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가 아이돌 학폭 고발로 이어진 이유

by 교양이


https://youtu.be/RIts1_4i_Ok



드라마 『더 글로리』가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스레 학폭 문제도 재조명되었죠. 연예계에서도 폭로가 연달아 터졌습니다.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 출연하던 작품에서 하차했습니다. 이제 광고를 계약할 때 학폭 등으로 물의를 빚으면 위약금을 내는 조항이 추가된다고 하죠. 아이돌 역시 계약 전 생활기록부를 꼭 확인한다고 합니다. 태국에서는 유명 배우가 학폭 논란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한국 드라마의 힘입니다. 이제 학교 폭력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학창 시절의 괴롭힘을 철없는 장난으로 치부했었죠. 하지만 이제 학교 폭력 역시 심각한 범죄라는 생각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으로 만들어진 '멈춰'보다 『더 글로리』가 학교 폭력을 줄이는데 훨씬 기여한 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왜 우리가 드라마와 영화에 빠져드는지, 이야기의 힘과 기원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드라마, 영화, 소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가상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실보다는 거짓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교과서보다 소설을, 다큐멘터리보다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가짜를 진실처럼 느끼고 빠져들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만이 현실이 아닌 이야기에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고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건 모방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흉내내기의 달인입니다. 태어난 지 이틀이 지난 아기도 놀라움, 슬픔, 행복한 표정을 흉내 냅니다. 침팬지와 아들을 함께 기른 심리학자는 아들이 침팬지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따라 하는 걸 보고 실험을 중단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방이 꼭 직접적인 행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음성이나 문자 같은 언어를 통해 간접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거울 뉴런 때문이죠. 덕분에 타인의 행동을 마치 자신이 경험하는 것처럼 학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움켜쥔다는 말을 접하기만 해도 실제 뭔가를 움켜쥐는 것처럼 운동신경 세포가 활성화됩니다. 덕분에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입장이 되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열심일까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의 생존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냥을 잘하는 것도, 도구를 잘 만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간관계와 도덕입니다.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합니다. 문화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 역시 다양하죠. 따라서 최대한 많은 상황을 경험하고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살면서 할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야기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는 경험의 범위와 깊이를 비약적으로 늘려줍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콩쥐와 팥쥐,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같은 전래 동화를 알고 있습니다. 유럽인이라면 백설공주, 신데렐라를 알고 있겠지요. 아이들은 콩쥐와 팥쥐를 통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심청전을 통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배웁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담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도덕, 윤리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행동의 경우의 수를 줄여줌과 동시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큰 뇌가 필요합니다. 두뇌가 진화한 목적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보를 수집해 판단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정보에 대한 탐욕이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알던 부족 사회의 경험 때문이지요. 그 속에서 조상들은 타인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 했습니다. 이야기가 그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하던 놀이의 형태를 띱니다. 놀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개는 놀이를 시작할 때 절하는 자세를 합니다. 비비 원숭이는 즐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고서 장난스럽게 걷죠. 상대방에게 진지한 공격을 하지 않겠단 뜻입니다. 놀이를 하듯이 공격과 방어를 연습하고 숙달하는 것이죠. 놀이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가깝습니다.

- 어릴 때 놀이를 하지 않으면 인지 발달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텍사스 주 살인범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유년기에 놀이의 경험이 없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경험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본 적 있나요? 아이들은 장난감에게 새로운 상황과 역할을 부여합니다. 장난감에게 몰입해 주인공이 되기도 하죠. 장난감은 아이의 보호자가 되었다가, 괴물을 무찌르는 히어로가 됩니다. 장난감이 보고 느낄 줄 안다고 상상하고, 지식과 믿음까지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상의 친구와 다양한 관계를 맺는 놀이를 통해 타인의 관점과 감정을 더 잘 이해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실제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들의 인지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인이 되어서 더 뛰어난 사회적 인지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나 복싱 같은 운동을 배운 사람이 나중에 프로가 되는 것처럼요. 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어른들의 놀이와 같습니다. 가상 이야기, 즉 픽션은 새로운 인물이나 시간, 관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적 상황과 기술을 계속 숙달하는 거죠. 그럼 복잡한 인간관계에 신경 쓰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쉴 때 드라마나 영화를 정주행 하는 이유입니다.


이때 재미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관객들은 흥미로 이야기를 평가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배제하는 성향 때문이지요. 아무리 중요한 메시지가 있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공포 영화나 복수극, 막장 드라마 같이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현실에서 쉽사리 일어나기는 힘들지만, 일단 일어나면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스릴러 같은 영화는 위험을 배우도록 해주고, 고난에 대처하는 전략과 감정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스릴러 영화에는 꼭 하지 말아야 할 것만 골라하는 빌런들이 있지요. 우리는 답답한 행동을 하는 인물의 행동을 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웁니다. 끝까지 살아남는 주인공들을 보고 어떤 것이 생존에 좋은 행동인지 배웁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강렬한 경험과 감정을 느낍니다. 이를 '카타르시스'라 합니다.


이렇듯 이야기 덕분에 인류는 현실성이나 개연성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무한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죠. 만약 우리에게 거짓을 상상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야기가 없었으면 지금의 과학과 기술은 발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더 글로리』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더 글로리』에는 우리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모여있습니다. 우선 약자를 괴롭히는 나쁜 인간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인 권선징악이 작품의 주제를 이룹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복수의 요소도 들어가 있죠. 복수는 인류의 역사 내내 반복되어 왔습니다. 때에 따라선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마치 동은이의 복수극처럼요. 게다가 『더 글로리』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부의 불평등이나 빈곤 같은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학교 폭력 문제와 결합해 『더 글로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현실에서 권선징악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에 드라마에서라도 간접 경험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양과 서양은 왜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