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혹은 흰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건 아닐까?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육아부터 정치까지 삶의 모든 영역이 달라질 것입니다. 중세의 신학자들도 답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신이 인간을 선하게 만들었다면, 인류가 그동안 저지른 수많은 악행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신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었다면,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신이 인간의 본성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전지전능함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모순되기 때문이죠. 신은 내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알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 되죠. 그럼 나의 자유의지와 신앙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어차피 결과가 정해져 있으니,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중세 철학의 목표는 이 자유의지와 신앙을 어떻게든 조화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세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과학에게 내주게 되면서, 이제 사람들은 자유의지와 인간 본성에 관해 새로운 설명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은 사실에 입각한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숨겨진 환경결정론이었습니다.
'빈 서판(blank slate)'이라는 말은 '깨끗이 닦아낸 서판(scraped tablet)'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철학자 존 로크는 이 말을 인용하며 모든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두가 백지상태로 출발한다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노력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로크는 '빈 서판' 비유를 이용해 신에게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로크가 현대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빈 서판' 개념은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윤리적 신념의 수문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빈 서판'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평등하기 때문에 개인 간의 선천적 차이는 없습니다. 차이는 오직 경험에서 발생합니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메시처럼 드리블을 할 수 있습니다. 육아와 교육, 사회의 개선을 통해 차이를 뒤집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불평등, 가난, 반사회적 행동 역시 쉽게 나아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얗고 깨끗한 도화지 위에 경험과 문화를 통해 그려지는 것이니까요. 생물학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영역 일반성"이라 합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 없다"라고 주장하는 환경결정론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허물어지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영역 일반성"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급진적 행동주의 학파인 스키너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젊은 대학원생이었던 스키너는 행동의 원인은 강화에 따른 반복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상이나 처벌이라는 강화가 따르지 않으면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조작적 조건화'원리에 따르면,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없습니다. 선천적인 것은 일반적인 학습 능력 한 가지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반복을 통한 학습과 경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환경과 문화가 됩니다. 그 결과, 적절한 경험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어떤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서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인류학'이 그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습니다. 서구인들은 낯선 원시문화에 큰 흥미를 가졌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 부족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문화가 있고, 원주민들은 서구인과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이 인간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증거로 활용되었죠.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 반대이고 성적 질투가 없는 문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연애를 하고, 치열한 경쟁과 폭력도 없습니다. 평화롭고 소박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렇게 타락한 서구의 자본주의 문화와 다른, 지상낙원이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집니다.
이러한 생각은 근대 철학자인 루소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루소는『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첫머리에서 "인류는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탐욕에 가득 찬 서구인들과 다르게 옛 조상들은 욕심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는 것이죠. 루소는 그들을 '고결한 야만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루소의 영향을 받은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원시 문화를 이상적인 사회로 제시하고, 불평등과 범죄를 줄이기 위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빈 서판'과 '고결한 야만인'에 대한 믿음이 좌파 이념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뿌리이자 도구가 된 것입니다. 스탈린이 유전학 연구를 금지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환상이었던 것이 곧 드러났습니다. 지상낙원에서 사는 것으로 묘사된 사모아인들은 사실 아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았습니다. 살인과 강간 비율 역시 미국보다 높았죠. 다른 수렵채집인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의 후속 연구에서는 문화와 관계없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폭력 역시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역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통해 과거 조상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핑커는 고고학, 민족학, 인류학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폭력의 역사’를 재구성합니다. 그랬더니 전쟁과 약탈, 학대, 강간, 살인, 고문 등의 잔혹행위가 오히려 과거에 더 빈번했다는 결과가 나왔죠. 현대로 갈수록 폭력의 능력이 발전했을 뿐, 폭력 자체는 감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덜 폭력적이고 더 평화로운 시대입니다. 폭력성을 억누르는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죠. 이렇듯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주의에 대한 믿음 역시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조지아대 교수인 해리 할로는 새끼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애착과 관련된 유명한 실험을 합니다. 새끼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줄 때는 철사로 만들어진 가짜 엄마 원숭이를 통해서만 먹이를 주고, 천으로 만들어진 엄마 원숭이를 통해서는 먹이를 주지 않은 것입니다. 스키너의 주장대로라면, 새끼 원숭이는 철사 어미에게 애착을 느껴야 했습니다. 먹이라는 보상이 철사 어미를 통해 강화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원숭이는 젖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보들보들한 천 어미에게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결국 동물은 먹이라는 보상 외에도 다른 무언가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다양한 본능이 있다고 주장하며 반격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제임스의 본능 명단에는 '태어날 때 공기와 접촉하면 울기, 구역질하기, 모방하기, 싸우기, 부끄러움, 호기심, 소유욕' 등 수많은 본능이 담겨 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본능 명단을 '영역특이성'이라 부르며, 일종의 프로그램으로 비유합니다.
로렌츠의 실험이 대표적입니다. 로렌츠는 새끼 오리가 태어나면 처음으로 보는 대상을 따라다니는 본능이 있다고 주장하며 동물행동학을 창시했습니다.그는 직접 자신이 새끼오리의 어미가 되는 것으로 본성이 타고난다는 점을 입증했죠. 자연 상태에선 처음 보는 대상이 어미일 확률이 높으니, 그 대상만 졸졸 쫓아다니도록 각인된 프로그램은 오리의 생존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새끼 오리가 어미를 잃어버려 죽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했겠죠. 진화론에서는 이를 '적응'이라 합니다.
이후 해밀턴의 포괄적합도 이론, 조지 윌리엄스의 적응 개념이 자리 잡으며, 진화를 유전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저번 영상에서 말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대중에게 유전자의 중요성을 쉽게 설명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책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성공한 건 아닌 듯하지만 말입니다.
에드워드 윌슨 또한 동물을 연구하듯이 인간이라는 종을 연구하자고 제안했지만,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 인문학자와 사회학자, 좌파 지식인들은 윌슨의 강연에서 난동을 피우고 머리에 물을 뿌리기까지 했습니다. 동료들까지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비난했죠. 행동의 유전성을 말하면 히틀러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쉬운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진실에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진화론을 강하게 만듭니다. 결국 윌슨의 아이디어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인간의 마음을 프로그램으로 비유하는 진화심리학이라는 결말을 맺습니다. 그리고 이제, 진화론자들의 대반격이 시작됩니다. 진화심리학을 필두로 말이죠. 다음 영상에서는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환경결정론자들과의 양육 vs 본성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