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 원 조각이 깨진 순간

제프 쿤스와 풍선 개, 그리고 100개의 파편들

by 라희

2023년 2월 16일,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아트 윈우드(Art Wyndwood)의 VIP 프리뷰 행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사업수완이 탁월하기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제프쿤스도 당연히 페어에 참여했는데요. 그의 시그니쳐인 풍선 개(Ballon Dog) 작품이 벨에어 파인아트(Bel-Air Fine Art) 갤러리 부스에 전시되었지요.


그러던 중, 왁자지껄했던 전시장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휘둥그레 해진 눈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방금까지 전시되어 있던 제프 쿤스의 풍선 개가, 산산조각이 난 현장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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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고가 그렇듯,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범인은 바로 나이 지긋한 여성 수집가였죠.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가 실수로 받침대를 쳤거나 혹은 작품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고 합니다. 어찌 됐든, 이 여성으로 인해 제프쿤스의 풍선 개는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고 약 100여 개의 파란색 파편으로 '박살'이 나버린 겁니다.




혹시 이것도

예술의 일부인가요?


이 광경을 본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계획된 행위예술일 거라 생각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는데요. 아무래도 '현대미술 아트페어'에서 '제프 쿤스'의 작품에게 일어난 일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갤러리 직원들이 당황하며 달려오고, 사고를 낸 여성이 사과하는 모습을 본 뒤에야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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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깨진 조각들을

나에게 파시오


열심히 빗자루로 깨진 조각들을 쓸어 담고 있던 갤러리 직원에게 한 남성이 다가옵니다. 그는 바로 미술 컬렉터 스티브 감슨이었죠. 그는 깨진 파편을 전부 구매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동안 미술시장의 역사를 보면, 이런 특별한 '스토리'가 담긴 작품은 그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뛸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보험처리의 문제로 인해 그 자리에서 바로 판매가 성사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더라


사실 깨진 파편을 사겠다고 한 사람은 스티브만이 아니었습니다. 벨에어 파인 아트 갤러리 매니저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가 발생한 뒤 여러 컬렉터에게 구매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지요.


우리는 지난 미술 경매 이력에서 배웠습니다. 유명한 작가의 '온전한' 작품보다, 흠이 있더라도 '스토리'가 담긴 작품에 더 큰 가치가 부여된다는 사실을요. 일례로 앤디 워홀의 <총 맞은 마릴린>이나 뱅크시의 <Love is in the Bin>가 있습니다.



image.png 앤디 워홀 <총맞은 마릴린>
앤디 워홀 <총맞은 마릴린>
1964년, 예술가 도로시 포드버가 워홀의 작업실인 "팩토리"에 들어와 벽에 쌓여 있던 네 점의 마릴린 먼로 초상화 작품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워홀은 나중에 총구멍이 난 부분을 완벽하게 보수했지만, 이 사건 이후 이 시리즈에는 "총 맞은(Shot)"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점인 "세이지 블루 마릴린"은 2022년 경매에서 1억 9,500만 달러(한화 약 2,500억 원)에 낙찰되며, 20세기 미술품 중 역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image.png 뱅크시 <Love is in the Bin>
뱅크시 <Love is in the Bin>
미술 시장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사례입니다.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작품이 낙찰되는 순간, 액자 밑에 숨겨진 파쇄기가 작동하며 작품의 절반이 잘려 나갔습니다. 이 파손 과정 자체가 하나의 행위 예술로 인정받으며 작품의 가치는 폭등했습니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이 파편들이 나중에 경매에 나온다면, 원본 작품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낙찰되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미 현대 미술은 스토리의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지만, 앞으로는 AI의 보급으로 이 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러분은 두고두고 회자될 나만의 서사를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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