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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Oct 11. 2022

조상님들의 편지 꾸미기: 시전지(詩箋紙)

예쁜 건 못 참지!

스마트폰도 핸드폰도 없던 2000년대 학생들은 독특한 편지지를 소유하기 위해 청소년 잡지 ‘와와일공구(WAWA109)’나 ‘엠알케이(미스터케이, MR.K)’ 뒷부분을 뒤적거리곤 했다. 요즘처럼 매끈하게 재단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쇄만 된 상태라서 일일이 다 오려서 풀로 붙여 만들어야 했다. 어차피 편지를 보낼 끈끈한 사이라면 편지지도 예쁜 것을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옛날의 예쁜 편지지인 ‘시전지(詩箋紙)’는 이름처럼 처음에는 시를 적은 작은 쪽지를 의미했으나 더 예쁘게 주고 싶은 마음에 동물이나 식물 무늬를 도장처럼 찍어 꾸민 종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시를 적는 용도로 사용했으니 일자로 글씨를 나란히 적기 위해 줄칸이 있는 모양이었다가 여러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그림 부분만 찍어 대량으로 판매했던 것 같다.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개항기 즈음부터 많이 쓰였다. 


문인화에 많이 등장하는 점잖은 분위기의 무늬가 대부분인긴 한데 그 와중에 현악기의 줄 사이에 글씨를 쓰라고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몇 백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 한지를 사용하다보면 눈에 거슬리게 왜 중간에 하얗거나 색이 있는 종이조각을 흩뿌려놨는지 의문이 들곤 했다. 내 눈에는 거슬렸지만 그 무늬는 나름대로 종이꾸미기를 한 조상들의 미감의 결과물이었다. 지금이야 기계로 예쁘게 패턴이 만들어지지만 예전에는 부드럽게 조합하기 힘드니 돌가루같은 조각을 군데군데 배치해 놓기도 했다. 이런 종이를 구하지 못했는지 어떤 편지는 색연필같은 것으로 마구 칠한 것도 있다.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마음의 절박함만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듯하다.  


*관련자료*

국립고궁박물관, 2008,『꾸밈과 갖춤의 예술, 장황(粧潢)』, 국립고궁박물관.

손계영, 2007,「조선시대에 사용된 시전지의 시대적 특징」,『서지학연구』36, 한국서지학회.

손계영, 2011,「조선시대 시전지 사용과 시전문화의 확산」,『고문서연구』38, 한국고문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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