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가 자라 디자이너가 되는가

no.01 떡잎부터 디자이너가 꿈, 은 아니었다

by 남겨울

디자이너가 되었다.


평생 이과가 체질인 줄만 알았는데.

돌잡이 때 책을 잡고, 어릴 때부터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는 그 말이 순리인 것처럼 나는 내가 책과 글을 '좋아하'고 수학과 과학을 '잘 하는' 줄 알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는 이과였고 그 길로 대학교까지 자연계, 심지어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니까.


처음 책을 읽고 글을 쓴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은 또렷이 기억한다.

11살이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어버이날이나 현충일 같은 기념일마다 원고지를 주며 글을 쓰라고 시켰다.

나는 눈에 띄게 성실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유 없이 반항하는 것도 겁냈기 때문에, 주어진 글감과 페이지 수를 착실히 지켜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운 원고지 뭉치를 교탁에 제출했다.

그러면 얼마 지나 그 뭉치는 상장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 대신 우리 남매를 돌봐주신 분은 친할머니였다.

나는 거의 매일,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바삐 돌아갔는데 상을 받은 날이면 발걸음이 조금 더 빠르고 가벼워졌다.

할머니는 내가 상을 받았다고 하면 나보다 더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11살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상을 받았었다.

여타의 날처럼 집에 돌아가자마자 할머니방으로 뛰어 들어가 할머니 눈 앞에 상장을 내밀었고, 할머니는 상장에 적힌 글씨를 찬찬히 읽으시더니 곧 그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너는 나중에 작가를 하면 참 잘 하겠다."


할머니는 알았을까.

그 말이 내게 불을 지폈다는 걸.

그 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펜을 들게 만든다는 걸.


얼마 후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써봤다.

어린이 전집이며, 어린왕자며 유명한 책은 꽤 읽어봤지만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내가 만든 인물들이 내 마음대로 뛰어논다는 사실이.

천 원짜리 스프링 노트에서 시작된 나의 세계는 컴퓨터 메모장을 거쳐, 인터넷 카페를 거쳐, 워드와 노션을 거쳐,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로 뻗어나갔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을 땐 글쓰기 모임에서 보다 본격적인 단편 소설을 완결내기도 했다.

졸업 후 대책없이 올라간 서울에서는 독립출판 수업을 들으며 내 글을 종이에 담았고, 그 해 가을에는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 북페어에 나가 내가 만든 책을 팔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편집디자이너가 되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누가 알았을까.

작가가 꿈이었던 아이가 물리학과 4년제를 졸업하고 디자이너가 될 줄을 말이다.

글쓰기 상을 밥 먹듯이 받던 11살짜리 초등학생은, 교복을 입고 수학 과외를 받으며 졸던 고등학생은, 전공 시험을 앞두고 매일같이 밤을 새던 대학생은, 꿈에도 몰랐다.

꿈에도 몰랐고, 꿈꾼 적도 없는 직업이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고 앞으로의 내가 기대된다.

예측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 무섭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큰 울림으로 설렌다.


글쓰기 상을 밥 먹듯이 받던 11살짜리 초등학생의 꿈을,

교복을 입고 수학 과외를 받으며 졸던 고등학생의 결심을,

전공 시험을 앞두고 매일같이 밤을 새던 대학생의 방황을

앞으로 이 곳에 하나씩 남겨보고자 한다.

구구절절 내뱉는 문장들은 결국 이렇게 귀결될 것이다.

나도 해냈으니 당신은 더 크게 해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