 물로 헹굴 수도 있었다.
이탈리아는 유황냄새가 더 심했는데 이 곳은 짠맛이 더 심했다. 옆에 바다가 있어서 인가보다.
더운물로 충분히 온천을 하고 나니 몸이 전혀 춥지 않고, 차도 가까이에 있어서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환경을 생각해서 샴푸나 비누를 전혀 쓰지 않으니 맑은 물로 헹구었어도 기름기가 남았지만 그래도 감기 전 보다 개운해 진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그곳을 떠나오기 전에 물이 흘러 오는 방향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 보니 원수가 샘솟고 있는 맑은 물이 보였다. 우리가 온천을 한 곳 보다 좀 더 물이 뜨겁게 느껴졌는데, 마침 캠핑카를 타고 온 일가족 다섯 명이 탕 속으로 뛰어든다. 20대로 보이는 딸 들이 입은 비키니나 아주머니가 입은 비키니는 왠지 속옷 같이 보인다.
비키니가 간단하게 빨 수도 있고, 말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주 편리하게 느껴진다. 온천장을 위한 수영복을 마련할 기회가 생기면 비키니로 할 것이다.(결국 수영복은 끝까지 사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여행엔 수영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곳은 부유물도 없고 너무 따뜻한 데다 진짜 욕조처럼 알맞고 넓은 직사각형으로 되어있고, 그 안에 신선해 보이는 샘물이 솟아나고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오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 겨울 노천탕 입구에 드러누운 편안한 개의 모습이 오뉴월 개팔자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진정한 사치를 누려보자
그리스에 들어와서부터는 제대로 일기를 쓰지 못했다. 첫날부터 너무 마음이 푸근해지고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노트북이 내 사진 저장 과정에서 충전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자 일기를 쓸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못 다 이해한 안내서들을 다시 해석해 보며 이해하느라 사간을 써야 했다. 하나라도 자세히 보다 보면 새로운 흥밋거리가 생기고 , 더 재미있는 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돈을 주며 시킨다면 힘들고 귀찮아서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런 걸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 할 수 있겠지.
생각해 보면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고생을 하기 위한 여정이다. 특히 캠핑카 여행은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을 직접 계획하고 한정된 최소한의 물자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매일 쉴 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여행에서도 쉼표가 필요하다. 오늘 이 쉼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부부는 많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쉼표가 필요할 만큼 이미 서로 많이 지쳤을 것이다. 늘 최소한의 물자로 최대의 효과를 생각하다 보면 쉼표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 숙소를 정하거나 외식 한 번을 하는 것은 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많은 비용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쓰는 것 ,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치다. 우리 부부는 이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우리가 진정한 사치를 누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는 것에 바로 합의하고 원래 예정보다 하루 더 있겠다고 주인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리가 쉬려고 묵었던 호텔 근처에는 유료 온천이 있었다. 유료라고는 하지만 값이 턱없이 싸다. 스위스에서는 비수기에 , 애프터 워크라는 제도를 더해 두 번 할인된 가격이 18유로였다. (오스트리아는 애프터 워크가 없이 22유로였다.) 그런데 여기는 3유로짜리부터 있었고 럭셔리가 붙은 것이 6유로다. 평소에 그렇게 원하던 값싼 목욕탕- 그것도 온천 수영을 겸할 수 있는-을 만났는데 우리한텐 그림의 떡이다. 우리는 어제 막 온천을 했고, 근처에 코인 세탁소가 없어서 숙소에 젖은 빨래들을 빨아너느라 이미 지쳤다. 온천에 세탁기나 건조기가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없다는 대답이다. (만일 있었다면 다시 한번 온천을 하고 싶었다.) 참 아쉽다.
빨래도 너무 힘들지 않을 정도 해야 하고, 아무리 좋은 온천이 유혹을 해도 더 욕심을 부리면 안되고...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워간다.
이 호텔에 들어온 날 노트북의 시간도 충전시스템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참 신기했다.
커다란 수영장이 딸린 온천과 작은 호텔들이 있고 집들도 제법 있는 마을이지만 슈퍼는 달랑 한 군데. 그것도 아주 작고 문을 여는 시간도 얼마 안 된다. 러시아처럼 여기도 생우유는 없다. 하지만 각종 소스류와 치즈는 싸고 풍부했다. 외식할 수 있는 음식점도 비수기라 그런지 유일하게 한 군데 문을 열었다. 두 가지 요리에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가격이 저렴해서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너무 맛있고 양이 많아 포장해서 다음 날까지 먹었다. 서비스로 나온 빵이 맛있어서 포장할 때 따로 사려고 했는데 인심 좋게 그냥 주었다. 역시 그리스 음식은 끝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동네를 산책하는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여행하면서 무수히 많은 개들을 만났지만 짖는 개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보니 주인이 있는 개가 사납게 짖었던 기억이 났다.
짖는 개와 짖지 않는 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하며 글을 써 보기도 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쉴 수 있었던 그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