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출산율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삶을 포기하는 동시에 새 삶은 탄생하지 않는 국가다. 2022년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를 기록했다. 2020년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인 1.59명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앞서는 인구 자연감소는 2020년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96년 뒤, 대한민국 인구는 1500만 명이 될 예정이다. 100년 만에 인구의 7~80% 가까이 줄어드는 셈이다. 누가 빨리빨리의 민족 아니랄까 봐, 한국인들은 이런 일에도 빠르게 1등을 달성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견디나 보다.
현재 한반도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형제가 6명씩이나 있던 시대를 살아가던 어르신들, 또는 압축성장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며 혀를 끌끌 차곤 한다. 가정을 이루려는 의지, 또는 책임감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해한다. 달라진 시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쉽지는 않으니까.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또는 책임감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게 아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의 삶까지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다. 사실은 책임감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포기는 희망의 상실을 의미한다. 괜히 3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기까지 필요한 과정, 즉 연애-결혼-출산의 3단계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의 동의어다. 출산율과 자살률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당장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고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삶을 포기하거나,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삶의 기반이 무너진다. 통계들이 증명한다. UN의 『세계행복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인은 스스로의 삶의 질을 10점 만점 중 5.95로 평가해 137개국 중 57위를 기록했다. 이는 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인 성적이다. 아동청소년이 느낀 삶의 만족도 역시 꼴찌 수준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와 관용도, 사회적 고립도 역시 OECD 최하위권이며, 갈등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리하자면 한국인은 낯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받거나 연락할 사람이 없고, 자신과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편을 이루어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비율이 다른 국가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이 낮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희망이 사라질 때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희망이 사라지면 부정적 감정이 훨씬 빨리 내면에 똬리를 튼다. 그리고 전염된다. 감정은 오롯이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감정은 사회적ㆍ문화적 맥락의 동반자이자, 증인이기도 하다. 감정의 지각과 표출은 지극히 개인적이나 그것을 지배하는 힘은 사회의 영역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감정을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사회적 감정의 실체도 기술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감정은 이렇다.
열등감, 경멸감, 혐오감, 증오심, 분노, 수치심, 불안, 스트레스, 공허함, 냉소, 막막함, 권태.
모두 한국인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내밀한 감정들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하나의 언어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자존감이다. 자존감을 이해해야 한국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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