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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Apr 25. 2023

약과는 어떻게 셀까? 약과의 유래

조선왕조실록, 여유당전서

요즘 핫한 디저트로 재조명받고 있는 약과(藥果)!

한 개, 두 개 로 세도 되지만 예전에는 따로 세는 단위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1. 엽(葉) 

『중종실록』중종 23년(1528) 4월 15일 기사를 보면 ‘약과 6~7엽(藥果六七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엽(葉)’은 나뭇잎이라는 뜻이죠. 동전을 셀 때도 쓰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모양이 넓고 납작해서 그렇게 불렸던 걸까요? 

중종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ka_12304015_001 


2. 입(立)

좀 더 일반적으로 쓰였던 단위는 ‘입(立)’이었습니다. 입이라는 단위는 넓고 납작한 자리 같은 것을 셀 때 많이 썼던 단위입니다. 위의 엽과 비슷한 뜻이죠. 그런데 동전닢이라는 말에서 닢은 잎을 뜻한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잎의 발음을 살린 한자를 쓰면 立을 쓰고 뜻을 살린 한자를 쓰면 葉을 쓴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닢[葉], 닢[立]으로 번역한 문서들을 검색해볼 수 있습니다.      


약과는 보통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렇다면 얼마나 사용했을까요? 구체적인 수치는 다른 자료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 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만 검색해본다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세종 29년(1447) 11월 3일 기사를 보면 능·전 제사에 약과 네 그릇이나 다섯 그릇을 올렸습니다. 헌종·철종·고종대의 승정원일기 기사를 보면 한 번의 능·묘 제사시에 20닢(立)의 약과를 진상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종묘·사직제 같은 큰 제사에서는 쓰지 않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지내는 제사 시에 사용된 음식인 것입니다. 

세종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2911003_001

승정원일기(헌종) https://sjw.history.go.kr/id/SJW-I13080120-01400     


또 다른 용도는 무엇이 있을까요? 귀한 음식이라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로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 문병 선물로 쓰인 사례를 발견했는데 재미있어 소개해드립니다. 『현종개수실록』 현종 6년(1665) 5월 30일 기사를 보면 수원부사 박경지가 온천에서 요양중인 현종에게 약과를 올려 사치스럽다고 탄핵을 당했습니다. 『순종실록부록』순종 4년(1911) 1월 25일 기사를 보면 군사령관 문병을 위해 약과 한 상자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현종개수실록 http://sillok.history.go.kr/id/wra_10606003_001

순종실록부록 https://sillok.history.go.kr/id/wzc_10401025_001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는 약과의 유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놓아서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원문은 ‘한국고전종합DB’에서 가져왔고 번역은 제가 한 거라서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겁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부록 잡찬집(雜纂集)2 – 아언각비(雅言覺非) 권3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P_0597A_0240_040_0430_2014_005_XML     


藥果者,油蜜果之一名。謂之果者,形變而名存也。

약과는 유밀과의 명칭 중 하나이다. ‘과(果, 과일)’라고 한 것은 형태가 변했는데 이름만 남은 것이다.     


星翁云:“藥果謂之造果,猶言假果也。”

성호 이익: “약과는 ‘조과(造果, 만든 과일)’를 이르는 것으로 ‘가과(假果, 가짜 과일)’를 말하는 것이다.” 

【東語凡非眞者,謂之造】 

【우리나라 말[東語]로 진짜가 아닌 것을 ‘조(造)’라고 한다.】

성호 이익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5562     


古者以蜜麪造爲果子之形,或如棗栗,或如梨柹,名曰造果。

옛날에 꿀[蜜]과 밀가루[麪]로 열매[果子]의 형태를 만들었는데 혹은 대추나 밤 같다고도 하고 혹은 배나 감 같다고 하여 ‘조과(造果)’라고 불렀다.     


其後嫌其圓轉,不能累高,改作方形,而果之名猶存也。

나중에는, 둥근 모양이라 굴러다녀서 높게 쌓을 수 없음을 불편하게 여겨 형태를 바꾸었으니 과(果, 열매)는 이름만 남았다.     


今祭祀陳饌,猶在果籩之列。

지금 제사에 올릴 때는 과일 그릇이 있는 줄에 둔다.     


按東語,蜜謂之藥。

우리나라 말로 ‘꿀[蜜]’을 ‘약(藥)’이라고 한다.      


