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지난 7월부터 나는 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스스로 정년을 선언하고 퇴직한 지 3년 만에 다시 출근을 시작한 것이다. 12월까지 한시적 계약직이지만 아이들 돌보는 일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서 계약이 끝나더라도 계속 자원봉사를 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센터 못지않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2021년 여름이 끝날 무렵 어느 날


나는 매일 10시경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30분 전에 출발한다. 걸어서 10분 남짓 이면 되는 거리를 이렇게 일찍 출발하는 이유는 처음엔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없으면 서지도 않고 쌩쌩 달리는 시골 버스는 예상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 일쑤이다. 이것이 너무 불편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군민의 의견'을 듣는 곳에 투서를 해보기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다행히 내 출근시간엔 10분 이상 빨리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좀 여유 있게 나가도 되는데 난 여전히 30분 전에 출발한다.


이유는 출근길 풍경을 여유 있게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또 다른 이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건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처음앤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것이 쉽지 않았다. 그들은 완전히 낯선 타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 길 건너 편 이웃마을 사람들이다. 두 마을이 원래 하나의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모른 척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사를 받는 분들이 우리 집이 어디냐고 묻거나 혹은 어느 집 자녀냐고 묻는다. 그리고 내가 작년에 이사 온 사람이란 얘기를 하면 반색을 하시며 알은체를 하신다. "아~ 그 마을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랑하는 바로 그 사람이구먼..."으로 시작되어 이야기가 이어진다. 앞마을은 우리 마을 보다 훨씬 커서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매번 달라진다.그런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거의 비슷한 게 너무 재밌다. 우리 부부 이야기는 앞 마을 구석구석까지 소문이 파다한 모양이다. 소문을 낸 장본인은 우리 마을의 엄니들. 단점은 쏙 빼고 자랑만 전하셨다. 따뜻한 마음에 출근길이 훈훈해진다. 그리고 퇴근 후 만나는 마을 엄니들이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다.


출근 한 지 두 달쯤 되어갈 무렵이 되자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경우가 많고, 어떤 땐 반가운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제는 앞 마을에 산다는 내 또래를 만났는데 매우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정류장에서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며 통성명도 하고 주말에 놀러 오라고 초대도 했다.


움직이는 거리가 늘어나면 만나는 사람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의 만남이 참 신기하고 재밌다.

자동차로 출퇴근하였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 동네 정류장에서라면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람들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시골 정류장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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