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4 나의 악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줄 알았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세상을 무서워하고 사람을 미워하면서,
그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을 무서워하게 된 게
나뿐인 줄 알았다.
사람을 가치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 말을 처음 들은 건 어느 때보다 세상이 밉고 사람이 무서울 때였다.
밉고 무서운 그 마음을 내가 영영 가진 채 살게 될까 하는 초조함에,
내가 나를 채찍질하며 벼랑 끝으로 몰던 때.
그때 내가 가치로 판단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타인은 두려운 존재, 나를 싫어할 수 있는 존재 그뿐이었지만
나는 나에게, 누구보다 쉬운 사람이었다.
두렵지 않으면서도 내가 마음껏 싫어할 수 있는 사람.
내겐 그 대상이 나였다.
누구보다 쉽게 가치로 치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나는 착할 수밖에 없었다.
비교군이 없었으니까.
동시에 나는 나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개체가 하나뿐인 모집단에서 그 표본은 최고인 동시에 최악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나를 동정하다가,
증오하다가,
안쓰러웠다가,
못마땅했다가,
연민을 품다가,
마침내 악의를 품었다.
가장 가여운 나를 가장 원망하는 내가
나에게 가진 건 애틋함이었을까 분노였을까.
사람을 가치로 판단하면 안 된다.
설령 그 대상이 나 자신일지라도.
악한 마음을 품었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얻고자 착한 척하는 사람이
선한 천성을 타고났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쁜 척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선과 악의 경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 선을 좇기로 한다.
선과 악 그 사이 어딘가에 있더라도 이왕이면
선에 가까운 쪽을 향하기로 한다.
나만 선하다는 착각 대신 나도 선하자는 다짐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