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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실 Dec 27. 2020

그냥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삶

 [홍시, 부끄러움, 숨바꼭질]


아버지가 죽었다. 이건 그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산골마을 귀퉁이 집 맏이로 태어났다.

당시는 오남매 육남매가 넘쳐나는 시절이었지만 그에겐 터울없는 두 동생이 전부였다. 소년소녀로 만난 그의 부모에게 밭일은 밤일보다 더 급했다.

어린 부부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려고 애썼다. 아직은 작은 몸과 마음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커가는 자식들은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그들은 고심 끝에 첫째 아들을 친할머니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조금 더 자란 맏이가 엄마 손을 덜 탈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밭일에 밀려 집을 떠난 아이는 밭일을 도울 만큼 자란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가 헤어질 때 약속했던 열 밤이 수백번은 더 지난 뒤였다.

그토록 기다렸던 재회였건만 이미 깨진 가족은 쉽게 다시 붙지 않았다.

풋풋한 미소가 예쁜 청년이던 그의 아버지는 밭일 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사람이 됐다. 눈물로 그를 보냈던 어머니도 시댁에 보낸 첫째가 동생들보단 나을거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세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없는 생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린 동생들은 돌아온 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할머니 댁은 감나무를 심은 넓은 마당집이었다. 그 집에 빨갛게 익은 홍시를 볼 때마다 끼니 걱정없는 형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홍시는 사시사철 떫은 감이었다.


반면 아이는 형제들과 달리 홍시를 좋아했다.


가을이 외로웠던 그는 따듯하게 붉은 홍시에서 할머니가 준 달콤하고 간지러운 사랑을 떠올렸다. 나중에 가족을 꾸리면 꼭 감나무 한 그루쯤 심어 그가 맛 본 홍시를 물려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대출 낀 30평대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렇게 홍시 하나를 두고도 서로 달랐던 형제들은 자주 다툴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부모는 맏이를 다그쳤다. 감나무 밑 뻐꾸기 둥지에 다녀온 아이는 이미 어미에게 조금 덜 아픈 손가락이 돼 있었다.




그는 어른이 되자마자 바로 집을 떠났다. 그대로 곧장 상경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뒤엔 혼자 힘으로 어엿한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남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됐건만 그는 어딘가 항상 위축돼 있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늘 부끄러움과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누구도 그에게 스스로를 아끼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용하거나 무시했다. 살면서 억울한 일이 수도 없이 쌓여갔다.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잘못한 것도 없이 매번 끌려다니는 남편의 성격이 늘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둘 사이엔 하루가 멀다 하고 칼날 같은 고성이 오갔다. 답이 없는 다툼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도 이어졌다. 날카롭게 맞물려 돌아가던 쳇바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멈춰 섰다.


난 그 사이에서 기가 빨릴 대로 빨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타인보다 가깝고 가족보다 먼. 그게 내가 그에게 갖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꾹꾹 누른 침묵으로 울음을 씹어 삼켰다.

난 그 모습에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내가 둘이 이혼이라도 할까 전전긍긍하게 했으면서 이제 와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말했다.


"아빠는 누구를 지독하게 싫어해 본 적이 없어."


"반대로 터놓고 좋아하지도 못했어.”


“그냥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던 거야. 자기한테도, 나한테도, 누구한테도."


어머니는 잠시 무겁게 추스르더니, 아버지가 남긴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너를 보면 걱정되는 게 많다.

언제 하루는 널 붙잡고 그냥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부끄러워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자란 날 닮아 사랑하는 법을 모를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된다.

넌 모르겠지만 아빠는 네 따듯함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걸 니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굳이 애써 너를 감추고 남을 이기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빠처럼 지기만 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그냥 이기지도 지지도 말아라. 많이 갖는 거보다 중요한 건 비록 조금이라도, 가진 걸 풍요롭게 나누는 거란다.

너는 그냥 너로 괜찮다는 걸 항상 잊지 말아라.

언제나 반짝이는 너를 응원한다.




난 아버지가 살아생전 다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다투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놓고 그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 삶이 너무 처연했다.


차라리 어렸을 땐 원망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선 그 마저도 부끄러웠다. 그 때문에 그는 내게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받은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게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삶은 그런 거였다


그래서 난 모른 척을 했다. 그와 아무 일도 없던 거처럼 괜찮은 척할 수 있는 안전 거리를 유지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그를 닮아 부끄러움 많은 아들을 위해 눈에 보이는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뻐꾸기 새끼로 자란 그에게 난 보여도 못 찾겠는 꾀꼬리여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안에 숨었던 난 그가 적당한 때게임을 끝내주길 원했을지 모른다. 아마 그도 언젠가는 내가 스스로 나와주길 기다렸을 수도 있다. 다만 나도 그도 그 적당한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했다.

어찌됐건 그는 이제 떠났다. 더 이상 이 숨바꼭질에 나를 찾는 목소리는 없다. 여전히 웅크린 나와 고요한 침묵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이 편지가 어쩌면 길고 긴 숨바꼭질을 끝내는 목소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내 생은 어떨까.


그가 마지막에 건내 준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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