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래도 내일의 내가 짜증 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마나 덜 죄책감을 느끼면서 잠들기 위해 적어도 설거지와 양치질은 하고 누우려고 노력한다. (특히 양치질을 안 하고 자면 이가 썩거나 빠지는 ‘흉몽’을 꾸기 때문에, 자고 일어났을 때 기분이 아주아주 안 좋다.)
그런데 어제와 엊그제는 설거지, 양치질조차 안 하고 누워 버렸다. 유튜브 플레이어로 전락한 아이패드를 손에 쥐고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생각은 한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서 설거지랑 양치질해야 하는데. 오늘 하기로 해 놓고 안 한 일들 해야 하는데.
낮에는 입맛이 없어서 별로 안 먹다가 저녁때 몰아서 밥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저녁밥을 조금 이른 시간에 먹는다. 6~7시쯤. 저녁을 먹고 나면 잠들기까지 남는 시간이 꽤 된다. 네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 뭐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쓰다 만 동화를 써도 되고, 쓰기로 마음만 먹은 일기를 써도 되고, 1일 1개씩 그리기로 한 그림을 그려도 되고, 못 다한 외국어 공부 리추얼을 해도 된다. 그렇게 어려운 일들도 아니다.
하지만 도무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울 힘과 의지가 안 난다. 일어날 엄두가 안 난다. 머릿속에서는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은 일들이 둥둥 떠다닌다. 그러다 보면 ‘오늘 아무것도 안 했네.’ 하는 생각이 들고, ‘나는 왜 맨날 이럴까? 인생 얼마나 길다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걸까.’ 하는 죄책감과 함께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요즘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는 때가 많다. 하고 싶은 거, 해야 한다고 정해 놓은 건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는 순서를 정해 놨어도 ‘아, 이거 먼저 하고 싶은데.’ 하는 생각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차피 나하고만 약속한 일이고 혼자서 하는 일이니 뭐부터 하든 무슨 상관이냐며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려고 하면, ‘그런데 이거 먼저 해도 돼?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먼저인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또 시작을 못 한다. 늘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못하다 무기력감에 빠지고, 극도의 자괴감을 느낀다.
요즘 ‘감정 드로잉’을 배우고 있는데, 얼마 전 실제 일어난 일과 그 일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을 그리고, 그 경험과 감정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글을 써 보라는 미션을 받았다. 나는 어제와 엊그제 느꼈던 무기력의 늪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뭐, 생각해 보면 하루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직업 훈련 학원에서 무슨 수업을 들을까 고민했고(결정을 내리기까지 무려 이틀이나 걸렸다), 국민취업지원제도 과제를 했고, 학원 상담과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을 받으러 다녀왔다. 뉴스레터들을 읽었고, 집 안을 청소했고, 샤워를 했고(무려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기르고 난 뒤부터 머리를 감는 일은 나에게 ‘큰일’이 되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외국어 공부도 했다.
어쩌면 나는 능력치 그릇이 종지만 한 사람일 수 있다. 내 종지만 한 그릇에 과도하게 많은 일들을 담아내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능력치 그릇을 더 키워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그릇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아주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기는 하지만, 저녁 시간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알차게 쓰고 싶다. 적어도 유튜브만 보면서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심지어 요즘 유튜브에 재미있는 것도 없단 말이다). 꼭 생산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책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자. 내 종지만 한 그릇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얼마 없는데, 그 귀한 자리를 재미도 없는 유튜브 영상 보는 시간으로 채워서야 되겠는가.
☞ 나를 잘 돌보기 위한 오늘의 팁
밥을 아무렇게나 먹지 않는다
잘 차려 먹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몸에 안 좋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떼우지는 말자. 먹는 것이 곧 나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 하루에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 귀한 끼니를 인스턴트 음식으로 떼우려 하는가! 그러면 안 되지, 암.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해서 마무리 지어 볼 것
잘하려고 하면, 잘하려는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못해도 되니(정말이야, 진심이라고!) 부담 갖지 말고 뭐라도 시작하자.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아주아주 작은 일이라도 괜찮다. 낙서든, 지금 이 글처럼 아무렇게나 끄적이는 글이든 뭐라도 하나 해내고 나면, ‘그래,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과 함께 어마무시한 성취감이 들 테니까. (24.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