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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조호바루가 남겨줄 것...

긴 휴가는 나와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by 엠제이유니버스

회사는 근속기간이 10년이 될 때마다 20 영업일의 휴가를 준다. Refresh 휴가라는 이름으로... ...

연초에 다이어리를 정리하며 보니 나는 어느새 15년차가 되었고, 10년차 리프레쉬 휴가는 코로나 등과 겹쳐 아직 사용하질 못했다. 어느 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4년 겨울에는 리프레쉬를 사용할까?"

"애들 방학 때면 좋지. 어디 가려고?"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싱가폴 여행하기도 좋고, 영어권이고, 그리고 싸고 깨끗하대."


실행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아내는 비행기티켓과 숙소 등을 예약했다. 4월 말이었다.


다행히 팀 내에 올해 리프레쉬 휴가를 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뉴질랜드 가족여행을 간 사람도 있고, 스위스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 유럽 여행을 한 사람, 하와이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심스레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대해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달 살기를 하면 무얼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한 달을 통째로 자리를 비워본 적은 없어서 '과연 그래도 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직원들의 리프레쉬 기간을 보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일을 하고, 어찌 됐든 회사는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나 하나 빠진다고 문제가 생기면 그게 이상한 조직이지.' 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대형 이벤트는 없었지만, 24년은 쉴 틈 없이 그저 바빴던 거 같다. task를 하나만 한 적이 거의 없고, 두세개를 같이 진행하며 하나 끝내고, 그 다음을 또 끝내고, 그러다 보면 다른 task가 또 들어오는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12월 중순이 되었고,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은 있었지만 나는 리프레쉬 휴가를 왔다. 일은 팀원들에게 '믿고 맡길께.' 라는 말 한마디를 두고 말이다. 나보다 훌륭하고 일도 더 잘 하는 팀원들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국의 추운 겨울 어느날, 패딩 안에 반팔을 입고 싱가폴행 비행기를 탔다. 출장으로 몇 번 가본적 있는 싱가폴인데 긴 휴가로 방문한다고 하니 뭔가 느낌이 달랐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지만 잠도 잘 오질 않았다. 비행기 좌석 앞 모니터에서 영상을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는 아이와 함께 비행기는 무사히 싱가폴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벤을 타고 다시 조호바루로 오는 약 2시간 정도의 여정은 비행 후라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익히 들었던 싱가폴-조호바루 국경의 출퇴근 시간 traffic jam도 경험하고, 장대비 수준을 넘어 정말 퍼붓는 것처럼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씽씽 달리는 벤 기사의 운전실력에도 깜짝 놀라고 말이다.

그렇게 조호바루에서 한 달여를 머물 숙소로 도착했다. Puteri Harbour. 고급 요트가 돌아다니는 이 항구를 겨냥하여 (아마도)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많은 고층의 고급 리조트를 지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항구의 상권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말을 오기 전에 들었는데, 역시나 숙소 자체가 고급이다. 입구에서부터 security를 3번은 통과해야 건물 안으로 겨우 들어갈 정도다.


"엠제이, 이런 숙소에서 지내보니 한국에서도 40평대 이상은 되어야 맘 편히 살 수 있을 거 같아."


라며 동남아 특유의 조금은 덥고 습한 공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툭 한 마디 던진다.


"맞아요 아빠. 우리도 서울가면 이런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해요." 라는 아이들의 말이 비수를 찌른다. 내가 리프레쉬를 하러 왔는데... 오히려 과제들이 더 생길 것만 느낌이다.


다시금 이번 리프레쉬의 계획을 정비해본다.


1) 아내와 둘째가 같이 있는 10일간은 조호바루, 싱가폴 여기저기를 알차게 여행한다 (완료)

2) 첫째 영어캠프를 적극 서포트하고, 음식, 놀이, 운동 등 아이의 니즈를 충족시켜준다.

3) 무겁게 가져온 3권의 책 (피터린치)을 완독하고, 투자 마인드를 재정비한다.

4) 매일 1시간 이상 수영을 하고, 자유형 1km 25분대까지 스피드를 올린다.

5) 부동산 세금, 퇴직연금 PF 등 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들을 스터디한다.

6) 골프.... 흠 클럽들을 챙겨오긴 했지만 -.-;;;


그렇게 벌써 10일 가족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는 리프레쉬 챕터 2가 시작되려 한다.

이제부터는 나에게도 좀 더 집중하고, 계획했던 것들을 잘 해내는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야겠다.

어쩌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14일간 혼자만의 시간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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