故蜜酒曰藥酒,蜜飯曰藥飯,蜜果曰藥果。

밀주(蜜酒)를 ‘약주(藥酒)’라고 하고 밀반(蜜飯, 꿀밥)을 약반(藥飯, 약밥)이라고 하고 밀과(蜜果)를 약과(藥果)라고 한다.     


○《楚辭》云:“粔籹蜜餌,有餦餭些。” 

<초사>: “거여(粔籹, 유배끼)와 밀이(蜜餌)에 장황(餦餭, 산자, 굳힌 꿀)도 있다.”

초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1164340&categoryId=32894     


王逸註云:“以蜜和米麪熬煎作粔籹,擣黍作餌。又有餦餭,卽美餳也。”

왕일(王逸)의 주: “꿀에 쌀이나 밀가루를 섞어 익혀서 거여(粔籹)를 만들고 기장을 찧어 경단[餌]을 만든다. 장황이라는 것도 있는데 좋은 꿀로 만든 것이다.”  

왕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2063&docId=1705517&categoryId=62063     


【洪氏云:“粔籹,蜜餌之乾者,十月間爐餅也。蜜餌,乃蜜麪之少潤者,七夕蜜餅也。餦餭,乃寒具也。”】 

홍씨: “거여는 밀이(꿀경단)을 말린 것으로 10월 사이에 구워서 빚는다. 밀이는 꿀과 밀가루를 섞어 조금 윤기있게 만든 것으로 칠석에 먹는 꿀경단이다. 장황은 차갑게 한 것이다.”     


星翁云:“蜜麪作餅,油煎而乾者,非今之朴桂乎?其少潤者,沃以飴蜜也,非今之藥果乎?” 

이익: “꿀밀가루로 빚고 기름을 졸여서 말린 것은 지금의 박계(배끼)가 아닌가? 이밀(꿀)을 바른 것은 지금의 약과가 아닌가?”     


昔高麗 忠宣王爲世子入元,宴享用本國油蜜果,其來遠矣。

옛 고려 충선왕이 세자 시절 원에 들어갔을 때, 잔치에서 본국의 유밀과를 사용한 것에 유래하였다.      


○國典祀享,有藥果中朴桂。

국가 제사에는 약과와 중배끼(중박계)를 쓴다. 

【今俗同牢用漢果,新婦餪饌用大藥果。所云漢果,卽大朴桂】 

【지금 풍속에 동뢰(同牢)에는 한과(漢果)를 쓰고 신부 난찬(餪饌)으로는 대약과(大藥果)를 쓴다. 한과는 대배끼[大朴桂]를 말한다.】

동뢰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1826&docId=88552&categoryId=41826

난찬(풀보기, 해현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0802&docId=1669563&categoryId=50812     


按粔籹ㆍ蜜餌,雖自古有之,吾東賓ㆍ祭之禮,必崇尙此物者,羅ㆍ麗之世,佛法主世,殆亦麪犧之類與。

거여와 밀이는 예부터 있어왔고 우리나라의 빈례(사신접대)와 제례(제사)에서는 반드시 이것들을 중요시했는데 신라, 고려같이 불교가 영향력이 있던 시대에 주로 밀가루 희생(제물)의 종류로 쓰였기 때문이다.

【陶穀《淸異錄》云:“周靈前果,皆調香爲之,形色如生。” 蓋亦造果之類】

【도곡(陶穀)의 <청이록>: “대체로 영전의 과일은 모두 향을 위한 것이니 모양과 색은 살아있는 것과 같다.” 아마 조과의 종류일 것이다.】

도곡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1826&docId=87911&categoryId=41826

청이록(중국위키백과) https://zh.wikipedia.org/wiki/%E6%B8%85%E7%95%B0%E9%8C%84     


즉 처음에는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대신하기 위해 과일 모양으로 빚은 과자였는데 점차 하나의 제사음식이 되면서 쌓아 올리기 편한 형태인 넓고 납작한 모양으로 바뀌고 열매라는 뜻의 과자라는 이름만 남은 것입니다. 요즘 약과는 꽃이나 잎의 모양을 띄는데 세는 단위가 잎(닢)이었던 걸 보면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습니다. 또 제사 뿐만 아니라 잔치 음식이나 문병 선물로 쓰이기 때문에 모양이 예쁘면 기분이 더 좋잖아요.      


가벼운 호기심에서 시작한 검색이 여유당전서 번역으로 끝날 줄은 몰랐네요ㅜㅜ 나름 신경을 많이 쓴 글이니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프로필의 링크트리도 한 번 둘러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linktr.ee/gyepi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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