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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Dec 09. 2018

당신은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습니까?

변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1).

 필자는 (2018년 현재) 3년 차 변호사다. 몇 주 전, 로스쿨을 목표로 하는 대학생 후배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변호사가 꿈이었던 사람으로서, 하지만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변호사가 이런 직업인지 전혀 몰랐던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들 중 일부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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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많이 해왔다. 아무래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살인자를 최선을 다해 변호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변호사가 되어서 살인자를 변호해보고 나니 충분히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었다.


  변호사가 된 뒤 처음으로 맡은 사건이 살인 사건이었다.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30대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이 전 여자친구를 죽였다고 실토하고 있었다. 살인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데, 무슨 변호사가 필요할까 싶지만 아니었다.


 살인자가 변호사에게 요청한 것은 “검사는 내가 계획적으로 살인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우발적으로 살인한 것이다. 이걸 주장해달라”였다. 계획 살인과 우발 살인은 형량이 다르다. 무기징역과 징역 25년 정도의 차이라고 보면 쉽다. 자기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은 맞는데, 말다툼하다 우발적으로 죽인거지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만난 게 아니라는 변호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는 누구나 변호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절도범이 물건 60개를 훔쳤는데, 검사가 70개를 훔쳤다고 기소(범죄행위를 밝혀 법원에 재판을 요구하는 일) 하면 억울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변호사도 할 말이 있다. 절도범이 훔치지 않았으니 무죄라고 발뺌하는 게 아니라, 훔치긴 훔쳤는데 훔친 물건의 개수가 다르다는 주장이다. 유/무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죄의 정도에 맞게 처벌을 받기 위해서도 그 절도범에게 변호사는 꼭 필요하다.


  TV나 영화에서 보는 재판 장면에서는, 보통 피고인(범죄자라는 의심이 들어 검사에게 기소당한 사람)은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검사는 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형사재판은 유/무죄를 따지는 경우보다 죄의 정도를 가지고 다투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이유로는 첫째, 검사가 해당 피고인이 유죄가 확실할 경우에만 기소하기 때문에, 재판까지 온 사람이 무죄인 경우가 거의 없다. 둘째, 피고인 입장에서는 내가 감옥에 "2달"있을지, "10달"있을지가 매우 중요하니 죄의 정도를 가지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살인자를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현대 사법(司法:법을 적용하는 국가작용) 체계는 "검사는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공격"하고,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방어"하도록 짜였다. 그 사이에서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 둘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저울처럼 재가면서 판결을 내린다. 이렇게 3자가 서로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면, 실제 진실에 가까운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 하에 사법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정의의 삼위일체라고나 할까.


  정의란 무엇인가. 60개를 훔친 절도범이 60개 훔친 죄로 처벌을 받는 게 정의다. 우발 살인 한 살인범이 계획 살인한 것으로 처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불의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만큼의 벌만 받아야 한다. 그것이 형사법(국가 형벌권의 내용과 그 집행 방법 등을 규정한 법)의 이상(理想)이고, 현대 사법체계의 목표다.


  즉,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피고인을 방어하는 것이 정의를 찾기 위한 "삼각형"의 일부임을 안다면,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정의를 위해서" 변호할 수 있다.

  우리는 정의에 반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억울함"을 느낀다. (실제 진실은 신만이 알지만, 실제 진실을 판사가 안다고 가정하면) 징역 7년 받을 사람이 징역 10년 받는 것이, 무죄받을 사람이 징역 3년 받는 것만 것만큼 "억울"하지 않을까?


  

 앞서 말한 살인 사건에서, 필자는 면밀하게 사건기록을 검토했다. 피고인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피고인의 말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충동 살인임을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제시했다.

  반대로 검사는 피고인이 계획 살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판사는 검사의 손을 들어 계획 살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그 피고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도 복역 중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필자도, 검사도, 판사도 모른다. 그저 셋이 최선을 다해 나온 결과가 정의에 가깝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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