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때문에 아이들이 총을 들게 된 이유

by 교양이


https://youtu.be/AtJl4GhMWPY



1972년 2월 14일,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에서 968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이 발견됩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이 다이아몬드에 '시에라리온의 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이 발견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남성은 프러포즈를 할 때 다이아몬드가 들어간 반지를 여성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과거 서양 사람들은 사랑의 혈관이 약지를 거쳐 심장으로 흘러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사랑의 증표가 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1477년 오스트리아의 아크두크 막시밀리안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혼녀에게 주면서 유명해졌고, 1952년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de beers)가 잡지에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문구를 쓰며 프러포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다이아몬드는 로맨틱하고 화려하지만, 한편으론 피의 다이아몬드라 불리기도 합니다. 아름다움 뒤편에 아프리카의 피와 눈물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의 최대 생산지는 아프리카입니다. 생산량의 50% 이상은 보츠와나, 남아공, 시에라리온, 짐바브웨 등과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이 다이아몬드 광산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다이아몬드가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군자금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수많은 학살과 폭력이 자행됩니다. 이게 바로 다이아몬드를 '블러드 다이아몬드'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앙골라, 콩고 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악명이 높습니다. 특히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벌어진 폭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내전으로 인해 20만 명이 사망하고, 25만 명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고, 7000명의 소년병이 양성되었습니다. 인구의 3분의 1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시에라리온의 비극을 다룬 영화도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 주연의 블러드 다이아몬드입니다. 영화에서는 서구의 식민 잔재와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거래, 내전과 테러, 총을 든 소년병, 원주민들의 비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서구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시에라리온도 1961년에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철광석 등 자원이 풍부해 발전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식민 잔재 세력과 결탁한 정부의 부정부패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군부 쿠데타도 여러 번 일어났고, 경제 상황도 여전히 나빴습니다. 독재를 막기 위해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이 나섰지만, 이들은 사실 국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해 본인들 배를 불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죠.


RUF는 적대국인 라이베리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부군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거나 노역을 시켰습니다. 특히 어린이들까지 손목을 자르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훗날 정부 측에 유리한 선거를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기도 했고, 커서 자신들에게 복수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이는 벨기에가 콩고 현지인들의 손목을 자른 악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군은 시민들의 손을 자르면서 대통령에게 가서 '너희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걸 보여줘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반군은 소년병으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아이들을 술과 마약에 중독시켜 자신들을 따르도록 세뇌시켰죠. 정부군에 협조한 부모를 죽이게 강요하기도 헀습니다. 심지어 살기 위해 친구의 다리를 자르게 하거나, 시체의 뼈를 바르는 일까지 시켰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8살에서 14살의 소년병들이 한때 반군의 절반까지 차지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10년 동안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국제기구와 선진국들은 몰랐을까요?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도 방관했죠. 시에라리온은 UN의 개입 대상국 목록에서 하위에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 분쟁을 연구한 저널리스트 그래그 캠벨(Greg Campbell)은 유엔이 시에라리온의 비극을 해결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반군은 이미 행정상의 모든 절차를 장악한 뒤였습니다. 거짓 서류와 뇌물이 동원되었고, 세관 당국이 눈을 감았습니다. 거래상들은 이를 이용해 자유롭게 미국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다이아몬드를 거래했습니다. 판매금은 반군의 무기 구매에 쓰였습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가공을 위해 인도로 보내지고, 세탁 과정을 거쳐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유통되었습니다. 유엔은 이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묵인했습니다.


물론 분쟁 지역에 유엔 최대 규모의 평화유지군이 배치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군을 소탕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민간인에 대한 횡포가 극에 달했는데도 반군이 해체되고 불법 다이아몬드 거래가 종식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보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유엔은 난민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무능한 정부와 부패한 경찰, 반군은 저마다의 이득을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이 모든 것을 떠안아야 했던 건 죄 없는 민간인들이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프리카의 참상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산국들은 킴벌리에서 만나 부랴부랴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밀수출을 막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범죄와 관련되지 않은 다이아몬드만 구매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이것이 '킴벌리 프로세스'라 불리는 인증 제도의 시작입니다. 공식적으로 참여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75개국입니다. 이 인증 제도를 통해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한 다이아몬드가 피로 얼룩진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는 것을 안심할 수 있습니다. 기업 역시 생산과 유통 과정에 윤리적 문제가 없음을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반군은 800명으로 구성된 영국의 낙하산 부대에 의해 격퇴되었습니다. 덕분에 시에라리온의 정치 상황은 안정되어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오랜 고통을 겪고 이제 시에라리온은 평화와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됐을까요. 안타깝게도 내전의 상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여전히 어린이를 포함한 광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캔 다이아몬드는 수천 달러의 보석이 되지만, 정작 광부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시에라리온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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