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술관의 벽이 35년째 텅 비어있는 이유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사건

by 라희

미국 보스턴에 가면 유럽의 궁전같은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정체는 바로 박물관이라고 하는데요.


IsabellaStewartGardenerMuseumMainLobby.jpg 이사벨라 스튜어트 뮤지엄


이 곳을 만든 이사벨라는 뉴욕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89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지요. 이 시기, 그녀와 가까이 지냈던 하버드 출신 미술 사학자 베르나르 베렌슨과 함께 유럽 거장들의 작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보티첼리,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이름만 들어도 눈이 동그래지는 작품들이 미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자벨라는 베네치아 양식의 저택을 지어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시작했지요. 이게 바로 1903년에 문을 연 보스턴의 명소 이사벨라 스튜어드 가드너 박물관입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의 한쪽 벽은

35년째 텅 비어있습니다.


혹시 여백의 미를 추구하며 일부러 비워둔 '공'간일까요?


아니요, 원래 이 벽들은 이사벨라가 수집한 거장들의 작품들로 아름답게 채워져있었습니다.

1990년 3월, 그 날의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요.




새벽 1시 24분,

경찰관 두 명이 미술관에 나타납니다.


이 남성들은 박물관 후문 앞에서 경비원에게 "소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고 했습니다. 경비원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이들을 들여보냈지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두 남성이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경찰 제복을 입은 강도였던 이들은, 경비원들을 제압해 지하실에 묶어둔 뒤 약 81분동안 미술관 내부를 돌아다니며 작품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렘브란트, 베르메르, 마네 등 유명한 작품들만 쏙쏙 골라냈지요. 그렇게 총 13점의 작품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Édouard_Manet,_Chez_Tortoni.jpg 에두아르 마네 <Chez Tortoni> 1875
A_lady_and_gentleman_in_black,_by_Rembrandt.jpg 렘브란트 <A Lady and Gentleman in Black> 1633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었을까?


일반적인 강도라면 박물관 안의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게 가치있는건지 알아내기 힘들었을겁니다. 하지만 이 침입자들은 거장의 작품들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 정도면 미리 리스트를 작성해서 온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가장 경악하게 만든 건, 이들의 절도방식이었습니다. 그림을 소중히 들고간게 아니라, 주머니칼로 액자에서 무참히 도려내어 들고갔거든요. 특히, 더치룸(Dutch Room)에 있던 네덜란드 대작들이 피해를 입었지요.


Rembrandt_Christ_in_the_Storm_on_the_Lake_of_Galilee.jpg 렘브란트 Christ in 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1633)
Vermeer_The_concert.jpeg 요하네스 베르메르 The Concert (c. 1664)


우리가 볼 땐 경악스럽지만, 사실 칼로 잘라서 가져가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을겁니다. 액자채로 들고가기엔 너무 크고 무겁고, 그렇다고 정석대로 분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니까요. 재빨리 일을 처리하고 가야하는 강도들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요...




범인은 마피아?


대체 미국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대범한 짓을 한 자들은 누구일지 궁금하시죠? 안타깝게도 사건이 일어난지 3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FBI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범죄조직(마피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직원 두 명을 침입자로 지목하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 모두 범행 1년뒤인 1991년 사망했습니다. 또, 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하고 장물을 관리했을 것으로 의심받는 마피아 간부들도 세상을 떠나면서 수사의 실마리가 끊겨버렸습니다.


아니 그런데 마피아가 미술관에 들어가서 강도짓도 한다니.. 뭔가 실망(?)스러운데요. 사실 이들은 돈이 아니라, 나중에 중범죄로 체포되었을 때 검찰과 협상하기 위한 카드로 쓰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실제로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법 거래를 시도한 사례가 많았다고 해요.




"벽은 그대로 두세요"


설립자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는 생전에 "미술관의 전시 구성을 단 하나라도 변경해서는 안된다" 는 엄격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미술관의 모든 소장품은 하버드 대학교로 귀속되어 매각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술관 측은 작품이 사라진 자리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던거에요.


6df06afb38a62b06c81e5413c0010d939088c02d-2000x1333.jpeg
127352.jpg 그림이 사라지고 텅 비어있는 액자


과연 사라진 그림들은 원래의 자리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비어있는 액자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6000억이 넘는 다빈치의 이 그림, 사실은 가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