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이름

by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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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언젠가 대출 반납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검색했는데, 성까지 포함해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쉰여섯 명이 나왔다. 학교를 떠나고 십여 년이 흘렀으니, 아마 지금은 백 명쯤 되지 않을까? 아니지. 내 이름은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내 세대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이에게 내 이름같이 흔하디 흔한, 개성이나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내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날 시점에 내 이름은 멸종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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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싫어하느냐 하면 하면, 그렇지는 않다. 정이 안 간달까. 좀처럼 내 것 같지가 않다. 낯설다. 나는 내 이름을 쓸 때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꼭 남의 이름을 쓰고 듣는 것만 같다. 이름 석 자에 모두 들어간 ‘ㅇ’의 동그란 모양이, 동그란 발음이 어색하다. 모가 잔뜩 난 나랑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이름은 어느 한의원에서 지어 온 것이라고 했다. 근방에 가장 배운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을 찾아가 돈을 주고 지은 것이다. 이름을 지을 때 받아 온 문서가 있는데, 지금은 없다. 초등학생 때 내가 발견한 뒤 들고 다니다 잃어버렸다.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난다. 검은 틀과 검은 줄이 그어진 밋밋하고 클래식한 양식의 편지지에 볼펜으로 쓴 한자가 가득하고, 오른쪽 상단 귀퉁이에 내 한자 이름이 크게 적혀 있었다.

그 문서를 본 뒤 나는 오랫동안 내 이름에 들어가는 ‘경’을 慶(경사 경)이라고 썼다. 획이 얼마나 많은지, 외우는 데 한참 걸렸다. 하지만 참을 만했다. 나의 탄생과 존재가 경사스럽다고 말하는 한자를 쓰는데 이 정도 수고쯤이야. 물론 이름에 대한 해석은 100퍼센트 나의 추측과 상상에 의한 것이다. 나는 그 문서에서 내 이름 한자 말고는 어떠한 내용도 읽거나 해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등본을 떼 보니 내 이름의 ‘경’이 慶이 아닌 敬(공경 경)으로 나온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란다. 그러면 어디서 배달 사고가 난 거지? 내 출생 신고를 한 사람은 아빠라고 했다. 아빠가 면사무소에 잘못 알려 준 건가? 아니면 면사무소 직원이 잘못 기입한 건가? 설마 두 사람이 짬짜미를?

다시 자의로 의미 부여를 해 보자면, 敬이 들어간 이름은 결국 ‘공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敬이 들어간 이름도 꽤 괜찮은 것일 텐데, 내 이름의 ‘경’이 敬으로 밝혀진 순간 내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慶을 외우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억울한 마음의 지분도 꽤 컸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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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상대의 이름을 되뇌며 ‘참 그 사람다운 이름’을 지녔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이름을 이루는 글자의 생김새나 소리가 어쩌면 저리도 이름의 주인과 잘 맞아떨어질까.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의 주인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이름과 사람이 그렇게도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선하고 다정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내 지인은 진실로 선하고 다정하다. 그 아이는 이름을 부여받았을 때부터 선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선하고 다정한 이름으로 자꾸 불리면서 실제로 선하고 다정한 사람이 된 걸까.

그리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는 예외인 거 같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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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내 이름에 익숙해질까. 개명도 생각해 봤지만, 법원을 설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름을 바꾼다 한들 새 이름에는 익숙해질 수 있을까. 그 이름을 나다운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고 있다. 스스로가 모난 사람이라는 것과 더불어, 모난 내가 싫다는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사람이 둥글둥글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매번 날을 세우고 부딪히고 아파하는 걸 보면 차라리 재미는 좀 없어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더 낫지 싶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특별할 것 없는 무던한 이름의 주인이 이름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까탈스러운 사람이어서, 그나마 이름에 특별함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2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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